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싫다.'
이 한 문장이 인생 전체를 옭아매던 시절이 있었다. 뫼비우스 띠처럼 날 사랑하지 않는 나는 가만히 있어도 어딘가 주눅이 들어보였고 작은 자극에도 움츠러들곤했다. 그 모습에 대응하는 외부의 자극이 쏟아지고 자연스레 역시 나를 사랑할 수 없을 거라는 자기혐오의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했다.
문제는 '낮은 자아존중감'이었다. 대학시절 발달심리학 수업을 듣던 도중 입을 막고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부모와 애착 형성 관계가 안정적이지 못한 사람은 인생 전반에 걸쳐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고, 나아가 자신의 자녀와도 불안전한 애착 관계를 물려주는 부모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날 공포 속으로 밀어 넣었다.
'나도 알아. 나도 안다고.'
언제나 몇 번이고 울고 싶어지는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자각하고 있다는 데 있었다. 나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나에 대해, 자아에 대해, 본질과 인생의 의미에 대해 더 많이 사유하고 성찰하는 사람이었다. 타인의 애정이 주어져도 경제적인 안락함 속에서도 안심할 수 없었다. 내 문제는 하나였다. 내가 문제다. 그리고 나는 결코 나에게서 달아날 방법이 없다.
내 능력도 처지도 상황도 그리 중요치 않았다. 다른 거 필요 없이 다만 나를 사랑하면 된다. 그게 인생 살면서 가장 중요한 일인데 아니 그거 하나면 충족시키면 되는데 왜 나는 그게 안 될까. 다른 건 바라지도 않았다. 다만, 내가 날 좀 사랑했으면... 누가 해줄 수도 도와줄 수도 없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싶다. 그런데 그건 내게 세상에서 제일 어렵고 힘들고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럴수록 스스로 원망스러웠고 그럴 때마다 더 깊은 자기혐오의 늪으로 빨려들어갔다.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가? 세상에 불공정이 난무하고 정의 따윈 자취를 감추고, 꼭 내게만 나쁜 일들이 생기고 나만 더럽게 운이 없고 남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는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 더러운 현실을 벗어날 방법은 없고 평생 노예처럼 혹은 피해자처럼 그럭저럭 죽지 못해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하는가?
맞다. 세상은 단 한 번도 공평하거나 공정한 적 없었다. 사람들조차 공평하고 공정한 세상이 선이라고 믿은 지 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조선 시대 한국은 신분에 따른 자기 분수에 알맞은 삶을 잘 사는 게 선이라고 믿지 않았나. 우주가 바다가 하늘 땅, 자연은 단 한 번도 공평해지기 위해 존재한 적이 없다. 그들은 그저 존재하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세상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어떤 목적도 없다. 굳이 목적을 찾는다면 계속 태어나고 존재하는 생명 연장 혹은 생명 확장 그 자체에 있다.
그러나 세상과 당신을 수식하는 단어는 놀랍게도 당신이 믿는 그대로, 당신이 생각하는 그대로 반영 되고 창조된다. 믿기지 않겠지만 우리 모두는 엄청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 당신도 나도, 모든 영혼을 지닌 인간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다 창조자다.
자기혐오에 시달리던 시절, 자기 계발서를 싫어하고 무서워했다. 별 내용도 의미도 없이 유행에 기대 팔아먹으려고 막 기획한 책이 싫다는 표면적인 이유도 있지만, 사실 그보다는 자기 계발서를 읽으면 너무 괴로웠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혐오하는 사람에게 그런 류의 이야기는 비정상의 인간이라는 평가와 훈계로만 들린다. 최악의 경우에는 발달 심리학 수업처럼 마음 속 내재하는 핵심 문제 버튼을 건드려 하루종일 기분이 우울해지기도 한다.
시크릿류의 '온 힘을 다해 웒면 전 우주가 너를 도와줄 거야.'라든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 이런 말들은 너무나 흔하고 뻔한 말들이라 오히려 가혹하게 느껴진다. 뻔한 말, 좋은 말 누가 모르나, 말은 쉽지만 행동은 어렵다. 누군 그렇게 살기 싫어서 그렇게 안 사나? 그게 안 되니까 그렇지. 게다가 기껏 그렇게 살아보려고 노력하다가도 잘 되지 않는다고 항변하면 그들은 '여전히 너는 의심하고 있도다.' 지성과 노력이 부족했다는 절대 방패같은 논리로 나를 책망할 뿐이다.
'평생 이렇게 살다가 죽을 팔자구나. 다음 생에 뽑기를 잘하자. 나로 태어나지 말자.' 자기 계발서에 동조하지 못해 내린 자조적이고 파괴적인 결론이었다. 그때까지 내 사고체계는 고장이 났고 이 핵심사고 체계를 바꾸지 못하는 한, 나는 평생 우울하고 비관적이고 자신을 미워하며 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미 태어나서 만들어진 핵심사고 체계가 바뀔리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과 삶을 반추하며 또 목격하며 적어도 나의 현실은 내가 받아들인 것의 총집합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나라는 필터 자체가 문제라 생각했다. 그 필터는 어차피 정해져있고 들어오는 그저그런 자극과 입자들도 이미 선택되어 있다고 굳게 믿고 체념했다. 아니었다. 사람은 내 생각보다 훨씬 위대하고 아름답고 자유로운 존재였다. 그 필터는 내가 제작한 거다. 오래전 무의식적으로 내 마음속 한 번이라도 떠오르고 품은 적 있는 모든 필터는 어김없이 언젠가 내게 도착했다.
