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커플의 권태 극복기
2023년 7월에 영면하신 작가 밀란쿤테라 같은 뛰어난 예술가는 사후에 더 많은 팬들이 그를 작품으로 또다시 만나 제사하며 사제가 된다.
그의 예술적 사상이 자세히 서술된 ‘커튼’이란 작품은 인간 세계를 거대한 커튼으로 뒤덮인 장소로 묘사한다.
세상은 커튼 너머를 보지 못하도록 보통사람의 눈을 가리고 인간은 커튼에 적힌 내용을 진실로 착각하며 살아간다고 군데라는 말한다.
쿤테라는 삶의 진실한 모습을 희구하는 자라면 완강한 그 ‘커튼’을 찢어햐 한다고 피력하며 소설이라는 것이 커튼을 찢어버리는 칼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소설의 존재 이유가 이것이다.
또한 쿤테라는 식상하고 판에 박힌 소설을 만들어 내는 소설가에게 경멸과 혐오의 시선을 보낸다.
그런 소설가가 심지어 성실하기까지 하다면 그것은 야망이라는 귀기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라고 한다.
1997년 발매한 ‘정체성’이란 소설은 나에게 인간 정체성에 대한 커튼 너머의 진실을 약간 볼 수 있게 만든 쿤데라의 연애소설이자 정체성과 인간의 시선 그리고 셀프실종, 사라짐, 친구, 시선, 욕망, 선택, 꿈등에 대한 이야기가 혼합된 철학 소설이다.
5살 아들을 땅에 묻은 여주인공 샹탈은 남은 가족과 유리되는 선택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한다.
시택의 공동체에서 떨어져 홀로 아파트 구해 젊은 애인 장마르크와 동거하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얼마 후 내외부에 의한 자기중심적 권태와 나이 듦의 헛헛함을 느끼고 애인 장마르크에게 이야기한다.
“‘남자들이 더 이상 나를 돌아보지 않아”라는 말은 이 소설은 트리거가 되고 시라노역을 하는 이의 사모와 애찬이 가득한 편지가 도화선이 되어 샹탈의 정체성을 뒤 흔든다.
타인의 시선과 자아의 시선사이의 긴장감은 소설을 더욱 흥미롭게 하는 지점이며 독자를 끝까지 혼란스럽게 한다.
책 말미를 읽어보면 꿈과 현실의 구분이 모호하며, 마지막 3페이지 정도에는 독자에게 계속 질문을 던진다.
결국 마지막 페이지는 쿤데라의 시선으로 남녀주인공을 바라보며 작가가 자기 소설 안에서 또 소설을 쓰며 상상한다.
군데라 소설은 삶의 커튼 너머의 진실을 독자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마성이 있다.
인간의 정체성은 남들이 나를 보는 시선인가? 내가 나를 보는 시선인가?
아니면 정체성이란 말은 그냥 관념이고 사변적 언어에 불과한 건인가?
오늘도 나는 나의 정체성을 사유하며 커튼에 작은 구멍을 낸다.
George 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