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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명 Aug 25. 2022

부럽지가 않아

이사벨라 버드 비숍여사가 바라본 19세기 말의 한국

 여동생 부부가 스위스에서 살다가 한국에 온 지 몇 년 되지도 않아 다시 칠레라는 지구 반대편 나라로 떠난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필자는 하마터면 ‘아이쿠!’ 하며 절규할 뻔 했다. 남미대륙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는 필자의 상상속 칠레의 모습과 실제와는 별 차이가 없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 이유는 우리에게 더 이상 ‘부러운 나라’가 없어져버린 것과 무관하지 않다.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어?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전혀 부럽지가 않어     


                                                        <부럽지가 않어>,  노래 -장기하-        


 

 유행하는 대중가요의 위 가사처럼 정말로 우리나라가 부러워하는 나라가 없겠냐 만은, 이미 우리가 부러워하는 나라보다는 우리를 부러워하는 그들이 많아진 지 오래이다. ‘이게 나라냐’, ‘헬조선’이라 외치며 주변의 모든 사물과 현상, 사건들에서 굳이 부정적인 면만을 압수수색하는 그들의 표현에 의미를 둘 것 없이, 이 정도면 훌륭한 나라임에 틀림이 없고, 누군가 ‘지옥’이라 말하는 헬조선은 오늘날 한반도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력을 자랑하고 있다.         




세계 최고수준을 자랑하는 기업, 기술들이 이 밖에도 한국에는 많다. 이제는 문화적으로도 세계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농촌 여성들은 이 밖에도 온 가족의 옷을 직접 만들고, 온갖 음식을 만들고, 무거운 공이와 절구를 사용하여 벼를 찧고 무거운 짐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장에 가며, 물을 길어 오고, 먼 거리에 있는 밭에 나가 일을 하고,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며, 실을 잣고 베를 짠다. 게다가 이들은 예외 없이 아이를 많이 낳는데, 아이가 세 살이 될 때까지 젖을 먹인다. 농촌 여성들은 삶의 즐거움이 별로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고된 가사를 며느리에게 물려줄 때까지 그저 묵묵히 일만 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그들은 서른에 벌써 쉰 살은 먹어 보이고, 마흔 살이 되면 이가 거의 빠진다. 몸단장을 해야겠다는 생각마저도 아주 이른 나이에 잊어버리고 만다.              


 

 19세기 영국에서 온 비숍여사는 조선 여성들의 살인적인 가사노동과 여성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미라 같은 그녀들의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시집을 와서 출산을 하고 육아는 건너뛴 채(아이들은 알아서 자기네들끼리 컸다) 일만 하다 인생의 황금기를 고스란히 반납해버리는 조선 농촌 여성들의 고달픈 삶을 여과없이 기술하며 여행광인 자신과는 다른 운명의 그녀들을 진심으로 동정하는 듯 하다. 


조선 남자들도 일은 하였지만, 나름 빈둥거릴 수 있었다. 분명 조선시대는 여성에 대한 존중이 역사상 가장 형편없었던 시기이다.


 이 글은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 1832~1904)이 한국을 현지답사하며 체험을 기술한 기행기록문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Korea and Her Neighbours》로, 1898년 영국에서 출간된 이 책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부유한 목회자의 딸로 태어나 해외여행을 하지 않으면 시름시름 앓는 부담스런 특이체질을 가진 비숍여사는 여행가이자 작가로서 평생을 여행하며 살았다. 외부에 알려지기는 지리학자이기도 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성공회 선교사로 각국을 다녔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20대 때부터 캐나다와 미국 각지를 여행하며 책을 내기 시작했고, 교회를 통한 흑인들과 인디언들의 인권운동에 헌신한 것으로 유명하다. 50세의 나이로 10살 연하인 주치의 존 비숍 박사와 결혼하였으나 5년 후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다시 여생은 여행으로 점철되었으며, 유럽의 동아시아 연구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주옥같은 논문과 자료들을 남긴 그녀는 섬세한 관찰을 통한 치밀하고 실감나는 묘사로 필요 이상의 주관적 감상이라는 빈틈을 잘 메꿀 수 있었다.




 평생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기행기록문을 발표해온 그녀가 은둔의 왕국(Hermit Kingdom)이라 불릴 만큼 중국과 일본에 가려 제대로 된 정보들이 알려지지 않았던 19세기의 한국, 즉 조선을 방문한 것은 1894년부터 1897년까지로 이때는 비숍의 말년이었다. 이는 당시 그녀의 관찰력과 분석 및 통찰력, 그리고 표현력 등이 최고 경지에 이르렀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계의 그림같은 명소들을 수십 년간 누벼온 후 비교적 매력도 찾을 수 없고 특징없어 보이는 조선을 마주한 비숍이 느낀 첫 감정은 불쾌함이었고, 그녀는 그 감정을 가감없이 글에 드러냈다.    


