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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Aug 03. 2021

유효기한

순간은 영원해도 인연은 영원하지 않다.

27, 30살, 이 여행을 몇 살에 왔으면 좋았을 거냐는 질문에 우리는 일제히 제일 어린 날을 꼽았다. 최대한 어린 날이면 좋았을 거라고. 비단 체력 때문도 마음의 부담 때문도 아니었다. 여행은 우리를 알게 하고 그건 우리를 바꾸니 더 많은 장면 전환을 맞이하고 싶다고. 더 빨리 기회를 주고 싶다고. 어릴 수록 더 긴 이야기를 쓸 수 있어 보였다.



동시에 너무 어린 나이가 아니라 다행이라 말했다. 말하자면 우린 아직 충분히 어린 동시에 끝을 받아들일 줄 아는 나이였다. 삶의 유효기간이 존재하고 이 순간이 영원하지 않으리란 걸 자각하는 나이였다. 희귀한 광경이나 의도치 않은 신기한 인연 혹은 장소와 마주칠 때 우리는 우리의 젊은 날보다 그 순간의 좋음이 얼마나 좋은지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삶에 뭐든 당연히 주어지는 일은 없다는 걸 알았고 여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체력적으로 횟수가 줄더라도 강도 높은 감각을 유지하며 몇 배로 즐거워해서 아쉬움은 없었다.



상대적으로 시간이 더 많고 지금보다 더 아무것도 안 하던 젊은 날 그 시간을 즐기라는 조언를 듣고서도 전혀 즐기지 못했다. 청춘과 젊음 따위 부끄러워 내 맘대로 소진할 수 없었다. 순간에 산다는 건 영원을 사는 환각을 준다. 이 시공간이 영원할 것만 같았다.



지금도 종종 영원을 살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미친듯이 잠을 자고 별 중요치도 않은 영상을 보며 시간을 죽이기도 하고 시간을 촘촘히 쓰지도 않고 심심하다 말한다. 누군가에겐 빠듯한 시간을 홀로 사치제처럼 펑펑 쓰고 있다.



그러나 인연에 관해서는 누구보다도 유효기한을 몸소 느끼고 있다. 영원히 만날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랬고 아무리 서로 잘 지내고 싶다한들 그렇게 되는 경우는 기적에 가깝다는 걸 알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누군가를 만날 때는 여행에서 지닌 마음가짐 그대로 산다. 언제일지 모를 유효기간을 인지하며 내일 끝나더라도 후회하지 않고 받아들일 각오로 순간을 소중히. 좋은 건 좋다고 느끼며. 강도를 최대로.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



순간은 영원해도 인연은 영원하지 않다. 그렇게 시선을 돌리자면 삶이 너무 짧고 아쉽다. 상대에겐 말 할 수 없다. 그도 그렇다면 순간은 더 빨리 끝나버릴테니까. 여전히 영원을 살 것처럼 지낸다. 내일도 의심없이 만날 수 있을 것처럼. 오래오래.



그래서 요즘은 성장이 버겁고 어른스러워지는 것도 다 싫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선택지가 따로 없어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뿐이지. 여기가 사실 열려있는 공간이란 것도 이젠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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