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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Apr 25. 2020

나마저 괴롭힐 필요 없잖아.

호기롭게 회사를 그만둔 지 1년이 되어 간다. 코로나 탓을 해보려다가 양심이 찔려 바로 정정한다. 오히려 코로나 덕분에 움츠려들 명분을 찾아 안심이었다. 모두가 집순이(집돌이) 생활을 하니 내 행동도 그러려니 넘길 수 있었다. 좀 이상했다. 우울하지도 슬프지도 않은데 무기력했다. 크게 문제로 느껴지지 않아 왜 저럴까 보고 있다가 귀찮아서 방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며칠 전, 남편이 말했다.


"넌 너무 욕망이 없어."


맞아. 좋은 뜻인가 나쁜 뜻인가 생각을 하다 내가 무기력하단 말을 하고 싶은 거란 걸 깨닫는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딱히 그게 분하지도 않는다. 옆에서도 눈치챌 정도인가 봐. 위염이 오래가면서 많은 반성 끝에 불규칙적인 랜덤형 생활리듬을 청산했다. 규칙적으로 먹고 자고 아침에 일어나 환기를 한다. 파란 하늘과 햇살을 보며 따스한 생명력을 느끼고 가끔씩 대청소를 한다. 정성 들여 아침과 점심을 차리고 팟캐스트를 튼 채 꼭꼭 씹어 식사한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이면 동네 산책을 한다. 괜찮은 하루를 만들어 보려고 애쓰는데도 무언가가 계속 비워진 느낌이다. 나는 나의 무기력함에 이미 점령당했다. 


늦은 밤, 잠들기 싫을 때가 있다. 내일이 기대되지 않는다.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날이 올까. 이상하다. 예전에 어떤 사주 보는 아줌마가 나보고 욕심이 그득그득해서 문제라고 했는데, 작년 말 어플로 확인한 올해 운세에서 술술 잘 풀린다고 했는데 역시 믿을 게 못 돼. 


오랜만에 켠 유튜브에 '정민'님이 말한다. '행복해지려고 노력한 적 없었다고. 다만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덜 괴로운 오늘이 되려고 했다고. 그러다 보니 이렇게 좋아졌다고. 조금 더 나은 오늘이면 충분하다고. 내 병명을 깨달았다. 이 무기력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는 병이다. 내가 과연 어제의 나보다 성장했는지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조금 더 나아질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자기 확신'을 잃었다.


분명 회사를 그만둘 때까지만 해도 타인과 세상의 평판이나 기준과 상관없이 어제보다 나은 나 자신을 만들 수 있을 거란 자기 효능감이 넘쳤는데 1년이 지나는 시간 동안 나는 다시 멋없는 쭈굴이가 되어버렸다.


다시 명상을 시작했다. 자존감 회복 영상을 하며 1년간 또다시 죄책감을 켜켜이 쌓아왔음을 느낀다. 아무도 날 탓하지 않아도 탓할 필요 없는 상황에서도 빼먹지 않고 챙겨둔 나의 죄책감 조각들. 


고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쯤 언어 모의고사에 나왔던 지문의 한 조각이 잊히질 않는다. '나의 자유의지는 온전히 나의 자유의지인가? 자유의지 조차 사회화를 통해 체득한 감정과 결정일지도 모른다.' 너무 오래되어 정확한 출처나 문장은 기억나질 않는다. 


새롭게 만들어나가자고 하지만 잠시 손을 놓는 사이 사회가 정해놓은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인간상은 나를 짓누른다. 비교하게 한다. 타인은 물론 과거의 나까지 얽혀 들어와 지금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나약한지 끊임없이 떠든다. 


상관 안 하기로 했잖아. 마음 굳게 먹었었잖아. 앞으로는 그런 기준은 내가 그린다고.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 또 잊고 말았어.

굳이 나까지 죄책감을 가지라고 등 떠밀 필요 없잖아. 

도움되지 않는 자기 검열은 누굴 위한 일이야


이제까지 자기 확신 넘치는 사람을 만나면 반해버리고 숭배해버리고 말았던 건 어쩔 수 없었다. 시류에 상관없이 자신만의 확고한 무언가를 변함없이 지키는 태도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불확실하고 모르겠다고, 나도 불안하다고 울부짖고 싶은 세상에서 어느 한순간이라도 굳게 서서 명확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욕심이 많았다. 인생 그 어느 때보다 독립된 환경에서 날 사랑해주는 사람과 편안한 집에서 맛있는 것 먹고 시간적 여유도 많고 금전적으로도 버틸만한데 거기다 무언가를 더하며 완벽해질 거라는 기대. 평온하고 자기 확신을 가진 뚜렷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 멋진 사람을 찾아내면 끊임없이 비교하며 왜 저 사람처럼 저러지 못하는지 캐묻던 내면의 고문관


놔주자. 무엇이 되려고 하지 말자. 죄책감 같은 거 갖지 말자. 나까지 그럴 필요 없잖아.
그저 어제보다 조금 덜 나를 괴롭히자.


거짓말처럼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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