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에서의 roman은 소설의 뜻을 가지고 있다. 로맨스는 공상적이며 서정미가 넘치는 사랑이야기를 지칭하는 말로 해석된다. 비연애, 비출산, 비혼 등이 크게 늘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남녀 간 사랑을 다룬 로맨스로는 승부를 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다. 로맨스 영화, 로맨스 웹툰 등 판타지 소재의 장르의 성공을 위해서는 자극적이고 스피드 한 이야기 전개가 필수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가상현실에서는 가능하다는 설정이 주는 대리만족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로맨스물이 꾸준히 등장하여 히트를 치게 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의 보편적 심리에 작품 고유의 색채를 더함으로써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 전개를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다수의 사람들은 평이한 로맨스에서는 더 이상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오늘부터 1일' 했던 남자 친구가 점점 싫어지면 헤어지고 다른 남자 만나면 된다. 친한 친구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잘못을 했다면 손절하면 된다. 급기야는 결혼하고 나서 후회한다면 이혼을 고려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가족은 절대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관계이다. 가족은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많은 선택지를 놓고 살아가는 인생인데 가족은 왜 선택을 할 수 없는가에 대해 안타까운가? 속상한가? 바꿀 수 있다면 부모도, 형제도 바꾸고 싶을 때가 있다.
어릴 적에 알코올 의존증이었던 엄마를 둔 A양이 있다.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엄마의 취한 모습을 복 살았고 아버지와 싸우는 모습을 보며 살았기 때문에 늘
엄마가 내 엄마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았다고 한다. 바꿀 수 있으면 술을 먹지 않는 엄마로 바꾸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그런 일을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가족은 피를 나눈 관계지만 관계의 질은 피와는 상관이 없나 보다. 사랑보다는 미움이 앞서고, 고마움보다는 서운함이 앞선다. 친절함보다는 무례함이 익숙하고 다정함보다는 차가움이 익숙하다. 가족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드러낼 곳은 많지 않다. 이야기하면 할수록 자신만 비참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위로받고 이해받고자 꺼낸 가족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그런 가정에서 태어났으니 그러지'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아 입을 다문다.
친한 친구관계에서도 살다 보면 삐걱거린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서도 도통 이해가 안 되는 구석이 많다. 하물며 가족은 혈육이라는 점 빼면 성격도 가치관도 다른 집단이다. 과거에는 자녀들이 성장하거나 결혼하면 분가하는 게 당연했지만 요즘은 분가가 불리함을 알기에 지속적인 동거 확률이 늘고 있다.
부모가 자녀를 사적 재산으로 취급하는 경우, 권위주의적 양육으로 인해 개개인의 자율성 박탈의 경우, 세대 간 가치관 차이로 인해 끝없이 벌어지는 욕구 등은 가족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고통을 주어서라도 착취하려는 이기주의 현상으로 나타난다. 가족 무의식은 경계가 불분명하다. 자신만의 영역의 한계를 모르는 탓에 다른 구성원의 영역을 침범한다. 침범을 당한 자는 고유한 자기를 상실하고 개성이 묵살당한다. 서로에게 얽힌 가족은 가족 내 사랑을 갈구하려다가 자아를 말살한다.
현실은 이러한데 마음은 그렇지 않나 보다. 가족 안에서의 로맨스는 아직도 옛 로망에 사로잡혀 못 이룬 사랑을 갈구한다. 곧 줄 것만 같고, 참으면 줄 것 같고, 시간이 지나면 줄 것 같아서 떠나지 못하고 서성댄다. 서로의 경계가 허물어진 가족은 서로를 보호할 수 없다. 나의 일부라는 착각, 가족이니까 그래도 된다는 착각, 가족이니까 그래야 한다는 착각은 버려야 한다. 상처가 상처인 줄 모르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자기가 받은 상처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아물지 않은 상처는 투사를 통해 다시 상처를 나게 하기 때문이다.
가족이 아무리 우애가 깊다고 해도 좋은 것만 있지 않다. 크고 작은 불순물은 쌓이고 미움이 생길 수 있다. 사랑으로 시작했으나 아픔으로 끝날 수 있다. 가족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할 때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이라도 부정적인 가정 얘기를 한다는 건 여간 불편한 진실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족을 감싸고 보듬어주는 것만이 성숙한 자세는 아니다.
가족도 미워질 수 있다고
가족을 미워하는 마음도 자연스러운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자연스레 드는 감정까지 부인하지 않았으면 한다. 자신에게 사랑의 대상 되었든, 상처를 준 대상이 되었더라도 이제는 제대로 홀로 서기 하자. 과거의 상처를 제대로 인정하고, 바뀌지 않는 부모나 가족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자. 로맨스는 없다. 원래부터 없었다. 가족들로부터 받은 영향은 있겠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되지 않는다. 충분히 당신의 능력으로 변화가 가능하다. 누구 때문에 내가 불행한 것이 아니다. 불행하다는 생각에서 떠나지 못하는 당신이 불행한 것이다. 가족 주변에서 떠돌던 걸음을 돌리고 당당히 걸어도 좋다. 이러한 독립이야말로 진정한 자기와의 로맨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