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도달하는 가장 깊은 곳
사랑은 흔히 소유의 언어로 말해진다.
내꺼, 내 사람, 내 연인, 내 곁에 있는 존재.
그러나 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소설 ‘그녀를 지키다’는 그 모든 소유의 언어를 조용히 거둬들인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사랑은 정말 ‘가지는 것’ 즉 소유로 완성되는가?
지킨다는 것은 소유하지 않는 용기일 수 있다는 생각이 스치운다.
이 소설에서 남자는 여자를 차지하지도, 그녀의 삶을 대신 결정하지도 않는다. 그가 선택한 단 하나의 역할은 지키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주인공 미켈란젤로는 안다.
세상은 사랑마져 소비하려 들고, 아름다움조차 함부로 다루는 곳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그녀를 세상 한가운데가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떨어진 곳에 둔다.
지킨다는 것은 곁에 두는 일이 아니라, 해치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하는 일임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사랑을 증명하려 부던히 애쓴다.
함께 찍은 사진, 관계의 이름, 미래에 대한 약속..
그러나 이 소설의 사랑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다.
진짜 사랑은 설명되지 않고 증명되지 않아도 살아남는다.
그녀는 사라지고, 남자는 실패한다. 그는 그녀를 구하지 못했고 함께 살아가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랑은 무너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과가 아니라 태도였기 때문이다.
‘그녀를 지키다’가 말하는 사랑은 죽음 앞에서도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비극적인 집착이나 미화된 순애보가 아니다.
사랑은 죽음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훼손되지 않는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그녀를 잊지 않는다.
하지만 추억을 전시하지도 않는다. 그는 기억을 조용히 감당하는 삶을 선택한다.
기린다는 것은 자주 말하고 회자하는 일이 아니라, 오래 살아내는 일임을 그는 몸으로 증명한다. 인간 존재의 본질은 삶을 살아가는데 있다. 비올라도 미모에게 살아가는 삶을 바랬을 것이다.
이 소설이 도달하는 사랑의 깊이는 격정도, 희생도 아니다.
영원한 사랑이란 소유하지 않겠다는 결심, 드러내지 않겠다는 선택, 말하지 않음으로 지켜내는 존엄. 그것은 가장 조용하고 깊은 형태의 사랑이며 우정이다. 그래서 가장 오래 남는다.
사랑은 반드시 손에 남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훼손되지 않은 채 마음에 남아도 충분하다.
사랑은
가지는 순간 작아지고,
지키는 순간 깊어진다.
George 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