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별은 안녕한가요?

애도(grief)

by 한꽂쌤

인간관계에서 헤어짐을 선택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사랑을 많이 베푼 사람일까?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일까? 인간관계를 맺을 때 유난히 많이 베푸는 사람이 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다. 상대방이 더 많은 사랑을 요구한 것도 아닌데 베풀어야 직성이 풀리는데 어쩌란 말인가? 더 많이 베푸는 사람은 억울함에 취약하다.


내가 이만큼 했는데 몰라준다고?

내가 저를 어떻게 생각했는데 나를 무시해?

내가 이 정도 했으면 나를 좀 챙겨주는 게 있어야지.

너무 이기적이야.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해


배려의 끝판왕인 A라는 30대 여성은 관계를 정리할 때 과감하다. 조금씩 서운함이 쌓이다가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서운함이 쌓이는 동안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정리대상자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다.


말이라도 좀 하든가


A는 말한다. "내가 그동안 그렇게 사인을 보내도 모르더라" 그러나 상대방은 전혀 모르는 눈치다. A만의 방법으로 표현을 했을지 모르지만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배려심 많은 A는 연애를 할 때 최선을 다한다. 데이트 스케줄, 먹는 거, 취향도 되도록이면 맞춰주는 게 편하다고 한다. 그러나 왜 그녀는 점점 이 사랑이 힘든 걸까? 편하다고 말하는 그녀의 말이 맞기는 맞는 걸까? A가 가장 화가 났던 순간은 상대방의 이기심에 맞닥뜨렸을 때이다. 자신이 늘 맞춰줄 때에만 이 관계가 유지된다는 사실에 통감한 그녀는 과감히 관계를 끝낸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의하면 '상대에게 끌려 열렬히 좋아하거나 애착을 느끼는 감정상태'를 사랑이라 칭한다. 사랑하는 대상이 생기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빠져들어 열정적으로 호감을 표현하고 깊은 애착을 경험한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행동을 살펴보면 강박관념에 빠진 이들과 유사한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뇌는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강박장애 환자들의 세로토닌 양과 비슷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사람을 흥분시키는 사랑의 열기는 유효기간을 지켜야 하는 규칙이라도 있는 듯 막을 내린다. 연인들의 열정적인 사랑은 도리어 심한 스트레스와 피로감이 동반되기도 하는데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놓아버린다.


사랑도 에너지다. 에너지를 사랑에 쏟아붓고 나면 이별을 통해 에너지 회수에 들어간다. 고갈된 에너지가 충분히 차오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20대 여성 B양은 며칠 전 6개월 사귀던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 헤어짐 뒤에 찾아오는 공허감은 견딜 수 없이 슬프다. 주위 친구들이 앞다투어 새로운 남자를 소개하느라 바쁘다. 3개월 전 친정엄마를 떠나보낸 K는 아직도 엄마가 살아계신다는 생각에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하고 있다. 가끔 찾아오는 상실감이 두려워 그러한 생각이 찾아오지 않도록 바쁜 일정으로 하루를 꽉꽉 채워놓는다.


애도(哀悼)라는 단어가 있다. 애도는 죽음과 상실에 대한 심리적 고통을 슬퍼한다는 표현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친밀한 관계를 맺은 대상과의 이별에 있어서 상실감을 추스르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 모든 흐름이 빠른 시대여서일까? 애도의 과정이 생략된 경우가 많다. 연인과 헤어진 뒤에도 곧바로 다른 대상을 찾아 떠난다든가 이별 후 찾아오는 슬프고 공허한 감정을 억압하는 행동을 하느라 급급하다.


인생을 살다 보면 다양한 감정을 경험한다. 기쁘고, 슬프고, 외롭고, 우울하기도 하다. 어디 이뿐이랴만은 그중에 슬픈 감정 즉, 애도의 감정은 상실과 이별에 대한 감정단어이다. 죽음을 통해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과정에서의 애도 반응도 있지만 현실적인 실제 관계에서의 애도 반응도 필요하다. 영국의 정신과 의사 존 볼비(John Bowlby)는 4단계로 설명하였다.


첫 단계: 충격과 무감각의 시기(수일-수주)

두 번째 단계: 그리움의 시기(수주-수개월)

세 번째 단계: 와해와 절망의 시기(수주-수개월)

네 번째 단계: 재조직과 회복의 식(수개월-수년)


처음에 이별을 경험하게 되면 부정하고 회피하려는 경향이 많다. 이후에는 대상에 대한 그리움이 몰려와 다시 만나고 싶은 강렬한 마음에 혼란과 방황의 시간이 있다. 이 시기를 버텨내고 나서는 사랑하는 이가 떠났다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단계가 온다. 결국에는 이별의 대상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슬픔과 더불어 긍정적 감정을 느낀다. 이러한 과정은 회복을 거쳐 다시 새롭게 삶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는 과정이다.


애도의 시간은 한 사람을 떠나보내고 다시 내 삶으로 회복되는 시간이다. 충분한 애도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서둘러 잊으려 하는 경우 수일, 수년의 시간의 흐른 뒤 우울감, 불안감, 고립감, 공허함 등을 만성적으로 경험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 오랫동안 근무했던 직장에서의 퇴직, 성장한 자녀의 독립, 심지어 소중히 기르던 애완동물의 죽음, 신체 일부를 절제해야만 하는 수술 등을 경험했다면 충분히 슬퍼하는 애도의 시간을 갖도록 하자. 사람에 따라 기간을 다르겠지만 이 기간을 무시하다가 만성 우울감에 시달릴 확률이 7% 정도 된다고 한다. 많은 경우 자연스레 좋아지지만


어머니를 떠나보냈으니 우울할만하지


라고 하며 가볍게 지나치지는 말자. 가까운 지인들의 위로도 도움이 되지만 self help group에 가입하여 정보를 나누고 소속감과 보살핌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다. 미국과 아마존닷컴에서 메스트 셀러였던 The Lovely Bones라는 책에서는 14살 소녀가 성폭행으로 살해당한 뒤 죽은 그 소녀가 이 세상을 바라보며 스토리를 전개하는 형식의 책이 인기를 끌었다. 슬픔과 회복, 희망의 메시지를 통해 죽음이 일어나는 일은 좋은 일은 아닐지라도 그런 일이 일어난 사실을 바꿀 수 없기에 그 이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도움이 되는 책이다.


회복기간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길게는 인생의 대부분이 걸릴 수도 있다. 이별은 누구나 경험하지만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보내느냐가 남은 삶의 길을 바꿔놓는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냈거나, 친밀한 상황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던 당신이라면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갖자.

바로 상처받은 당신을 위한 치유의 시간이다.


친정엄마와의 이별을 언제쯤 바로 바라 볼 수 있을지 모른다. 3년여가 지난 나에게도 치유의 시간을 충분히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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