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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Sep 26. 2021

그게 아니라면

나의 지향은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되고 싶었다. 타인이 강요하는 나도 아니고 사회가 요구하는 나도 아니고 원래 그대로의 내가 되고 싶었다. 의식 없이도 내 마음을 흔들고 자각 없이도 언제나 중요했던 건 '자유'였다. 어떤 다른 가치보다도 상위 개념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정말 내가 무엇인지 내 모습이 어떤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나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 아는 건 세상 그 어느 것보다도 더 어렵고 혼란스럽고 난해한 일이다. 경험과 상처, 관념과 가치관, 자기혐오와 방어기제, 감정과 생각 속에서 올바르고 명확하게 나를 찾는다는 건 가당키나 한가. 애초 나라는 개념은 없다고 허상이라고 그런 말을 한다. 나라는 존재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나라는 개념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경험론적 부산물이든 유전자의 계획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형태이든 어떻게 상호작용을 했듯이 내가 살아있는 한, 나는 분명 있다.


어제 깨달은 건 이제까지 삶을 요약하자면, 나는 그저 고통을 제거하고 긍정적인 감정과 활기찬 에너지를 느끼는 상태를 유지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살아왔다는 것이다. 나의 목표는 언제나 조금 더 나은 혹은 완전한 나의 유지였다. 나에 대한 통제감이 행복의 조건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틀은 이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성취하고자 하는 욕구와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고통을 제거하는 걸 그만두고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나든 말든 그건 살아가는데 그다지 크게 상관이 없다는 걸 난 이제까지 왜 몰랐을까 다만 내가 그 상황을 문제로 여겨 문제가 되었을 뿐이라는 걸 말이다.


물론, 아주아주 가끔씩은 그것과는 별개로 하고 싶거나 헌신하고 싶은 가치를 발견한 날도 있었고, 그 느낌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답은 내가 알고 있다. 어제 이 생각을 하고 가슴에 탁 트인듯 숨이 쉬어졌다. 이게 나의 모습이라는 거 내가 되는 건 그런 거다. 내 영혼에 불일치가 일어나지 않고 숨이 잘 쉬어지는 거. 나는 그게 나의 지향점이라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감정을 유지하는 헛된 노력을 그만두고 앞으로 기꺼이 고통을 감수하고 어떤 기분이든 감정이든 상관없이 그냥 살기로 한다면... 내가 얼마나 강해지고 성숙해지는 지 그런 건 목표가 아니라 부산물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대체 뭘 어떻게 하며 살고 싶은 건가.


그 누구보다 자신에게 솔직해야 한다.


나는 편안하게 살고 싶은가? 의미있게 살고 싶은가?... 내가 평생 추구하고 헌신해도 후회가 없이 충만감이 느껴지는 그런 가치와 의미는 무엇일까? 답이 떠오르다가도 가라앉는다.


굳이 그런 걸 결정하지 않는다고 내가 아닌 것도 아니고 아무 문제도 없지만, 지금 이순간 삶에서 나는 선택을 하게 될 거다.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평생 물었던 질문인데 처음 묻는 질문처럼 낯설다.


기다리자. 고요하게 기다리며 관조한다면 분명 떠오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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