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by 한꽂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과 타인에 대해 이해하고 싶어 한다. 내가 처음 상담 공부를 하고 싶은 이유가 '가족들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때문이었다.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결국 긴 공부가 되었고 지금에 이르렇다. 어떤 이는 너무 소극적인 성격 때문에 늘 불안하고, 어떤 이는 거침없는 표현으로 인해 실수를 하여 후회하기도 한다. 사람 사귀는 데에 있어서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번 만난 사람이 오랜 친구였던 마냥 스스럼없이 친근하게 대하는 사람도 있다.


어릴 때 나는 무척 소심한 아이였나 보다. 그때는 소심의 의미가 뭔지 내성적이라는 의미가 뭔지 모르는 나이여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같은 동네에 있는 큰아버지댁에서 아침식사가 있는 날이면 그 집 앞까지 갔다가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되돌아올 정도였다. 그때는 대문을 열고 북적거리는 친척들 틈 속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질 않았고 그런 상상만 해도 너무 고통스러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나의 성격이었는데 그 성격으로 인해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었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단번에 화끈하게 결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도 결국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듯 사람들은 각자 자기 나름의 고유한 특성을 지닌 개인인 것이다. 상담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많은 부분이 편안해졌다. 이해가 안 되는 것도 당연했고 차이가 나는 것도 당연했다. 내 마음과 저 사람 마음이 다르다는 것이 당연했기에 굳이 실망하거나 오해할 만한 상황이 줄었다.


가끔 사람들은 말을 한다. '도대체 정말 왜 이러는 건지 이해가 안 가요.'라고 말이다. 끊임없이 이해해보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다가 지쳐서 상담실에 오는 사람들의 하소연이다. 얼마나 답답하면 이러겠는가. 그러다가 어느 순간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자기만의 방법을 터득한 사람들은


'아 저 사람도 뭔가 이유가 있겠네'

'그럴만한 사정, 내가 모르는 게 분명히 있을 거야'


하는 태도를 갖추게 된다. 실은 그 누구도 어느 한 개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니 애초에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는 게 편할 것이다. 도저히 납득이 안 가는 상황이 닥치면 '아 저 사람은 저렇구나' '아 저 사람은 저렇게 반응하는구나'라고 가볍게 '툭' 하고 내려놓는다는 심정으로 임하면 좋다. 그러나 이렇게 말처럼 어디 쉽겠는가?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자신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횟수가 차면 요샛말로 '손절'하는 행동이 나타난다. 손절하는 당사자는


- 이만큼 내가 노력했으면 된 거지.

- 더 이상은 안돼.

- 이건 내 잘못이 아니고 저 사람 잘못인 거야.

- 나는 할 만큼 다했어


라고 말하며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다.


다른 글에서도 썼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자기 생각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에 있어서 당사자에게 물어보거나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해주려는 마음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걸 실감한다. 오로지 내편에서 상대방을 이해라려고 죽도록 노력하다가 결국 더 큰 골만 깊어져 인연이 다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신 후 친한 친구들 몇 명이 나를 식사자리에 초대했다. 위로를 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한 친구도 1년 전에 친정아버지를 보내드리고 난 후라서 더욱더 내 마음을 잘 이해가 간다며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한꽂아... 기운차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더라.'

'한꽂아... 많이 힘들겠지만 어머님도 좋은 곳에 가셨을 거야'


이런 위로의 멘트를 들었을 때 흠잡을 데 없을 만큼 완벽하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 나는 그런 멘트를 듣는데 그 어떠한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위로의 멘트가 오히려 소음으로 들렸기 때문이고 그 말을 듣기조차 싫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원하는 위로는 '그저 가만히 내 곁에서 앉아서 같이 호흡을 맞춰주는 정도'이면 좋을 듯싶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했다.


'친구야. 나는 지금 그러한 위로보다는 그냥 내 곁에서 같이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좋아. 그렇게 해줄래? '라고 요청을 했다. 다행히 친구는 내 마음을 잘 읽어내며

- 알았어. 내가 내 입장에서 위로를 했네. 미안해


라고 하며 내 곁에서 따뜻하게 있어주었다. 이처럼 사람의 감정은 미묘하다. 완벽한 위로의 맨트지만 전혀 감동이 되지 않고 온도가 느껴지지 않으니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그러면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 일일이 어떻게 알아요'라고 반문할 것이다.


'00아. 많이 힘들지. 내가 도와줄 부분 있을까? 어떻게 해주면 되겠니?'라고 먼저 물어보면 좋다.


위로든 공감이든 상대방을 위하는 것이라면 상대방의 언어로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그 언어가 전달이 되어 상대방의 마음에 자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러한 맞춤형 공감과 위로를 받아본 적이 겨의 없다. 속상한 일이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타인에게 주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내가 받아본 적이 없으니 모른다'라는 태도로 면죄부를 요구할 수는 없다. 지금이라도 알게 된 부분이 있다면 적용해 보자. 당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먼저 해보는 것이다.


가끔 나의 자녀들은


- 엄마 그런 말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야
- 엄마는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거 같아. 현실은 안 그래

- 그건 교과서에나 나오는 거지


라고 하며 외계인 보듯 한다. 그러나 나는 말한다. '엄마도 좀 어색하고 부끄러운데 한번 해보는 거야'라고 말이다. 자꾸 이렇게 하다 보면 아주 가끔은 아이들 입에서도 내가 해주었던 말들이 불현듯 튀어나올 때도 있다. 하기 힘들다고, 어색하다고, 경험한 적 없다고 하지 않으면 계속 그 자리에 머물게 된다.


괜찮다. 너무 잘하지 않아도 된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된다. 조금만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