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포그너 소설 ‘소리와 분노’ 비평

소리와 분노

by 조지조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 ‘소리와 분노’는 처음 읽는 순간부터 독자를 혼란 속에 던져버린다.
문장은 파편화되어 있고, 시간은 제멋대로 흘러가며, 의식은 소음처럼 튀어나온다.
그러나 그 난해함 속에서 우리는 삶의 진실과 마주한다. 인간 존재란 원래 불안정하고, 기억은 언제나 부정확하며, 시간은 선형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포크너는 독자로 하여금 그것을 체험하게 만든다.

첫 장의 화자는 지적 장애를 가진 막내아들 벤지다.
그는 30년을 3살로 살아간다’는 말처럼, 언어와 시간의 질서를 갖지 못한다.
대신 그의 기억은 감각의 자극에 따라 과거와 현재를 뒤섞으며 흘러간다.
그의 울음은 단순한 무능이 아니라, 오히려 가문의 몰락을 드러내는 진실의 목소리다. 니체가 “언어는 진리를 은폐한다”라고 말했듯, 언어를 벗어난 벤지의 울음은 가문 몰락의 알몸 같은 진실을 가장 먼저 드러낸다.

하버드의 강가를 떠도는 퀜틴은 시계의 초침에 사로잡힌다. 그는 시간을 붙잡으려 시계를 부수지만, 오히려 초침 소리에 더 괴로워한다.
그는 누나 캐디의 정절에 집착하며, ‘순수의 상실’을 자신의 몰락과 동일시한다. 결국 그는 쇠를 매단 채 강물로 걸어 들어가며 자살을 택한다.
하이데거가 말한 죽음을 향한 존재’, 사르트르가 강조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개념은 퀜틴의 운명과 겹친다. 그는 죽음 속에서만 비로소 자기의 시간을 선택한다. 그의 자살은 패배가 아니라, 시간을 끌어안은 실존적 선언으로 읽을 수도 있다.

제이슨은 몰락하는 가문 속에서 가장 현실적인 인물처럼 보인다. 그는 돈을 움켜쥐고, 냉소와 분노로 하루를 채운다. 하지만 그의 현실성은 윤리의식이 배제된 냉혹한 합리성일 뿐이다.
사르트르가 말한 자기기만 속에 그는 철저히 갇혀 있다. 돈은 그의 신이 되었지만, 그 신은 끝내 그를 구원하지 못한다. 그는 현실적이지만 가장 불행한 인간이다

마지막 장은 흑인 하녀 딜시의 목소리로 채워진다. 몰락한 코믹슨 가문을 묵묵히 지켜보는 그녀의 인내와 신앙은 이 소설의 유일한 빛이다.
포크너는 귀족 가문이 아닌, 사회적 주변부에 있는 흑인 여인의 눈을 통해 구원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구원은 중심에서 오지 않고, 가장 낮은 곳에서 온다. 그녀의 목소리는 잔해 위에서 남는 인간의 존엄을 드러낸다.

소설 속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파편이고, 기억은 불완전하다. 줄리언 반스가 말했듯,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과 불충분한 문서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라면, 포크너의 소설은 그 불완전성 자체를 보여준다.
독자는 난해함과 혼란, 좌절을 겪는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포크너가 의도한 바일 것이다.
혼돈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우리는 몰락의 실존을 몸으로 이해하게 된다.

우리가 사는 시대 역시 소음과 분노로 가득하다.
그러나 포크너가 보여준 것처럼, 인간은 몰락 속에서도 여전히 의미를 창조할 자유를 지닌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끝내 견디고,

살아내며,

다시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George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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