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In
2021년 여름을 잊을 수 없다.
서서히 깨어나던 나는 6월이 되기 전 한 차례 변곡점을 맞이했다. 그 당시 그 현상을 게임 캐릭터에 비유해서 ‘사랑 부스터 모드’라고 명명했다. 정확한 원리는 모르지만, 그 모드가 되면 나의 능력과 의지가 몇 배로 UP 강해졌다. 평소라면 귀찮았을 일을 기꺼이 하게 되고 할까 말까 망설이던 일을 거침없이 하기로 결정하고 즐거운 아이디어가 솟구쳐 집에만 머물 수 없어졌다. 몸에 활기가 넘치고 사람들과 만나는 게 즐거웠다. 무엇보다도 그 부스터 모드가 작동될 때 나는 나를 사랑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흐릿한 안갯속에서 정처 없이 방황하던 내게 부스터가 작동되자 창작자를 위한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는 선명한 욕구가 올라왔다. 함께 일하는 구성원이 부품 취급을 받지 않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그 사람의 자아를 실현하는 환경, 이상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었다. 그런 시스템을 적용하는 사업장을 찾는 게 여의치 않아 보이자 아예 그냥 하나 만들겠다는 야망을 품게 되었다.
그때 생각난 건 카페였다. 창작자를 위한 돈을 벌고 그들의 역량도 마음껏 펼칠 오프라인 공간인 카페를 열기로 했다. 일단, 돈이 많이 필요했다. 투자를 하기 위한 시드머니를 모아야겠다. 그때 당장 할 수 있는 건 계약직 알바였다.
기뻐하며 알바를 찾기 시작했다. 더 이상 알바는 노동력을 착취하고 쥐꼬리 만한 최저시급을 주는 가혹 행위가 아니었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던져지는 무력한 노동현장도 아니었다. 알바는 나를 부자로 만들어주고 꿈을 이루어지기 위한 소중한 시드머니를 벌 수 있는 감사한 기회이고 과정 중 한 단계였다. 나는 무슨 일이라도 즐겁게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집 근처 도보로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에 위치한 관공서에서 사무직으로 일할 사람을 하나 찾고 있었다. 공고 속 그들이 원하는 직무요건은 나의 이전 회사 경력에 완벽히 부합했다. 전화를 걸고 받고, 서류를 꼼꼼히 살펴 최소한의 요건에 맞도록 사람을 응대하는 관리직이었다. 서류전형에 합격한 후 면접을 보러 갔다.
날씨도 좋고 기분이 좋았다. 면접관들은 평소 공무원에게 지니고 있던 편견과 다르게 친절한 말투로 시종일관 나를 배려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존중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과 일해도 좋겠다 생각했다.
“저희가 원하는 자리보다 스펙이 높으시네요. 저희가 뽑고 있는 직무는 비교적 단순한 일에 가깝고, 일하는 기간도 짧습니다. 재계약이 어려운데도 일 하실 수 있을까요?”
나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네! 완전 좋습니다.”
면접을 보면서 그렇게 확신에 찬 느낌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여기서 일하면 내게 좋은 일이 될 것이고, 그들이 꼭 나를 선택할 거라는 확신, 일이 잘 굴러가고 있고, 내 꿈은 이루어질 거라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며칠 후, 겨울부터 내 문을 두드려주고 나와의 본질대화에 흔쾌히 응했던 소중한 인연, 춘자 님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집 근처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에 앉아 기분 좋게 대화를 나누는데 그가 생각지도 못한 깜짝 제안을 했다. 어쩌다 보니 이번 여름에 프로젝트성 카페를 운영하게 되었는데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는 믿을 수 없는 제안이었다.
소름이 돋았다. 운명의 부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용할 수 없는 기쁨과 들뜸, 설렘과 확신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이 동시성과 우연의 일치가 신기해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제안을 받고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알바 면접에 합격했다는 소식이었다.
다른 일을 하게 되어 가지 못할 거라고 정중하게 그 자리를 거절했다.
“Are you in?”
“I am in. I am totally ready!”
내가 온몸으로 진실된 소망을 말하자 우주는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여기에서 꿈을 펼쳐 보이라고 대답했다. 2021년 여름은 소중하고 신기한 인연을 거쳐 우주의 응답을 확인한 계절이었다. 그 해 여름이 얼마나 멋질지 알 수 있었다. 기쁘고 또 기뻤다. 그 해를 기점으로 앞으로 영원히 여름을 좋아하게 될 거라 막연한 기대감을 품게 되었다.
스물두 번의 여름은 스팀잇에서 연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