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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a Dec 27. 2023

겨울

어느  날은 옷장 저 뒤편에서 겉옷을 꺼냈다.

어떤 날은 뒤편에서 목도리를 꺼냈고, 다음날은 또 다른 숏패딩을 꺼냈다.

그렇게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고 있다는 걸 아무도 모른 체 진짜 겨울이 왔다.


"책임님, 저 퇴사 생각하고 있어요..."

내가 처음 퇴사를 입 밖에 내뱉은 날이다. 하루 종일 불안감에 떨다가 그 다음 날 터지고 만 것이다.

휴직을 하고 부서 이동을 한 곳에서 적응을 하지 못한 탓일까?

내가 입사했던 담당업무와 전혀 다른 업무였고, 매일 매 순간 모르는 단어와 문장들로 이야기하는 책임님들을 보며 무서워졌다. 또 그때처럼 혼이 날까 봐. 내 능력이 이것밖에 안된다는 걸 이곳에서도 알게 될까 봐.


나의 말에 책임님들이 놀라시며 말씀하셨다.

"아니 이거 아무것도 아니다. 한 6개월만 하다 보면 조금씩 이해되는 것들이야. 네가 너무 조급하게 생각해서 그런 거야. 공부하면서 조금씩 알아가 봐"




 하지만 6개월 동안 일이 없었다. 


 거의 모든 날, 시계만 보며 초단위로 지나가는 시간들을 지켜보았다. 

3개월 동안은 회사 컴퓨터로 유튜브만 보며 시간을 축냈다. 매번 반복적으로 하는 일이 있었지만,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반복적인 단어들은 그 의미를 모르는 채로 마우스 커서만 클릭할 뿐이었다. 

 무슨 공부를, 어떻게 배워야 하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회사 업무시간에 무엇을 해야 시간이 잘 갈지에 대해 이야기만 끊임없이 했다. 쓸모 없어진 기분이었다. 내가 알던 대기업은 이런 일을 하는 곳이 아니었다. 내가 대학교 4년 내내 스펙을 쌓기 위해 했던 일들이 지금 커피나 마시자고 했던 일들이 아니었다.


 두 번째 퇴사 얘기는 바로 팀장님께 말씀드렸다. 나를 붙잡지 않는 팀장님이 솔직히 야속했지만 달리 방도는없었다. 그렇게 단 이틀 만에 자유의 몸이 되었다.


 마지막 사원증을 제출하고 나온 뒤 뱉은 입김과 함께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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