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울어버렸다.
-울지 말아야지.
마음속으로 결심을 할 때도 진심은 아니었다. 형식적인 가벼운 인사. 내가 울 리가 없었다.
꿈같았다. 온몸이 물에 잠긴 듯 마음에도 머리에도 명확한 언어가 들어오지 않았다. 현실 일리 없다. 점차 그 모든 낯선 상황이 주파수를 일으켰다. 그동안 삼켜온 모든 감정이 내 안에서 울렸다.
나의 결혼식을 기억한다. 신기하리만큼 담담했다. 긴장도 되지 않고 별다른 하루 증 유별나게 일찍 일어나고 다신 없을 만큼 화장을 했고 내가 아는 많은 사람이 수 없이 축하 인사를 건넸지만 대체로 명랑할 수 있었다. 별일은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해 시간과 노력과 마음을 내주었다. 감사함. 그 세 글자로 복잡할 거 없이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너의 결혼식은 달랐다. 아침부터 침이 바짝 마르고 심장 한 구석이 부들부들 쫄보처럼 떨려왔다. 물을 벌컥벌컥 삼키며 배가 고프지 않았다. 네 건강이 조금 걱정되어 걱정했지만 막상 너의 얼굴이 밝아 괜찮아 보여서 안심을 했는데도 심장은 좀처럼 안심이 되지 않았다.
사적인 너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편지를 내가 모를 혹은 오랫동안 잊었던 사람들 앞에서 공개해야 했기 때문일까.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준비되는 때랑 영원히 오지 않을 걸 알았다.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었지만 소용없었다.
멍하니 모든 걸 눈에 차곡차곡 담으면서도 아무것도 담을 수가 없었다.
너의 식이 끝나고 헤어져 가는 길에 자각하는 것보다 더 큰 알 수 없는 감정이 가득 차오르는 걸 느꼈다. 그제야 나는 식장에서 울지 않은 나를 대견해하며 나의 결혼식 때 복잡했던 너의 감정을 이제야 헤아려보았다.
아인슈페너를 앞에 두고 그 감정을 꺼내보려고 노력하니 눈물이 나왔다. 슬픔도 기쁨도 아니었다. 나는 오랫동안 망설임 끝에 '내가 가장 오래 많이 사랑했던 누군가와의 한 시절이 끝난 아쉬움'이란 말을 뱉었다. 내 남편은 '소유권 등기 이전'같은 '상실의 아픔'이라고 농담을 건넸다. 그 농담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너를 소유하고 있었던 걸까. 너와의 시간을 점유하고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그건 너의 입장과는 전혀 상관없는 나의 세계 속의 너의 위치에 관련된 말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걸 몰랐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면 나는 너를 정말 지나치게 너무 많이 사랑했던 거다.
너를 어디에 보내는 것도 아니고 이제 우리가 다시 못 만나게 된 것도 아닌데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의 일을 축하하면서도 눈물이 나왔다. 눈물보다 더 큰 무언가가 마음속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최근에 별 생각도 의욕도 없이 살았고 감정이 차지하는 부분이란 실로 초라했다. 이번 주 월요일이 되기 전까지도 나는 네가 결혼한다는 사실에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늘이 오기 전까지 나는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뭐라 말하기도 어려운 복잡하고 짙은 이 감정을 끌어안고 혼자 엉엉 울어버리고 싶은데 괴롭거나 억울하거나 슬픈 건 또 아니다. 오늘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내가 모르던 너의 세계를 볼 수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나와 보냈을 그리고 앞으로 네가 보내야 할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과 시간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만나본 적 없는 평행선이 너라는 교차지점에서 잠시 엮이고 다시 원래의 궤도로 되돌아갔다. 나는 다시는 예전처럼 너를 볼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아쉬웠던 걸지도 모른다.
잘해준 기억보다는 고맙고 미안한 기억이 남았다. 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다시 돌아가도 그렇지 못하겠지. 후회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최선이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슬펐다. 너를 많이 사랑했지만 너에 대해 난 조금도 몰랐구나. 알 수 없는 거구나 자각을 했다. 나는 아마 네 앞에서 이렇게 말할 수는 없었을 거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네가 결혼을 했다. 너만큼 오래 질리지 않고 한결같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또 만날 수 없겠지. 그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 누구보다도 기쁘게 축하해주고 싶었는데 나는 그만 울어버렸어. 사랑하는 사람의 결혼식은 이런 거구나. 이 마음이 가벼워지기를 바라면서도 오래도록 남아있길 바란다. 나는 여전히 너의 식장을 서성이고 있어. 오래도록 오늘을 기억할게.
이미 여러 번 말했지만, 결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