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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Apr 30. 2022

질문이 사라진 날

질문으로 가득 차서 무슨 질문을 어떻게 건네야 할지 혼란에 가득 찬 시절을 건너 그 모든 질문에 대답을 찾은 것이 아님에도 요새의 난 묻고 싶은 게 없다. 아니 찾고자 하는 게 없다. 그와 우리의 다음이 궁금해서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넘치지만, 타인에게 위탁하고자 묻는 질문은 사라졌다는 표현이 조금 더 적절할 것이다.


언젠가 레퍼런스를 찾지 않는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롤모델도 레퍼런스도 인용도 내 세계에서만큼은 정면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정작 지금은 레퍼런스 없이 레퍼런스를 얻는 게 즐겁다. 묻고 싶은 게 없어지니, 오히려 레퍼런스 삼을만한 사례가 무한히 펼쳐져 있다.


산다는 것 자체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그렇지만 나는 산다는 걸 규정하고 의미를 찾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인간이다. 아니 내 몸과 뇌는 그것을 끊임없이 분류하고 보편의 현상을 찾아내고 원리를 만드는 것을 위해 고안되었다. 그래서 산다는 건 이유를 묻는 것보다도 의미를 묻는 것보다도 훨씬 중요하고 소중하지만, 그렇다고 그 분류를 멈추거나 제한하긴 커녕, 오히려 더 심도 있고 지독하게 파헤칠 것이다.


곧 사라질 생각이기도 하지만 요즘 자주 하는 생각은 언어는 생각을 제한하는가? 아니 언어가 태도나 가치관을 규정하는가?... 아주 뻔한 질문이지만 예전엔 그렇다고 믿었지만, 지금은 언어가 생각을 더 무한하게 해 준다는데 기울어져 있다.... 내가 언어라는 불안전한 도구를 쓰는 인간이라 너무 좋다. 나는 세계와 나를 이해하기 위해 이 도구를 더 마음껏 사용할 것이다. 물론, 이 도구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면서. 그렇다고 이 도구를 손에서 놓을 필요는 없다.


나의 모든 글은 영원의 나에게 보내는 순간의 내가 보내는 편지이다.


p.s. 나의 개인적인 이 글에 나만의 생각은 몇 % 나 함유되어 있을까? 오늘 읽은 신문기사에서는 2% 정도가 개성이라 하던데... 그러니 사실 일기는 일기장에다가 써라는 말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비판인지. 너의 표현 방식이 구려라고 말하면 모를까. 이미 모두가 알고 있고 뻔한 사실이라고 해도 그 사람 관점에서 건져 올려 정제해 다시 한번 쓰는 모든 글은 소중하다. 적어도 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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