브런치북 마음짓기 12화

일그러진 현실상(現實像)

by 한꽂쌤

아프면 아프다고 표현해도 되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복 받은 사람이다. 힘들면 힘들다고 부담없이 말할 수 있는 사람도 복 받은 사람이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이라는 말을 여기에 적용해도 되려나? 뜻밖의 행운이 찾아오거나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얻었을 때, 또는 감히 넘볼 수 없는 기회를 거머쥔 사람을 두고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라고 수식 문구를 붙인다. 자신이 느낀 바를 그대로 표현해도 괜찮다는 허용됨을 경험한다는 사실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요새 자꾸 목에 뭔가 걸린 거 같아요. 음식물을 먹는데 이상은 없는데 뭔가 목에 걸려서 삼켜지지 않은 거 같아서 식도에 뭔가 걸렸나?라는 생각에 병원에 갔는데 이상이 없대요'


회사원 B 씨는 목에 느껴지는 이물감을 불편해하며 양방, 한방으로 진료를 받으러 다니고 있다. 엑스레이를 찍어도 별 이상이 없어서 한의원에 가보니 기가 약해져 있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듯하다며 침 치료와 뜸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목에 이물감이랑 스트레스랑 무슨 상관이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그녀는 어렵게 구한 직장에서 선배 눈치를 심하게 보는 중이다. 처음 몇 개월은 적응하려면 감수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버텼지만 지금은 그 선배가 걸어오는 것 만 봐도 가슴이 뛰어서 숨쉬기가 곤란할 지경이다. 선배가 너무 무섭고 두려워서 업무처리를 제대로 못할 때가 많다. 멀쩡히 괜찮다가도 그 선배가 눈에 보이면 몸이 경직되고 '이렇게 까지 싫은데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나'라는 마음이 굴뚝같다고 한다. 그녀는 날마다 퇴사하고 싶은 마음을 품고 출근을 한다.


B 씨는 어렵게 얻은 직장을 그만둘 수가 없다. 집안 형편도 좋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식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직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이직 기간을 공백으로 둘만큼 시간적, 물질적으로 여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날마다 사표를 마음에 품고 출근하는 그녀가 안쓰럽기 짝이 없다. 그녀는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지만 가족에게는 말할 엄두가 안 난다. 친구들은 '그 직장 말고도 갈 데 있어' '그래도 참고해봐하다 보면 적응되겠지'라는 말로 조언과 위로를 해주지만 B 씨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하기만 하다.


마음속으로는 '너무 괴로워'라고 느끼지만 현실로는 그 느낌을 드러낼 수 없을 때 신체적으로도 문제가 생긴다. 감정을 억누르는 대가이다.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살면 안 된다는 신호탄을 준 셈이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지만 그렇지 않은 척 지내야 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많다. 이러한 억압을 몇 달, 몇 년, 몇십 년을 견디면서도 사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표현하는 거 자체가 스스로에게 용납되지 않은 채로 산다는 일은 참으로 곤혹스러운 일이다.


사람은 자신이 직접 경험 헤보지 않은 사실에 있어서 일일이 확신을 가질 만큼 잘 알 수 없다. 이로 인해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보완하기 위해 경험을 늘리거나 지식을 늘리고 인맥을 확장하는데 열심이다. 이러한 간접경험은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느낄법한 적절한 수준의 것들을 학습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인간은 다차원적 이서 일반화된 수준이 늘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빠른 판관력과 예민한 감각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디거나 무딘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현실과 이상 사이

막연한 이상을 좇는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당황한다. 이러한 상황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기에 심리적. 신체적 어려움에 이르기도 한다. 이러한 어려움은 한 개인이 인생을 만족스럽게 살기 위한 방향성을 흔들게 되어있다. 현실감 없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은 의외로 많다.


하는 일마다 왜 이렇게 꼬이지?

이번에 끝낸 그 사람도 결국 기존의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어

열심히 하는데도 왜 이렇게 성과가 없지?


이 모든 결과들은 어쩌면 일그러진 현실상을 제대로 펴지 못한 데서 오는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너는 왜 그렇게 현실감각이 없니?'라는 말을 자주 듣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너무 나는 건 아닌지 점검해보자.


