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라 말하고 사실 저만의 타로를 믿습니다.
심리학과 출신으로서 이런 말 하기 부끄럽지만 별자리, 토정비결, 사주팔자, 오늘의 운세를 보는 걸 좋아합니다. 타고난 운명이라든가 예정된 미래가 있다고 믿진 않습니다. 대신 타고나는 기질이 존재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습니다. 인생의 중대한 문제들을 앞두고 점술을 보러 가진 않지만, 저는 점술이 재밌습니다. 분위기를 유연하게 만들고 삶을 편안하게 만드는 등 사회적인 기능을 수행하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유독 타로카드만은 예외였는데 아마 첫 경험의 추억이 너무 아마추어스러웠기 때문일 겁니다. 24살 제 생일이 되었고 그때 만났던 잘 노는 남자 친구는 저를 홍대로 초대했습니다. 생일에는 클럽에 가서 신나게 노는 게 저희 만의 불문율이자 의식이었고 그날도 마지막 행선지는 클럽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절대 하지 않을 진한 메이크업과 짧은 반바지 차림으로 홍대를 거닐다 노상 타로 집이 하나 보였습니다. 한 번도 타로를 본 적이 없다 하니 망설임 없이 저를 가게로 끌고 들어가던 남자 친구, 조용히 타로술사 앞에 앉아 반짝반짝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습니다. 카드를 뽑으라는 그녀의 지시에 따라 3장의 타로카드를 뽑으니 그녀는 장황하고 자신만만한 말투로 저의 인생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너는 꾸미기 좋아하고 놀기를 좋아한단 말이야. 주변에 남자도 많아서 남자 친구가 불안해할 수 있어.'
대충 이런 내용으로 시작했는데 저는 웃음을 참느라 힘겨웠습니다. 제 인생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면 그 말은 정확히 제가 살아온 인생의 반대말에 가까웠거든요. 아무래도 그 타로술사는 타로카드를 읽기보다는 그날의 저의 옷차림을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타로에 대한 신빙성은 제로가 되었죠.
집에서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을 보내다가 크라우드 펀딩 광고 메시지에 현혹당해 타로 카드를 덜컥 구입했습니다. 타로카드 그림이 너무 예뻤거든요. 한 달이 지나 타로카드가 도착했습니다. 아주 심심한 어느 날 타로 초보인 저는 동봉된 가이드를 줄을 쳐가며 읽는데 읽을수록 재밌고 빠져들더라고요. 타로는 정해진 답이 없었습니다. 주관적 해석의 여지가 아주 풍부하더라고요. 게다가 질문 없는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가만히 앉아 타로를 본다고 아무것도 이야기해주지 않죠. 구체적인 질문이 필요하고 타로는 약간의 단서나 방향성을 제시해줍니다. 그제야 그날의 타로술사는 잘못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타로는 점술이라기보다는 태도, 마음의 수련과 닮았더라고요. '내 과거를 맞춰봐.', '내 미래가 어떻게 된다고?' 묻는 대신에 '이것을 하려면 필요한 게 뭘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뭘까?' 인생을 잘 챙겨나가야겠다는 밝은 기운을 받게 됩니다.
타로카드를 봐도 단 번에 이 카드 이름과 의미도 모르는 타로 초보지만 괜히 위로나 용기가 필요한 날 카드를 꺼냅니다.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원하는 질문을 반복하며 진지한 얼굴로 조심스럽고 섬세한 손길로 카드를 섞다가 왠지 이거다 싶은 카드를 한 장 뽑습니다. 가이드북과 인터넷을 검색하며 저만의 타로 해석을 덧붙이는데 조용하고 신묘한 힘을 가진 친구와 대화하는 기분이 듭니다.
Q.'지금 내게 필요한 게 뭘까?'
A. '코인 9'
코인 9 카드의 영향 아래에서는 긍정의 힘과 풍요가 넘쳐흐른다. 이 카드는 내가 그동안 일해 얻은 결실을 자랑스럽게 바라보기를 원한다. 재정은 안정적이고 정서적으로 만족스러우며 건강하다. 혼란스럽고 길을 잃은 기분일 때 이 카드가 나타난다면 나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타로 리딩 가이드북 by 클레어 굿차일드)
무기력의 끝을 달릴 때 너무 답답한 마음에 타로카드라도 봐볼까...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가진 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자꾸만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는 저를 타로가 따끔하게 혼내주는 기분이 들었죠. 무엇보다도 무기력하게 늘어져있지 말고 자신에 대한 투자를 해야 한다는 말에 팩트 폭행을 당해 약간의 정신도 차렸습니다.
Q. '내가 취업을 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걸까?'
A. '운명의 수레바퀴'
이제 운명이 시작될 것이므로 그 흐름을 따르는 것이 가장 좋다. 수레가 어디에서 멈출지 알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징조로 여겨지며 상승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또한 바퀴는 내 카르마를 다시 내게 돌려주는 능력이 있다. (타로 리딩 가이드북 by 클레어 굿차일드)
어젯밤 봤던 타로인데 운명의 수레바퀴는 익숙하긴 하지만 뜻을 유추하기가 어렵더라고요. 할까 말까 고민되고 여러 가지 선택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기 어려워 망설이던 저는 운명의 뜻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고민보다는 행동하고 주어진 결과를 받아들이기로 말이죠. 운명이라면 열리겠지. 괴롭고 힘들다면 그때 그만둘 수 있으니 손해 보는 것도 없더라고요. 그렇게 살다 보면 적어도 오늘의 저보다 내일의 저는 조금 기대될지도 모를 일이니.
이렇게 보니 타로를 보는 일은 자문자답일지도 몰라요. 내가 알고 싶고 찾고 싶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죠. 굳이 꼭 타로가 필요한 건 아니지만 제게 타로는 내면에 잊고 있던 긍정적이고 밝은 기운을 불어주고 일상의 감사함을 느끼게 해주는 힐링 도구가 되어가고 있어요. 어느새 저는 재미로 보는 척 하지만, 사실은 저만의 타로를 믿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