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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Mar 22. 2021

검열의 바다


내 앞엔 검열의 바다가 넓게 펼쳐져 있다. 새싹 잎에 매달려 있는 작은 물방울이었던 그것은 어느새 흐르고 넘쳐 작은 시냇가가 되었다. 바지를 무릎 위로 걷어 올리고 징검다리 없이도 오고 건너던 졸졸거리던 시냇가는 어느 날 갑자기 망망대해 바다가 되어 나를 감싼다. 결코 나는 맨몸으로 바다를 건널 수 없을 거란 걸 생각하지 않고도 알 수 있다. 


그때 존재했던 이야기는 결코 세상 밖으로 끄집어낼 수 없게 된다. 바다를 보고 작은 한숨을 내쉬고 펜을 내려놓는다. 나는 언젠간 그 검열의 바다를 아스라이 바라보며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죽지 않을 만큼 헤엄쳐 멀리 나가 본 기억이 있다. 하루는 고작 다섯 발자국 이상 나아갈 수 없었고, 어느 하루는 100m 밖까지도 나가 보았다. 해가 지기 전, 다시 백사장으로 돌아올 거란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척해보았지만 한 번도 물에 빠진 적은 없었다. 디딜 수 있는 깊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혼자였다. 혼자라 안심이 되었고 혼자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혼자이기 때문에 지독하게 외로웠다.


거기 있고 싶지 않았지만, 목숨을 걸고 그 바다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바다를 사랑해야 하는지 미워해야 하는지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나를 지켜주는 것인지 나를 가로막는 것인지. 지금 여기서 외쳐보면 믿어줄까? 내 앞에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넓은 바다가 나를 둘러싸고 있어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는 걸.


좀처럼 신이 나지 않아. 심각할 거 없는 대사였다. 큰 문제도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 SOS 신호였다. 무감각해서 어쩌지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신이 나지 않아. 고장 난 게 확실해. 그런데 악기 소리를 듣고 눈물이 날 것 같다면 그건 고장 난 게 아니잖아. 다른 생각을 하더라. 계속 다른 생각을 해. 생각을 멈출 수가 없어. 할 일이 없어서도 아니고 무언가가 하기 싫어서가 아니야. 재밌는 일이 없어서도 아니고 신나는 일이 생기지 않아서도 아니라고. 생각이 많아. 다시 내가 커져 버렸어. 단절되었어. 


요새는 감각이나 의지는 무시하고 행동을 해. 춤을 추면 추고 싶어진다고 해. 그러나 알잖아. 춤을 춰도 춤을 추고 싶진 않아. 삶을 살아도 살고 싶어지지 않아. 결국 나는 나를 죽이고 말 거야. 그 간극을 견디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파괴해버리고 말 거라고. 그렇지만 팔다리는 오래전에 묶여버렸는걸. 그러기엔 넌 사랑을 사랑하지. 응 난 조난당했을 때조차 사랑해. 사라지고 싶지 않아. 사라지고 싶지 않다고. 다시 돌아가고 싶어. 그 바다가 없는 세상으로. 


바다가 있는 세상이 싫어. 여기서는 아무것도 외치고 싶지 않아. 혼자이고 싶어. 그 바다에 빠져 본 적 있는 사람과 꽉 껴안고 체온을 나누고 싶어. 다시 따뜻해지고 싶다고. 다시 명료하게 깨어 있고 싶다고. 결국 이제까지 했던 건 아무 의미 없는 거야? 미성숙한 퇴보라는 경고일 뿐이냐고? 두려워? 두려운 건 단 하나야. 그 모든 게 허상이었을까 봐. 그 모든 게 착각이었을까 봐. 위대해지지 말자. 의미도 찾지 말자. 나는 자주 잊어. 자주 다른 사람이 되어. 다시 사랑하고 싶어. 원하는 건 그것뿐이야. 


검열의 바다에서 띄운 편지 한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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