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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Aug 28. 2020

집 밖에서는 양말을 벗지 못했다.

어쩌면 당신도 당신이 아픈지 모를지도 모른다.

집 밖에서는 양말을 벗지 못했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시절부터 언제나 왼쪽 네 번째 발톱은 기형적인 형태를 띠고 있었다.

누렇고 희멀건 했으며 오래된 화석처럼 뭉툭하고 단단했다.

어린아이의 발에 구부정한 노파의 발톱이 달려있는 것 같았다.


똑각똑각-

다른 사람들이 발톱을 자를 때마다 들려오는 규칙적으로 딱 떨어지는 경쾌한 파열음이 부러웠다.


그래도 다행인 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 남들이 모르는 나만의 비밀

그러나 '발이 못생겼다'는 콤플렉스는 숨길 수 없었다.


이모 댁에 놀러 간 날, 이모는 '양말 벗고 편히 있어.'라고 말했고 나는 그 밤 양말을 신은 채 잠이 들었다.

소풍으로 간 바닷가에서 내내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언젠가 흉측한 내 발톱을 친구들에게 들킬까 봐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렇게 자라 어느 날, 지구 반대편 쿠바에서 만난 남자가 내 발톱을 보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거 치료받아야겠는데"

"무슨 소리야. 이건 병이 아니라 발톱 기형인데."

"말도 안 돼. 병원 가봐. 그거 고칠 수 있어."


그의 말이 마음에 남아 한국으로 돌아와서 떨리는 마음으로 피부과를 방문했다.

내 발을 30초간 보던 의사는 무좀균이니 약을 먹고 연고를 바르고 경과를 지켜보자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28년 내내 콤플렉스였던 기형적인 발톱은 1년간 치료를 받으며 서서히 하얗고 얇아졌다.

이제 왼쪽 네 번째 발톱은 누가 봐도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다.




누가 아프다고 알려주지 않으면 자신이 아픈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인생에 당연히 참고 견뎌야 하는 고통인 줄만 알고 오랜 시간 견디며 살아온 사람


'나는 원래 이렇게 생겨먹었어.'

'이건 나라서 감당할 수밖에 없어.'

나아질 수 있다고 스스로를 믿기에는 그게 아픔인 줄도 모르는 사람


어쩌면 당신의 고통도 나의 왼쪽 네 번째 발톱 같을지도 모른다.

그 고통은 당신의 숙명도 운명도 타고난 기질적 특성도 아니라 잠시의 아픔일 뿐이다.

운이 나빠 균에 감염된 스쳐가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치료하는 방법을 몰라 고통을 방치한 채 점점 아파하는 건지도 모른다.

너무 오래 안고 살아와서 평생 떨칠 수 없을 것 같던 그 고통은 시간은 걸리겠지만, 적절한 치료와 환경을 바꾸고 나을 수 있다고 믿으면, 치유될 수 있는 일시적인 병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너무 희망을 죽이며 살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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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 짧은 글을 올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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