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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히콥스토스 Aug 25. 2024

청첩장 모임

며칠 전 첫 직장의 입사 동기에게 연락이 왔다.


“OO야 오랜만이야! 잘 지내고 있지? 나 곧 결혼하는데 시간 되면 우리 동기들 다 같이 얼굴이나 보려고.”


입사 초기에 꽤나 친하게 지냈던 J였다. J는 유쾌한 성격에 사회성도 좋아 친해지기 쉬운 사람이었다. 나와 사무실도 가깝고 공통점이 많아 입사 후 빠르게 친해졌다. 둘이 깊은 속내를 얘기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만날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었다. 내가 이직을 한 이후 만나기가 어려워졌음에도 때때로 나의 앞날을 응원해 주는 카톡을 보내주던 따뜻함이 있었다. 그런 그가 11년 동안 만나온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게 됐다니 1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함께해 온 J와 앞으로 평생을 기약할 반려자와의 시작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데 왜일까? 내 마음이 축하하는 마음만 있는 게 아닌 것은?


요즘 주변에 결혼하는 지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이따금씩 가게 되던 지인들의 결혼식이 이제는 한 달에 두 번 이상일 때도 있을 정도로 많아졌다. 하지만 지인들의 결혼을 마냥 기쁜 마음으로 축하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면 당사자들은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한국에 사는 많은 게이들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고민이 늘어간다. 누구나 하는 경제적인 고민을 제외하고 게이라는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헤테로섹슈얼들은 하지 않아도 될 고민들이 있다는 얘기다. 그중 결혼과 관련된 고민은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한다. 먼저 결혼을 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여기서의 결혼은 남자와의 결혼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으로 동성 간의 결혼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보장받는 결혼을 꿈꾼다면 동성 결혼이 법제화되어있는 해외 국가로의 이주가 필수적이다. 해외 국가로의 이주는 평생 한국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높은 장벽이다. 동성결혼이 법제화되어있는 국가, 예를 들어 개방적인 미국의 몇몇 주에서 거주했던 경험이 있는 경우에는 그나마 장벽이 조금은 낮아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이 없는 대부분의 한국 게이들은 해당 국가의 언어와 문화가 너무 낯설기 때문에 해외이주를 현실적인 선택지로 보기가 어렵다. 연고가 하나도 없는 곳, 가족과 친구가 없는 곳, 나의 언어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의 이주는 내 삶을 지워내고 다시 새로운 삶을 그려내야 할 만큼 큰 변화가 동반되기 때문이다. 해당 국가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일은 또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가. 해당 국가의 언어와 문화가 익숙해져야 직업을 구할 수 있을 텐데, 이에 필요한 시간과 노력은 얼만큼일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이 모든 것을 이겨낸다 하더라도 해당 국가의 시민권 혹은 비자를 부여받는 일은 또 새롭게 넘어야 할 산이다. 이러한 많은 어려움으로 인해 대부분의 한국 게이들은 해외로의 이주를 꿈꾸기가 어렵다. 이는 제도적 차원에서의 결혼의 권리를 강제적으로 박탈당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결혼이 특권이 되는 사회에 살아가는 한국게이들에게 남의 결혼이 씁쓸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그렇다면 결혼을 하지 않기로 결심해 한국에 남은 게이들의 미래는 장밋빛일까? 이들은 결혼을 하지 않은 30대 이상의 미혼 남성에게 쏟아지는 주변인들의 관심, 더 정확하게는, 오지랖을 견뎌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결혼은 마치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 짓는 잣대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한국 게이 남성들이 한국에서 계속 살아가게 된다면 미혼상태이지만 정상임을 주장하기 위해 아주 오랫동안 정신적 부담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결혼을 왜 하지 않는지에 대한 거짓말로 뒤덮인 변명을 만들어야 하며,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모든 주변인들에게 이 변명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정상성을 증명해야 한다. 더 나아가 “너 혹시, 남자 좋아하는 건 아니지?” 와 같은 차별이 뒤섞인 기분 나쁜 농담은 덤이다. 비혼남성이 이전보다 많아졌다 해도, 아직도 보수적으로 머물러 있는 한국의 사회적 통념상 30대 이상의 미혼 남성은 결혼의사나 결혼여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공격을 받아야 한다. 결혼은 게이 남성들에게 불가능의 영역임과 동시에 그들을 옥죄는 목줄이기도 하다.


결혼을 못한다고 생각하면 결혼식에 가서 내는 축의금이 아깝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나중에 돌려받을 일도 없는 축의금이 주기적으로 나가게 되니 경제적 부담이 생기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넘치게 풍요롭다면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니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결혼식과 가지 않아도 될 결혼식을 구분 짓게 된다. 결혼식에 초대된 기쁨만 느끼기에도 모자란데, 지인의 결혼식에 등급을 나누게 되고 축의금 걱정까지 해야 하니 본인은 얼마나 마음이 불편할까.


나 또한 결혼의 등급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도 갈 결혼식과 가지 않을 결혼식을 나누기 때문이다. 나는 상대와 나의 관계를 기준으로 결혼식을 구분한다. 쉽게 말해, 결혼 당사자가 앞으로 계속 보고 싶은 사람들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앞으로 계속 보고 싶은 사람들은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다. 앞으로도 관계를 지속하고 싶어 이미 커밍아웃을 한 지인들, 그리고 아직 커밍아웃을 하지는 않았지만 추후에 할 예정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 소중한 사람들의 결혼식에 내는 축의금은 아까울 리 만무하다. 그런데 이 기준점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의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으면 그때부터 골치가 아픈 것이다. 아직 커밍아웃을 하지도 않았고, 앞으로 할 계획도 없지만 적당히 친한 사람들의 결혼식 말이다. 결혼식에 등급을 매길 때 나의 마음은 정말이지 참 불편하다. 나의 재산과 급여는 한정되어 있으니 이런 고민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 밉기만 할 뿐이다.


J의 청첩장 모임 덕분에 오랜만에 입사동기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으며 모두가 잘 지내고 있음에 안심했다. 얼마 남지 않은 결혼에 잔뜩 들떠있는 J는 예비신부와의 연애 이야기, 결혼 준비 이야기들을 들려주었고 미혼이었던 나머지는 귀를 쫑긋 열고 열심히 듣고 있었다. 사실 한국의 전통적인 결혼을 할 계획도, 마음도 없는 나에게 결혼 준비 이야기는 흥미롭지 않다. 더군다나 극도로 상업화되어 있는 공장식 한국결혼식에 큰 반감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답답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결혼을 앞두고 설레는 J를 보니 그의 결혼에 대한 낭만이 멋져 보였다. J는 나와 아주 가까운 사이도, 앞으로 커밍아웃을 할 사람도 아니지만 그의 낭만을 축하하기로 마음먹었다. 11년의 연애가 꽃피운 그의 결혼은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으니까. 나도 그런 결혼을 하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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