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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Dec 27. 2021

예민한 감정을 삶의 축복으로 만드는 법

감정적이시라고요? 행운아이시군요!

청소기를 돌리던 중, 알 수 없는 흐름에 의해서 과거의 상처를 다시 곱씹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응? 완결된 건 아니었어? 이걸 또 방영한다고?’ 감정이란 건 편성표 없이 마구잡이로 몰아치며 재방되는 인기 막장 드라마 같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흐름에서 지금은 드라마를 볼 타이밍도 아니고 그 드라마를 보고 싶지도 않지만, 감정은 힘이 세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드라마를 언제든지 몇 번이고 방영한다. 심지어 더 자극적으로 편집하기도 하다. 그리고 그 몰입감에 속절없이 드라마에 빠져들고 만다. 마치 지금 내가 생생히 현실에서 그 사건을 다시 겪는 것처럼 주연이 되어서.


이런 연유로 사람들은 감정적이란 단어를 피하는 걸지도 모른다. 현실 맥락에 상관없는 과거의 기억과 연관된 감정이 쏟아지면 본인조차도 지금 내가 어쩌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건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


기분이 좋을 때 신날 때 강렬한 밝은 빛에 폭 빠져 있는 건 행복하지만 가라앉거나 절망을 느낄 때는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은 늪에 빠져드는 기분이 든다. 과거에는 다른 사람도 나만큼 감정의 강도를 느낄까 봐 나만큼 감정 전환이 빠를까? 내가 비정상일까 궁금했다. 사실 상대방과 비교해서 내가 어디쯤 있느냐는 그리 중요한 질문이 아니다. 중요한 질문은 ‘지금 감정이 내 삶을 방해할 정도로 안 주인 역할을 하고 있느냐?’이다.


이성을 쓰는 방법처럼 감정을 바라보고 다루는 법도 어렸을 때 배웠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감정이란 게 보편적이고 날 때부터 타고나는 기제나 반응이라 감정을 억압하거나 표현하지 않는 것 외에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고 느끼는 건 부자연스러운 일이긴 하다.








일단 감정적이라는 건 사회적 편견과 다르게 매우 축복받은 특성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에너지로 치환된다고 가정하면 감정을 자주 깊이 느낀다는 건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자주 비참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 슬프다면 반대로 시나리오를 전환해서 기분이 좋아지고 신나는 드라마 역시 실감 나게 잘 쓸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마치 위험성을 지닌 초능력처럼 ‘감정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당신에게 엄청난 선물이 되어줄 수 있다.


체력적으로 무척 피곤해서 손 하나 까딱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갑자기 당신을 엄청나게 기분 좋게 해주는 사람에게 연락이 오거나 생각지도 못한 기쁜 소식을 들었을 때를 상상해 봐라. 당장 잠이 깨서 달아나고 활기가 넘친다. 이 활기는 물론 체력적인 휴식도 중요하지만 좋은 기분이나 느낌은 자양강장제처럼 순간적인 폭발적 에너지를 주는 경험을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우울하거나 침체되면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황을 겪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마찬가지로 당신이 기분 좋아지면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활기차고 활력이 넘치는 잠재력을 지녔다는 뜻과 같다. 원래 인생이라는 게 빛이 강하면 그림자가 긴 법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강하게 느낀다면 긍정적인 감정 역시 강하게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분 좋은 감정만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런 방법은 없다. 특히나 부정적인 감정에 들어서면 거기서 벗어나려 하거나 의식하면 의식할수록 오히려 그 감정에 빨려 들어갈 것이다. 그건 아무리 당신이 이성을 잘 다루는 사람이라도 별수 없다. 이성과 감정이 싸우면 늘 감정이 이긴다. 이성적으로 당신은 해야 하는 일을 처리하고 있을지 몰라도 마음 한구석에도 부정적인 감정을 치워버릴 수 없다. 그런 면에서는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게 그 감정을 지우려고 애쓰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슬프면 슬퍼하고 우울하면 우울해하고 화가 나면 화가 나도록 내버려 두는 게 낫다. 물론 감정을 느끼는 것과 표출하는 건 다른 문제이다.


그러나 감정과 잘 지내는 몇 가지 팁이 있다.





