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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Nov 18. 2020

그래도 당신이 일기를 써주었으면 좋겠다.

일기는 하루치의 안부




"그런 건 당신 일기장에나 쓰시죠."


SNS에 대단하지 않은 글을 올렸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비난이다. 일기를 두고 효용성이나 설득력 논리를 따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보통의 일기라는 건 그저 매일을 기록한다는 데 의미가 있으며, 그걸 읽는 사람은 그걸 쓴 자기 자신뿐이다. 사람은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뇌에 보상을 받는 부분이 활성화된다.


단체 사진을 보면서도 우리의 시선은 자신의 얼굴로 향해있다. 내가 잘 나왔는지,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은지. 사람의 관심사나 생각은 대부분 자기 자신과 관련한 것이다.


그러니 내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타인의 이야기란 지루할 수밖에 없다. 재밌거나 유용하거나 내 마음에 혹할 무언가를 제공하지 않는 타인의 일상이란 사랑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야기처럼 여겨진다.





블로그는 변했다.



초기 블로그의 글은 그런 재미없고 지루한 타인의 일기로 점철된 세상이었다. 우리는 목적 없이 대단한 사진도 없이 하루의 일상이나 생각을 기록하곤 했다.



지금 그렇게 블로그를 쓰면 초짜 혹은 바보이다. 지금의 블로그는 돈이 끼어들어 판이 커진 플랫폼 중 하나이다.

돈을 벌고 싶으면 사람들을 모아야 하고, 사람들을 모으고 싶다면 그들의 구미를 당길만한 그리고 도움이 될만한, 유용하고 흥미로운 콘텐츠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당신의 독자는 누구인가, 당신은 그들에게 무얼 줄 수 있는가, 블로그 강의에서  처음 배우게 되는 건 더 이상 일기를 블로그에 써서는 안된다는 지침이다.


그 말을 반박할 마음은 없다.  꽤나 설득력 있는 말이기도 하고 목적 있는 정갈한 글이라는 게 고품질 콘텐츠의 조건 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다만 나는 일기의 효용성에 대해 말하고 싶다.

당신이 일기를 쓰고 있고 일기를 여전히 쓰고 싶다면, 세상이 어떻게 생각하든 당신이 일기를 써주었으면 한다.








누군가의 3년 치 일기장을 읽었다.




어제 우연히 예전 이웃의 블로그를 보았다.


고등학교 때 블로그를 시작했다. 일부는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던 아이들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의 글쓰기 공동체였는지도 모른다. 그들 중 일부는 실제 학교에서도 교류를 하던 아이들이었지만, 일부는 내 생활 반경과는 겹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가장 먼저 싸이월드를 통해 우연히 그 점을 이어준 사람이 그 이웃이었다. 그 당시 내 싸이월드는 방문자가 거의 없었는데 만두와 만두피에 관한 내 글을 인상 깊게 읽었다며 말을 걸었다.


그는 학교에서 나름 유명한 입지를 가진 독특한 캐릭터였다. 그러나 내가 그와 실제 수업을 들은 건 한두 번이 전부이다. 그와 실제로 대화를 해본 적은 없다.


그러나 내 첫 남자친구와 그와 가장 친한 사이였기에 우리도 역시 친구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나는 그의 일상을 함께하거나 직접 관찰하기보다는 그의 시선과 그의 생각으로 한 번 가공된 일상을 공유했다. 그가 기록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의 편집점으로 그를 이해했다.


내게 그는 항상 부러운 사람이었다. 그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었고,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진로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사색을 하면서도 현실감을 잃지 않는 타입처럼 보였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더더욱 교류할 접점이 줄어들었고, 블로그는 인기가 다해 개인 SNS로서의 매력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에 내어주게 되었고 블로그를 일기장처럼 사용하던 이들의 삶은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나 역시 그 블로그에 들어가지 않은 지 3년이 넘었다.  

어제 우연히 그의 3년의 기록이 쓰인 걸 발견하고 반가워 그 글을 하나하나 소중히 읽었다. 그는 많이 변한 환경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대로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그의 글이 그대로였다.


'잘 살고 있구나. 이런 고민을 하고 있구나.'

여전히 변함없이 삶을 살고 있고 나아가려고 하는 자신의 모습을 진솔하게 기록해 준 그 덕에 그다지 따뜻하고 희망에 넘치는 글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움직였다.


그를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거나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한들, 그가 살아온 시간을 그의 기록을 읽는 것보다 더 실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을 리는 없다. 고민하다가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 짧은 댓글을 남겼다.



"나는 여전히 에세이를 좋아하고, 너의 일기를 읽을 때마다 주변 인물의 에세이를 읽는 독자가 되어.
일상을 기록해 줘서 고마워."









일기는 대화가 되어준다.




그의 일기 중에도 그런 대목이 있었다. '이런 글은 실제의 모습에서 편집된 일부분이고,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적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무슨 소용이냐고 묻는 그 글을 읽으며 난 소용의 혜택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그 상황이 참 아이러니해서.


글을 쓰다 보면 특히 일기를 쓰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아무도 읽지 않고 아무 목적도 효용도 없는 이런 글을 내가 왜 쓰고 있지. 단지 내가 즐겁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한 기분


그런 마음으로 썼던 일기를 읽었다. 그날의 나는 그리고 타인은 의도치 않아도 계속 안부를 전하고 있는 거다. 그날의 하루치의 안부를 묻고, 그날 하루치의 생각과 마음을 건넨다. 미래의 나에게, 그리고 삶을 염려하고 애정을 가진 타인에게 진솔하게 써진 그날의 일상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대화가 되었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

과거의 타인과 지금의 내가 하루치의 동등한 감각으로 현재성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창이 되어준다.



더이상 일기의 효용은 묻지 않기로 한다. 어떤 생각이 들거나 기록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어디가 되었든 누가 뭐라 해도 기록해둔다. 오늘이 아닌 어느 날 그날의 나와 대화가 필요한 사람에게 분명 전해지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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