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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Mar 24. 2022

감정에 빠지지말고 끌어올리기

필시 기분이 상하거나 텐션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과 마주칠 때는 어떻게 하냐고 L에게 물은 적이 있다. L은 딴생각을 하며 즉시 관심사를 돌린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회피 기술이랄까. 그렇지만 이건 미련이 없는 사람이나 가능한 게 아닐까, 나의 경우에는 아무리 관심을 돌려보려 노력할수록 오히려 다시 그 문제로 돌아오곤 했다. 마치 '자 이제부터 코끼리 생각은 절대 하지 마.'처럼 말이다. 그럼 그 문제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에너지까지 합쳐져서 더 기분이 나빠지곤 했다.


한창 라라 님과 본질 대화를 할 때 라라 님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결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기분이 가라앉으려고 할 때 딱 알아채고는, 물속에 빠져 허우적 되는 사람을 구하듯이 쑤욱 끌어올린다고. 아직 구사해본 적 없는 엄청난 고급 기술처럼 느껴졌다.


오늘은 일주일 넘게 기다린 무인도서관 책을, 메시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멋대로 착각한 덕분에 2시간가량의 지각으로 대출을 할 수 없다는 사소하지만 꽤 강펀치를 맞은 듯한 상황과 마주했다. 분명 책이 들어있을 대출함을 노려보며 믿을 수 없어 몇 번이나 회원증을 태그 했지만 소용없었다.....'대출 가능 기한이 지나 대출할 수 없습니다.'라는 단호박 메시지만 뜬다.... 어차피 책이 있는데 왜 주지 않는 거죠? 이로써 2주간 무인도서관 대출 제한이 걸렸다.


그때 순식간에 피어나서 내게 스며드는 부정적인 에너지 기운을 실시간으로 자각했다. 만약 그대로 두면 몇 분 안에 자책과 원망 짜증 스트레스를 합친 감정이 피어나 폭식을 하거나 잠을 자거나 아무것도 안 하는 나태한 상태로 돌아갈 것임을 직감했다.


어떻게 보면 별 거 아니지만, 나는 이런 류의 실수를 굉장히 싫어하는 데다가 오늘 당장 읽고 싶었던, 오래 기다렸던 책이기에 그저 나를 말로 설득하거나 다른 생각을 이식하는 것만으로는 효과가 없을 게 뻔했다. 내가 원했던 걸 다른 방법으로 보상해주어야 했다.


집으로 돌아가려다가 급히 계획을 수정했다. L의 회사 근처라서 급히 카드 하나를 받고는, 평소에는 조금 멀어 갈 마음이 들지 않던 새로운 도서관으로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지도 어플을 보며 새로운 길을 찾으며 걸으니 할 일이 생겼다. 어떤 책을 빌릴지 고민하고 돌아오는 길에 맛있는 디저트 집에서 간식도 먹자고 결심하니 새로운 미션에 발걸음이 신났다.


필라테스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가 1시간 넘게 걸은 덕분에 뭉쳐있던 에너지는 체력으로 소진되었다. 도서관은... 와 얼마 전 발견했던 예쁜 그 도서관보다 더 카페 같고 예쁘고 자리도 많았다. 안경이 없어서 아쉬웠다. 책 종류가 아주 다양하진 않았지만, 다행히 찜 해둔 책과 읽고 싶던 책이 있는 걸 발견해 대출도 성공적! 돌아오는 길에 간식도 사 오니 다시 마음이 콩닥거렸다.


샤워를 하고 카페라떼를 진하게 한 잔 내려 휘낭시에와 먹는데.. 너무너무 X100 맛있다. 집 근처(운동할 각오가 필요하지만)에 이렇게 예쁜 도서관과 이렇게 맛있는 디저트를 파는 베이커리가 있었다니! 평소 다니던 길목과 한 블록 차이인데 완전히 다른 세계 같다.


이미 벌어졌던 일을 꾹 참고, 사후에 의식적으로 변환한 일은 몇 번 있지만, 실시간으로 딱 감정체를 포착해 바꾸는 의식적인 작업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보단 차라리 내 안에 가둬두고 이해하며 분해하는 단계가 에너지가 덜 든다. 내 안에서 표현되어 동일시되기 전에, 딱 스위치가 눌러진 걸 포착해서 다르게 표현되도록 그 감정을 바꾸는 게 그보다도 빠르고 효과적이고 에너지도 거의 들지 않았다. 앞으로도 써먹고 싶으니 눈 뜨고 잘 느껴봐야지. 그때 라라 님이 말씀하셨던 게 아마도 이런 거 아니었을까... 혼자 짐작해본다.


이왕 시작했으니 끝까지 계속 끝까지 또 끝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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