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무상과 변화무쌍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작가 밀란쿤테라가 14년 만에 낸 장편은 알랭, 칼리방, 샤를, 라몽 네 주인공의 공상과 대화를 중심으로 좌충우돌 굴러간다. 여성의 배꼽에 관한 에로틱한 공상부터 스탈린의 농담, 그에서 파생된 인형극까지 사유가 또 다른 사유를 부르며 이어진다. 작가가 불쑥 등장해 한마디를 던지는 쿤테라식 화법은 여전하다.
소설은 매우 난잡하지만 읽는 이의 관점과 상태에 따라 삶의 철학과 통찰을 느낄 수 있다.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가 언급될 때는 철학책 같기도 하고, 농담에 관한 연극의 한 장면이 소설에 불쑥 끼어들 때면 난해한 퍼즐 같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향해 천천히 나아간다.
배꼽의 이야기, 스탈린의 농담, 알랭을 버린 어머니 이야기, 자살하려는 여자를 살리고 익사한 남자의 이야기와 같이 많은 삽화들이 들어가는데 이것을 하나로 관통하는 것은 바로 삶과 의미부여의 무의미함이다.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우리의 삶 하나하나에 의미 부여를 한다.
그것은 일종의 시대정신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세상에 대해 조소를 날리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밀란 쿤데라였다.
30대 첫 소설 ‘농담’으로 시작하여 85세에 마지막 소설 ‘무의미의 축제’로 자신의 삶과 인생 그리고 세상에 대한 철학을 정리한다.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개조할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다는 걸 오래전에 깨달았어.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이지."
과도한 의미부여 말 /사상 / 거대담론 / 이데올로기 같은 걸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부질없고, 의미가 없는 무의미적인 것을 느끼면서 소소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책에서 이야기한다.
“이제 나한테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그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더 강력하고 더 의미심장하게 보여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한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 담게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요. 아름답게요.”
"이유도 모른체 까르르 웃는 아이들.. 아름답지 않나요? 들이마셔 봐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무의미를 들이마셔 봐요. 그것은 지혜의 열쇠이고, 좋은 기분의 열쇠이에요.."
쿤테라는 결국 인간의 삶과 고독이 아무런 의미 없음의, 보잘것없음의 축제이며, 이 '무의미의 축제'야말로 우리가 받아들이고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과도한 의미부여는 자기 합리화의 기제로 다가올 수 있다.
삶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서 그랬듯이 강의 물처럼 무의미하게 흐르는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의 양대산맥 장 폴 샤르트르, 알베르 까뮈 그리고 밀란 쿤데라 모두 신을 비웃는다.
위의 지성인 모두 인간은 세상에 툭 던져진 존재라고 말한다.
실존주의(Existentialism)는 인간의 자유, 선택, 책임, 고독, 불안, 죽음 등을 중심으로 다루는 철학적 사조이다. 핵심 개념은 인간은 정해진 본질(목적, 의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존재(세상에 던져짐)하고 나서 본인의 선택에 의해 자신의 본질을 만들어간다는 주장이다.
또한, 인간은 언젠가 죽는 존재라는 사실을 의식할 때 비로소 진정한 삶에 눈을 뜰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알베르 까뮈(이방인, 시지프 신화) 장 폴사르트르(구토), 프란츠 카프카(변신) , 도스토옙스키, 니체(신은 죽었다), 그리고 밀란 쿤테라 같은 섹시한 지성인들이 공통적으로 전하고 싶은 삶의 메시지는 사실 하나라고 생각한다.
인생무상
‘인생에 영원한 것은 없고 선택에 의해 변화무쌍하며 우여곡절이 많다’라는 뜻이다.
너무 허무하고 우울하게 세상을 관조할 필요는 없다.
인생이라는 변화무쌍한 축제를 자신의 지혜로운 선택으로 좋은 사람들과 재밌게 놀다 가면 된다.
2023년 깃털처럼 가벼운 존재로 무의미의 축제를 끝내신 거장의 신작은 앞으로는 볼 수 없겠지만,
쿤테라는 우리 마음 안에 무겁고 묵직하게 우리가 문학과 인생을 이야기할 때마다 참을 수 없는 존재로 회기 하며,
우리를 무의미의 축제로 초대한다.
George 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