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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명 Jul 27. 2022

미 혹(美 惑)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와 메타버스, 그리고 연암 박지원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저술가인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호불호가 명확한 성격으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였다. 자신도 양반이면서 조선 양반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하였으며 이것 저것에 호기심도 많아 경제활동은 하지 않고 늘 공부하며 글을 쓰기에 바빴다. 

 박제가, 유득공, 홍대용 등 당대의 실학자들과 교우하며 서양의 신학문을 배웠고, 실학 가운데서도 청나라 유학파인 ‘북학파’라고도 불리우는 이용후생 학파의 중심 인물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열하일기(熱河日記)>는 박지원의 한문 산문인데, 1780년 정조가 청나라 황제 건륭제의 70세 생일을 축하하는 사신을 파견할 때 수행원의 자격으로 동행한 연암이 청나라에서의 견문을 기록한 기행 수필이라 할 수 있다. <열하일기>는 모두 25편의 글로 이루어져 있고, 이 중 <호질(虎叱)>과 <허생전(許生傳)>은 유일한 문학작품에 해당한다.



 이번에 살펴볼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는 <열하일기> 중 <산장잡기>에 수록된 고전 수필로서, 청나라의 수도 연경(지금의 북경)에 도착한 조선 사신 일행이 건륭제의 생일잔치에 늦지 않기 위하여 서둘러 열하로 이동하면서 ‘하룻밤에 강을 아홉 번 건넌 체험’을 다룬 글이다.       


    

 강물을 건널 적에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보기에, 나는 그 사람들이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향해 속으로 기도를 드리나 보다 하였다. 그런데 한참 있다가 안 사실이지만, 강을 건너는 사람이 물을 살펴보면 물이 소용돌이치고 용솟음치니, 몸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하고 눈길은 물살을 따라 흘러가는 듯하여, 곧 어지럼증이 나서 물에 빠지게 된다. 그러니 저 사람들이 고개를 쳐든 것은 하늘에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요, 물을 외면하고 보지 않으려는 짓일 뿐이었다. 또한 잠깐 새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판인데 어느 겨를에 속으로 목숨을 빌었겠는가.  


        

 강물을 건너는 사람들이 강물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고 이 글은 말하고 있다. 모두들 “요동 벌판이 평평하고 드넓기 때문에 강물이 거세게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다.”라고 나름 말하지만, 연암은 아래와 같이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Eureka)를 외치고 만다.     



 요하(遼河)가 소리를 내지 않은 적이 없건만, 단지 밤중에 건너지 않아서 그랬을 뿐이다.       (중략)  

나는 마침내 이제 도(道)를 깨달았도다! 마음을 차분히 다스린 사람에게는 귀와 눈이 누를 끼치지 못하지만, 제 귀와 눈만 믿는 사람에게는 보고 듣는 것이 자세하면 할수록 병폐가 되는 법이다.  



 즉, 사람들은 낮에 강물을 건널 때 위태로운 물을 바라보면 어지럼증이 나서 물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므로, 물을 외면하고 보지 않기 위해 하늘을 보았던 것이고, 밤에는 물이 보이지 않으니 거센 강물 소리만을 듣고 벌벌 떨면서 걱정을 하게 된 것이다.    


        

 한번 추락했다 하면 바로 강이다. 나는 강을 대지처럼 여기고, 강을 내 옷처럼 여기고, 강을 내 몸처럼 여기고, 강을 내 성정(性情)처럼 여기었다. 그리하여 마음속으로 한번 추락할 것을 각오하자, 나의 귓속에서 마침내 강물 소리가 없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무려 아홉 번이나 강을 건너는 데도 아무런 걱정이 없어, 마치 안석 위에 앉거나 누워서 지내는 듯하였다.       


지난 3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기술 전시회 '모바일월콩그레스(MWC) 2022'에서 방문객들이 VR 기술을 체험하고 있는 모습. /신화 연합뉴스


가상세계에서는 이제 성범죄(?)까지 발생하여 아바타의 범죄행위에 대해 개인을 처벌할지 여부를 논의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연암은 18세기에 이미 메타버스(metaverse)를 구현했다. 현실은 소용돌이치고 용솟음치는 물살 가운데 위태롭게 있지만 물아일체(物我一體)의 마음가짐으로 이를 극복하여 오감(五感)을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전국시대의 고대 사상가인 장주(莊周, BC 369 ~ BC 289)는 상대론을 펼치며 이 세상에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진실은 없다고 주장하였는데,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어 즐겁게 놀다가 깬 뒤에 자기가 나비의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자기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는 ‘호접지몽(胡蝶之夢)’이라는 고사 또한 오늘날의 가상공간(Cyber Space)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면 소리와 빛깔과 같이 외부에 있는 사물에 현혹되지 않고, 본질에 집중하여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는 이 고전 수필의 가르침은 ‘가상 현실(VR)’ 및 ‘증강 현실(AR)’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내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내가 된 꿈을 꾼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호접지몽(胡蝶之夢).  딸인지,  나비인지 아빠인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하물며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강을 건너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할 뿐 아니라, 보고 듣는 것이 수시로 병폐가 됨에랴! 나는 장차 나의 산중으로 돌아가 대문 앞 계곡의 물소리를 다시 들으며 이와 같은 깨달음을 검증하고, 아울러 처신에 능란하여 제 귀와 눈의 총명함만 믿는 사람들에게도 경고하련다.        


  

 역시 연암이 전하고 싶었던 바는, 강물을 건너는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강물을 건너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이 수시로 병폐가 되므로 외물에 현혹되지 않고 마음을 다스려야 함을 그의 여정을 통해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박지원은 청나라의 강을 아홉 번 건너면서 가상세계로 미혹(美惑)되었다. 이 아름다운 유혹은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기도 하고, 연암과 같이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도 할 수 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세상으로 점입가경(漸入佳境) 진입하면서 우리는 가상세계와 친숙한 것을 마치 2020년대의 실학자로 인정받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위에서 연암이 언급한 ‘처신에 능란하여 제 귀와 눈의 총명함만 믿는 사람들’이 바로 메타버스만을 미래의 먹거리이자 보고(寶庫)라고 외치는 지금의 MZ세대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실물이 없이 관념상으로만 존재하는 가상화폐인 코인(Coin)시장의 폭락으로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저 세상으로의 이동을 고민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연암의 경고는 시대 초월적이기도 하다!     



사람은 마음가짐에 따라 또 하나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지만, 최근만 보더라도 가상금융시장은 어째 마음먹은 대로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오감으로 인식할 수 있는 표면적인 것에 미혹(迷惑)되지 말고, 마음을 올바르게 하여 스스로 미혹(美惑)의 경지에 들어서자는 연암의 메시지는 자칫 현실 부정의 진통제로 보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상견빙지(履霜堅氷至)’의 징조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보이는 이 시대에 ‘아름다운 유혹’이라 이름하는 진통제는 어쩌면 우리에게 필수품인 것인지도 모른다. 혹여나 적정 투여량을 넘게 된다면, 미혹은 결국 우리를 강물속에 빠뜨리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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