말로 표현하기 너무나도 충분치 않지만, 당신은 필터 그 자체가 아니다. 필터를 주문해서 사용하는 어떤 존재일 뿐이다. 그리고 그 필터는 당신이 믿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느끼는 대로 무엇이든 만들고 준비할 수 있다.
세상이 불공평하고 당신이 피해자라고 느낀다면, 의식적으로 단지 앞으로 피해자가 되지 않겠어 하는 잠깐의 말과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당신은 여전히 마음 속 깊이 피해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인데 피해자가 아닌 척 연기를 하고 있어봐야 소용이 없다. 세상을 시험하는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그래봤자 당신이 받을 대답을 '거봐. 그럴 줄 알았어.' 당신은 관성대로 피해자 역할로 돌아갈 뿐이다.
정말로 이제 그 피해자 역할을 그만두고 싶다면 피해자 역할을 하며 모은 마음의 필터를 모조리 버려야 한다. 아니 피해자라는 단어도 떠올리지 말고, 당신이 원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당신에게 친절을 베푸는 세상을 창조해야 한다. 그 필터를 주문 제작하려면 누군가에게 받은 배려와 호의를 선택하고,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그 기분에 젖어들고 그 장면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세상이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세상은 내게 호의를 베풀 생각 없는데, 세상 무슨 수로 그 필터를 제작하냐고 따져 묻고 싶을 수 있다. 놀랍게도 현실에서 물리적으로 경험하지 않았다고 한들, 당신이 무의식적으로 믿는다면, 감정으로 기분으로 그 경험을 하는 것만으로도 현실에 작동된다. 그래서 그렇게 자기 계발서와 많은 훌륭하고 대단한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좋은 것을 끌어당겨라.'라는 뻔하고 지겨운 소리를 반복 하는 거다. 그게 진실이니까. 그걸 경험한 사람은 그게 진실이란 걸 너무 알려주고 싶으니까.
출발점이 다르지 않냐고, 당연히 다르다. 누군가는 태어나서부터 저런 필터 주문 따위 하지 않아도 편안하고 안락한 필터 부자로 태어난다. 경제적으로 안락하다. 평생 능력 있고 똑똑하다. 평생 자존감 높고 자신을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필터를 물려받고 태어난다. 굳이 필터를 주문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남들이 당신보다 쉽게 필터를 쟁취하는 게 조금 억울하다는 이유 만으로 평생 당신을 괴롭히고 고통스러운 필터대로 마구 살 것인가? 그렇다면 그렇게 해라. 그건 평생 당신의 현실이 될 것이다.
과거의 나는 '나를 혐오하고 별 볼일 없으며 어둡고 억지로 사는 인생을 사는 역할'을 자처하며 거기에 맞는 필터를 완벽히 장착했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세상이 리셋하면 좋겠다고 속으로 빌던 약하고 가련한 존재였다. 그 후로 나는 객관적으로 보자면 오히려 상황이 나빠졌지 좋아진 건 딱히 없다. 직업이 사라졌고, 체력이 떨어지고 살도 찌고 노화되었고, 예민한 감각과 소심함, 생각이 많은 사고체계도 그대로 지니고 있다. 본질적으로 내가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지금 내가 주문해서 장착한 필터는 이렇다. '나는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고, 내 삶은 사랑으로 가득 찰 것이다. 나는 점점 운이 좋아지고 점점 좋은 사람들을 만날 것이며,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사는데도 풍요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 매일매일 새롭게 성장하고 있고, 고통과 슬픔이 닥치더라도 이건 성장과 생명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나는 언제나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가 있고 나는 어디든 갈 수 있고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나는 매일의 신남과 기쁨을 온전히 만끽하고 슬픔과 우울함 또한 경시하지 않고 안을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조금의 어려움도 없이 정말로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믿고 이렇게 살고 있다. 이렇게 되지 못할까봐 초조하지도 불안하지도 않고 어떤 공포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 이런 사람이고 이런 삶을 이미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그렇게 느끼고 자신을 그렇게 대우하고 그 경험과 감정을 만끽하고 그 필터가 갖고 싶다면 그 필터를 주문 제작하라. 전체적인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당신을 제외하고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다양한 욕망과 생각과 감정을 느끼며 주문하고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의 현실만큼은 오로지 당신의 것이다. 당신과 현실의 관계, 현실에서의 당신의 역할은 전적으로 당신이 주문한 그대로이다.
지금 지옥에 살고 있나? 세상 사는 게 고통이고 슬픔이고 아픔이라 생각하고 느끼는가? 미안하지만 그 지옥을 주문한 건 당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