           

”중국을 우스꽝스럽게 따라 하기만 하며, 반쯤은 겁에 질리고 정신이 완전히 빠진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독립국가“


”관리는 백성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     


“조선 관료의 부정행위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머리가 아홉 개인 뱀 히드라의 머리와 같아서 아무리 잘라 내도 끝이 없다”



 이 밖에도 “조선은 끔찍하게 불결하다” 라든가 “조선인들은 응큼하며 교활하고 서로간에 신뢰가 없다”라는 평가를 글을 읽어 나가는 필자의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툭툭 뱉어낸다. 결코 틀린 말이 아니기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이 글은 지저분한 나의 집을 다녀갔던 깔끔한 부잣집 친구가 “너네 집은 정말 더럽더라”라고 악의없는 말을 천진하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있는 그대로를 말한다는 것. 그것은 사실 혹평이자 불쾌감의 표시일 수 있다. 자연스럽다는 것. 그것은 아름다움 보다는 추함에 가까울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비숍은 “서양의 기준으로 서울을 재단(裁斷)한다”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조선을 매정하게 대하였고, 지나치게 차갑게 바라보았다. 젊은 날에 유명 대도시를 맘껏 돌아다니며 구경한 후, 나이 들어 ‘내가 빼먹은 곳이 있나’ 하며 지방 소도시들을 기대없이 살펴보는 감흥, 사실 감흥이 아니면서 감흥이라고 최면을 거는 비숍여사의 푸석푸석한 영혼이 느껴지는 글이라고 하는 것은 자격지심에서 나온 과민반응일까?  그리고 “14세기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 페스트(흑사병)가 퍼져 유럽 인구의 절반 가까이 사망했다는 것은 오히려 그들이 위생적으로는 조선보다 못한 것이 아닌가?”라는 항변도 단순한 방어기제로 평가절하 되어야 할까?    

 

 한편 끔찍했던 첫인상과는 다르게 비숍여사의 조선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사실 호의적이다.     


      

조선에는 나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겨준 예의범절과 순수함, 위엄, 그리고 친절함이 있었다.


사람들의 평상시 표정은 약간 얼뜬 듯하면서도 명랑하다. 사람들의 전반적인 신체 형상은 특히 잘 생긴 사람들의 경우, 힘이나 강인한 의지력보다는 지적 총명함이 돋보이는 인상을 준다. 한국 사람들은 분명히 잘 생긴 인종이다.      


    

 이 밖에도 “조선에서 가장 장엄한 광경은 1만 2,000봉으로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그와 같은 아름다운 장관을 본 적이 없다”라고 하였고, 금강산의 산봉우리를 보고는 “이 광대한 협곡과 아름다움의 모든 요소는 그저 나그네의 찬탄을 불러일으킬 따름이다”라고 하여 조선의 자연은 아름답지만, 조선인들과 그들의 생활은 미개하다는 ‘별건 평가’를 결국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비숍여사가 부산 제물포를 거쳐 조선을 방문한 지 120년 남짓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우리는 인고의 세월 속에서 가슴아픈 사건들을 겪어오긴 했지만, 더 이상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부러워만 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현재의 모습이 절대적으로 만족스럽지 않은 것은 ‘예전 부끄러운 나의 모습’을 우리들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전 그러한 나의 모습을 보았던 ‘그(녀)’의 앞에서 더 이상 당신을 부러워하지 않는다고 외쳐 보지만 웬지 모르게 주눅이 드는 것은, 백인들만 있는 곳에서는 흑인이 불안감을 느끼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위 조선인들의 복장과 규모를 보면 이들이 어느정도 사회적 지위와 부가 있는 부류들임을 알 수 있다.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은 소중한 역사서이자, 19세기 우리나라 각계각층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뛰어난 글솜씨로 풀어낸 고전수필이라 할 수 있다. 훌륭한 문학작품이라는 것에는 추호의 의심도 가지지 않지만, 감추고 가리고 싶은 내 얼굴의 주름, 기미와 잡티를 민망하게 밝혀주는 고화질 카메라처럼, 마치 내 신용을 정확하게 분석하여 신용점수와 대출가능 금액을 알려주는 금융 AI처럼, 이 책은 그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김치찌개 돼지기름 떠오르듯 표정을 굳게 하는 야릇한 반감이 내 온몸에 붙어있는 것을 보게 해준다. 

 참고로 난 뭐, 전혀 부럽지가 않다. 정말이지 하나도 부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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