일그러진 현실상의 결과는 불행이다. 자신이 하는 일뿐 아니라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일과 관계가 제대로 되지 않는 데 그 사람의 삶이 제대로 풀릴 리 없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줄이는 작업은 자신에게 일어난 다양한 갈등과 어려움을 줄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그렇다면 이상과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현실감을 찾지 못한 채로 살아가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리학에서 인지부조화 (cognitive dissonance가 일어나는 이유는 자신의 태도와 행동이 서로 모순되고 공존할 수 없다는 불일치 감에서 오는 괴리감이 불러온 결과라고 말한다. 인지부조화로 인해 불편한 개인은 자기 합리화를 통해 이러한 불편감을 해소하려 한다. 자신의 생각과 태도를 바꿈으로써 내적 충돌을 피하고 조화로운 상태로 만들기 위한 노력인 것이다. 인지부조화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일치감을 추구하고자 한다. 자신이 현실적으로 느끼는 본연의 생각이나 태도가 이상적인 기준과는 불일치함을 견딜 수없기 때문에 이를 통합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긴장감과 스트레스의 연속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금연을 선포했던 사람이 또다시 담배를 피우는 자신에게 '인지부조화'를 해소시키는 과정을 살펴보자


- 행동 바꾸기(담배 피우는 행동을 그만둔다.)

- 인지 바꾸기(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많이만 피우지 않으면 괜찮다'라고 한다.)

- 바뀐 인지를 통해 자신의 행동과 인지를 합리화 하기(못 피워서 스트레스받는 것보다 차라리 피우면서 스트 레스를 덜 받는 게 낫다.)

- 자신이 가진 믿음에 대한 정보를 부정하고 무시하기(담배는 합법적으로 허락된 마약이라잖아. 이 정도는 피워도 되지 뭐)


다이어트를 선포했던 사람이 또다시 과식을 하고 나서 '인지부조화'를 사용한다면


- 행동 바꾸기(과식하는 행동을 그만둔다)

- 인지 바꾸기(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많이만 먹지 않으면 괜찮을 거야'라고 한다.)

- 바뀐 인지를 통해 자신의 행동과 인지를 합리화하기(다이어트하다가 스트레스받느니 조금씩 먹어주면서 스트레스를 줄이는 게 나아')

- 자신이 가진 믿음에 대한 정보를 부정하고 무시하기(다이어트하다가는 건강에 해로워. 인생 뭐 있어? 그냥 먹자)


로저스(Rogers)는 현실과 경험 속에서 심리적인 기능을 충분히 발현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의 지각이 가능하며 통합된 자아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이 개인이 경험한 세계를 바탕으로 재해석한 결과이므로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와 성장을 위해서는 개인의 준거 체계를 제대로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누군가가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은 일에 대한 즐거움이 없다. 누군가가 요구하는 감정에 반응하는 사람은 진정한 만족을 맛볼 수 없다. 시키는 일을 고분고분하게 해야만 인정을 받고 요구되는 감정대로 느끼고 표현해야 사랑을 받는다고 여긴다. 자시가 의지하고 있는 대상을 향해 거절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실로 두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애써 외면한다. 이러한 습관적인 회피 패턴은 진정한 자기 감을 훼손하고 올바른 현실감을 상실하게 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만의 경험을 가질 권리가 있다. 그게 옳다. 자신이 한 경험과 느낌을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일은 개인과 개인의 각자 다른 독특한 특성을 존중해 주는 일이다. 경험의 왜곡 없이 자신만이 경험한 현재의 자기상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어'라는 조건적인 가치부여를 한다. 이러한 조건부여는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행동하고 주의를 끌려는 모습을 만들게 된다.


타인이 정한 기준에 맞추기보다 현실 속의 자기상을 되찾아 오자. 당신이 경험하려 했던 경험을 되찾고 당신이 느끼려 했던 느낌을 되찾아 오자. 사람은 힘들 수도 있고 실수할 때도 있으며 아파할 때도 있는 것이다. 내게 일어나는 일과 내게 일어나는 느낌 그대로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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