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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Jul 22. 2021

삶보다 글을 사랑하냐고 묻는다면

삶이 아닌 글은 쓰지 못한다. 아무리 멋지고 그럴듯한 이야기와 자극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소용없다. 내 얘기로 치환되지 않는 한 내 것이 될 수 없는 한 아무것도 쓸 수 없다. 나는 삶을 소화해 가공하고 표현하기 위해 글을 쓰던 사람이다. 삶보다 글을 사랑하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하겠다. 삶은 언제나 글보다 우선한다. 그러나 글은 삶이 녹은 결정체이기에 나의 모든 글을 사랑한다. 또한 내 삶이 계속되는 한 나의 글은 계속된다.


삶은 흐른다. 삶은 그 자리에서 정적으로 따라잡을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무엇인가 묻거나 보려고 해도 그 자리에 가만히 머물러 관찰당하지 않는다. 삶이 내달린다. 나와 상관없다는 듯, 쫓아가기 버거울 정도로 흔적 없이 달아난다. 생각이 흐르고 흐려지다 사라진다. 붙잡아 내게 두어야지, 내 것으로 두고 싶던 생각이 증발한다. 한 번도 내게 피어난 적 없었다는 듯이.


매일 글의 내용이 바뀐다. 글의 어조가 바뀌고 해석이 바뀐다. 길이가 바뀌고 내용이 바뀌고 형식이 바뀐다. 어제는 뭐라고 쓰려고 했지. 내일은 뭐라고 쓰고 싶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삶의 궤적을 사랑하듯이 나를 드나드는 생각의 궤적을 사랑한다. 비록 산산이 흩어 사라졌다 한들, 글을 쓰기 전에는 쓰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곤란하다가도 잠깐 사이 삶이 흘러 난 그 글을 폐기한다. 글을 써보려고 하는데 요새 글이 잘 나오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다. 삶이 나를 두고 자꾸 내달리고 나는 그 삶을 따라잡으려고 전속력으로 질주하기 때문이다. 뭐든 좋다. 난 삶을 사랑한다. 그렇기에 글도 사랑한다. 그 시차와 왜곡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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