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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Dec 13. 2019

무채색

겨울의 공기와 외로움에 관하여

대부분의 나날을 집 안에서 보내고 나니 겨울이 되어버렸다. 누군가를 데리러 가는 길 바람이 시린데 최근 들어 가장 따뜻한 날이라던 일기예보에 나 없이도 추워졌구나 또 겨울은 와 버렸다. 공기질이 좋지 않다고 해도 아침, 점심, 저녁 가운데 한 번은 30분 이상 환기를 한다. 차갑게 드밀고 들어와 따뜻한 공기를 한 순간에 밀어내고 볼에 서늘하게 닿는 공기의 감촉이 좋다. 겨울의 공기는 그대로다. 여름의 공기보다 두텁다. 나는 앞으로 몇 번의 겨울을 더 맞게 될까? 


지나온 겨울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다. 그래도 공들여 오래 좋아했던 건 겨울이었다.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고민하다 대충 옷을 챙겨 입고 눈썹도 그리지 않은 채 집 앞 카페에 텀블러를 들고 나섰다. 15 포인트나 모았는데 해가 지나면 포인트가 소멸된다고 했다. 최근에는 귀에 아무것도 끼우지 않은 상태로 자주 다닌다. 왜 그토록 침묵이 어색했을까. 몇 달 전까지 길 위에서는 음악이든 팟캐스트든 열심히 들었다. bgm이 없는 인생은 싫었다.


겨울의 찬 공기를 마시면 사춘기 시절 겨울이 자주 소환되곤 했다. 기억이 남아있지 않음에도 그러했다. 장면 전환은 제멋대로였다. 내가 아주 오래 외로움에 시달리던 사람이었음을 기억했다. 혼자 남고 싶었지만 외로웠다.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면 더 외로웠다. 다시 혼자가 되면 몇 배로 외로워졌다. 나의 청춘과 젊음을 관통하는 단어는 외로움이었다. 매일 사무치도록 외로웠다. 음악을 들으면 그 외로움이 몇 그램쯤 털어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외로움이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내가 외로운 게 아니라, 외로움이 내가 되었다. 



최근 다시 영화와 드라마를 아주 많이 보았다. 아주 많이. 자라고 나서 습관적으로 어둡거나 우울한 예술을 피해왔다. 일부러 즐겁고 유쾌하고 감동적인 예술을 보려 애썼다. 그러나 나를 그 순간에 가장 오래 잡아두는 작품은 어둡고 우울한 것들 투성이었다. 외로움에 자주 마음을 빼앗겼다.


청소년 기엔

-나비효과,  데미안, 해변의 카프카, 브로크백 마운틴, 좁은 문, 수레바퀴 아래서, 전혜린,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반 고흐, 토니 티키타카, 향수


자라서는

-캐롤, 레옹, 그래비티, 색,계 , 블루재스민, 불한당, 어톤먼트, 초속5센티, 우리도 사랑일까, 클로져, 테레즈 라캥, 최근 본 가장 따뜻한 색, 블루와 문라이트까지


이 모든 작품의 주제는 하나도 아니고 절망을 말하지도 않으나 그들만의 외로움을 그리고 있다. 결국 나의 안에 축적된 외로움이란 감정을 건든다. 생에 가장 크고 깊게 키워나갔던 감정은 외로움이니 다른 무엇보다도 크게 흔들리고야 만다. 따뜻한 이불, 맛있는 커피와 쿠키, 사랑하는 사람과 포옹을 하면서도 저런 것들을 떠올리면 타들어갈 것 같은 외로움을 느끼곤 했다.


청소년기 일기장에는 우울한 이야기 투성이었다. 일기장은 사라졌고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땐 그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 외로움은 온전히 나를 위해 목적도 없이 쓰였다. 글을 다시 쓰면서는 목적 없는 외로움을 티나게 쓰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암울하고 비극적이고 괴로울 수 있는 세상에 또 다른 무채색의 외로움을 던지지는 말자고.  


최근에는 또다시 지금은 사라져 잘 잡히지 않는, 절벽 앞 강풍이 부는 것 같던 그 외로움 혹은 쓸쓸함에 관해서 쓰고 싶어 진다. 무엇이 되었든 농도 깊게 사춘기 시절의 그 처절한 만큼,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다.


지금의 외로움은 고독이 되어갈 줄 안다. 외로움이 나인적은 없고 때때로 내가 가끔 외로워질 뿐이다. 침묵과 고요 속 바람소리와 연약한 새들 소리만으로도 충분하다. 더 이상 bgm은 24시간 깔릴 필요 없다. 무채색 세상밖에 볼 수 없었어도 세상을 사랑할 수 있었겠다는 예상을 하는 겨울이 온다. 그래서 외로움에 관해 써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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