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면 바빠서 불편하고, 시간이 많으면 많은 대로 뭔가 나태해진 기분이라서 찜찜하다는 사람들이 있다. 늘 바빠도, 늘 여유로워도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뭔가 잘못된 거 아닐까?
이렇게 살아도 될까?
스스로 자신이 보내는 시간이 어떠한지 분별하지 못한다. '항상'이라는 게 아니라 '가끔'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너무 바쁜 사람이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선물해보자. 처음에는 낯선 시간이어서 할 일을 찾아 다시 바쁨으로 채워지기도 하지만 의식적인 시도를 하다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또한 의미 있음을 알게 된다.
전일제로 근무하는 상담 선생님은 가끔 혼자만의 시간 확보를 위해 점심 식사를 혼자 한다고 한다. 종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느라 혼자만의 시간을 일부러 만들지 않으면 지치기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다며 심신의 휴식을 갖는다고 하였다.
반대로 늘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타인과 연결되는 시간을 찾기에 급급한 사람들도 있다. 나 혼자 있는 느낌이 싫어서 약속을 잡거나 SNS 세상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사춘기에 접어든 이후 줄곧 친구관계가 소원한 청소년이 있다. 혼자 지내는 게 너무 힘든데 그렇다고 친구 사귀는 데도 소질이 없다며 고개를 숙인다. 먼저 다가가고 싶지만 혹시나 실수할까 봐 말을 못 건네겠고 누군가 다가와서 얘기해주는 친구에게 멋지게 답하고 싶지만 역시 실수할까 봐 머뭇거리다 보면 반응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다. 오프라인에서 친구 사귀는 데에 지친 이 학생은 밤새 SNS에 빠져있다. 채팅방에 들어가 연령이 섞이고 직업이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하느라 밤을 새우고 학교에 간다. 당연히 학교에서는 졸고 수업은 뒤쳐진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떤 이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여행을 간다. 그러나 또 어떤 이는 함께 시간을 보낼 이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심리적 독립이 건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삶, 시간에 집중하고 동시에 다른 사람과의 왕성한 교류도 가능하다. 균형 있는 삶은 오히려 타인의 호감을 산다. 자신의 캐릭터를 지켜내고 그 캐릭터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더 매력적인 것이다. 그러나 가끔 나를 만나러 오는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의 색깔을 지켜주느라 지쳐있는 분들이 있다. 내 색깔을 드러내는 건 영 익숙지 않아한다.
보웬(Murray Bowen)의 다세대 가족상담 이론에는 자아 분화(differentiation of self)가 있다. 자아 분화는 정서적인 부담감, 스트레스를 주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불안에 의해 자동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온전히 내가 되어 유연하고 현명하게 사고하고 반영(reflection)할 수 있는 능력이라 한다. 한 사람이 자신만의 방식에 따라 기능하고 타인의 정서적 혼란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과정이다. 자아 분화가 덜된 미분화된 자아는 타인과의 지나친 밀착으로 인해 타인의 반응에 민감하고 이 민감함이 오히려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게 되어 상호 거부 사태를 초래한다. 미분화 상태가 지속되면 다른 사람이 가진 가치관을 수용하지 못하지 못하게 되어 결국 관계의 연결을 끊는 방법을 선택한다. 이렇다 보면 자연스레 삶의 질은 떨어지게 된다. 자아 분화가 잘 된 사람은 타인과의 차별을 흔쾌히 환영하고 자신만의 캐릭터를 존중하며 자신만의 건강한 신념과 입장을 취한다. 미분화 자아의 상태에 머무는 사람은 주관적 감정과 객관적 사고에 대한 분리가 어려워 맹목적 동조나 맹모적 비난을 할 수 있다.
온 지구가 하나 된 듯 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혼자'라는 단어를 달가워하지 않는 듯하다(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님).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스마트폰이 보급된 이후 폰 안에서 지구 상의 모든 이들과 연결되고 정보가 공유되다 보니 개인을 둘러싼 적절한 관계망 유지가 어렵다. 그래서 더욱 무겁게 입혀진 관계를 피해 홀로의 삶을 지향하고 동경하는 지경에 이른 게 아닐까?
TV프로에 '나는 자연인이다'가 인기다. 등장하는 모든 분들이 각각의 사연들이 있겠지만 혼자만의 시간은 치유의 시간으로 정의되는 듯하다. 다수의 사람들 또한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라는 로망을 갖고 있기에 열혈 시청자가 되어 공감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로망은 로망 일분..... 모두가 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럴 용기도 없다. 굳이 속세를 떠나지 않아도 지금 내가 머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보자.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소소한 실천부터 해보자. 우선 주변 전자기기를 차단한다. 스마트폰도 잠시 꺼둔다. 너무 오래 꺼두는 것이 불안하다면 30분만이라도 그렇게 하자. 혼자서 책을 읽거나 혼자서 산책을 하거나 혼자서 영화를 봐도 좋다. 혼자서 밥을 먹거나 혼자서 차를 마셔도 좋고 그 무엇도 좋으니 집중해 보자. 아는 지인은 한 달에 한번 정도 남편과 가족을 떠나 하루만이라도 집 가까이에 숙소를 잡아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며칠은 부담스럽지만 하루 정도는 자신에게도, 가족에게도 부담스럽지 않아서 꾸준히 실천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가족들이 의아하게 생각했고 자 신또 한 시도하는 게 불안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삶의 활력소가 되어 서로가 힘을 얻는 시간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과거의 나는 약속시간을 정확히 지키거나 조금 일찍 가는 편이었다. 그러나 요즘엔 아예 1시간 전에 가있는다든지, 시간이 있다면 더 일찍 가서 근처 카페에서 책을 보거나 시간을 보낸다. 여유 있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도 있고 넉넉한 마음으로 기다리다 보니 한결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대만족이다. 자기만의 독립 시간을 고민해보면 분명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다른 곳을 향했던 두 눈동자로 자신을 살피는데 반짝여보자. 다른 이들에게 쓰였던 마음의 시간을 자신에게 잠시 돌려두도록 하자. 내가 나에게 집중할 때 타인도 나에게 집중한다. 내가 나에게 정성을 다할 때 타인도 나에게 정성을 다한다. 이기적이라는 것과는 분명 차원이 다른 경험이다. 진정한 이기주의자는 진정한 이타주의일 수밖에 없다는 글이 생각난다. 자신을 제대로 존중할 때 자연스레 이타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는 역설로 표현되었으리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은 당신이라면 더더욱 자신에게 충실해야 한다. 자신을 향한 투자가 결국 남을 향한 투자가 된다.
마음의 부자는 시간 부자가 아닐까? 자신에게도 시간을 내어주자. 늘 종종걸음으로 산 당신이라면 잠시 걸음을 멈추자. 늘 일에 쫓겨 살던 당신이라면 잠시만이라도 내려놓자. 그렇게 한다고 큰일 나지 않는다. 정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