첫 번째, 기분 좋을 때만 감정을 이용하지 말라는 거다. 아무리 착한 사람도 자신이 이득이 될 때만 그 사람을 찾고 만난다면 이용당하는 기분을 느껴 상처 받고 당신을 멀리 할 것이다. 어떤 감정이 일어나도 거기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나쁘다 판단하지 말고 이해해줘야 한다. 사실상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다.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이고 아무런 맥락이 없는 상황조차도 잘 들여다보면 분명 이유가 있다. 느끼면 안 되는 감정, 일어나서는 안될 자격 없는 감정 같은 건 없다. 사회적으로는 존재할지 몰라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의 감정만큼은 온전히 다 인정하고 이해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감정이 자주 바뀐다고 해도 부정적인 감정이 더 많다고 해도 아무 상관없다. 그걸 나쁘거나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는 건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돈 드는 것도 아니고 그 누구도 질타하지 않고 잘못된 것도 없으니 스스로 몰래 억압하지 말아야 한다. 감정은 섬세하고 순수한 어린아이 같아서 속일 수 없고 혼낼수록 반항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두는 게 좋다.



두 번째, 감정의 역사를 따라가 보는 거다. 물론 ‘지금 네가 기분이 슬프구나. 화났구나.’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정에 충실한 태도나 감정을 조금 더 보이지 않는 측면까지 이해하고 싶다면 자아 성찰이 필요하다. 일련의 사건을 관찰하고 기록해보면 유독 예민하게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공통적인 패턴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잠재의식(혹은 무의식) 속 자신에 대한 핵심 관념과 연관되어 유독 당신에게 두려움과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위험요소로 작용한다. 표면적으로는 별거 아닌 사건이라도 그 핵심 관념을 자극하면 감정적 충동에 휘말리고 이전 과거의 모든 기억을 다시 통합적으로 겪게 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일단 감정의 역사를 분석하기 위해서 메타인지처럼 감정과 분리되어 감정을 관찰할 수 있는 의식이 필요하다. 아니면 나와 가까운 사람의 조언을 듣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마음이 내킬 때, 어른스러워 보이고 싶거나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자신의 의지로 감정을 잘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만 감정을 분석해볼 것을 권한다. 준비 없이 타인에게 감정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한순간에 기분이 나빠지고 그 타인까지 공격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의 일이라면 얼마든지 관대해지고 편안해질 수 있는 일도 자신의 감정, 특히 핵심 관념에 관계된 일이라면 그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도망가고 싶고 괴롭고 울고 싶어질 만큼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건 처음에는 이 과정 자체가 고통스럽고 다 알면서도 똑같이 반응하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단순히 안다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위안이 되고 감정적으로 차분해지는 속도가 빨라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까지 실제로 행했다면 억압이나 강요가 아니라 사랑의 마음으로 감정을 이해한 자신을 마구 칭찬해줘도 좋다. 이젠 감정에게 축복과 선물을 받을 차례이다. 당신은 축복과 선물을 받을 자격이 넘치고 또 넘친다. 세상 사람 중 감정을 조건 없이 사랑해주고 관심을 지닌 사람은 많지 않기에 확신한다.



이제 자신에게 기분 좋은 상상을 할 자유를 허락하자. 이유 없이 슬프고 화나는 기분에 휩싸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 이유도 맥락도 근거도 없이 평소 원했던 사건이 일어났음을 마음속에서 재연하고 만끽하는 거다. 현실적으로 그게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지 얼마나 많은 능력이 필요한지 그런 건 잊어도 좋다. 감정의 드라마는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니 그 장르가 어떻든 결말이 어떻든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다. 당신이 가장 기분 좋을 만한 드라마를 쓰고 마구마구 시도 때도 없이 방영해라. 감정을 사랑하는 당신이라면 감정도 기분 좋게 그 드라마를 쓰는 데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다. 공상이니 비현실적이니 그런 걱정은 넣어두길 바란다. 풍부한 감정의 특권을 즐기시라!



불안이나 두려움, 분노, 슬픔, 우울함, 등등 당신을 가라앉게 만드는 부정적인 감정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게 잘못된 것이 아니기에 미워할 필요 없이 그저 자연스러운 감정의 한 부분이란 걸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감정을 하나하나 의식할 수 없는 심연까지 찾아가 포용해버린다면 당신도 알게 될 것이다. 기분이 나빠지는 딱 그만큼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는 것. 기분이 딱 그만큼 좋아지기에 부정적인 감정을 굳이 억누르거나 부정할 필요 없다는 것. 그 누구보다도 정신적인 유산이자 축복의 기운을 많이 지닌 운 좋은 사람이라는 거. 누구보다 감정이란 매개로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힘이 강력하다는 거.

감정적인 당신을 넘치게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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