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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Dec 15. 2023

그 여름 독립을 당했다

독립은 독립이다.

20세기 여름의 벽은 마법 세상으로 향하는 9와 3/4 승강장 같은 포탈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그러나 꿈에서만 그리던 만나야 할 인연들이 주저함 없이 교차하고, 잊어버릴 뻔했던 미래가 마구 쏟아지는 여름의 공간, 각박한 현실에 지치고 외롭고 단절되었던 사람들이 다시 낭만을 떠올린다. 함께 손에 손잡고 소년 소녀의 마음으로 회귀하는 동심의 공간

이 벽은 20세기 여름의 시작이고 선언이고 상징이고 마법이다. 2021년의 여름, 춘자와 20세기 소년이 만나 포털이 열렸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낭만적인 이야기를 쉼 없이 써 내려가는 건 이미 예견된 미래라는 걸 그 벽은 이미 모두 알고 있었다.

-인연의 물질적 발현 중 발췌, 2021.07.01




꿈같은 열기로 물든 여름의 한복판에서 낭만을 즐기던 중이었다. 매일 한남대교를 지나는 버스 안에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누군가에게 고되고 지루한 출근길이 내게는 마법의 세계로 향하는 호그와트 열차로 느껴졌다. 하늘은 나의 마음을 대변하듯 아름답고 다채로운 구름과 빛, 물결을 보여주었다. 매일 조금씩 모습을 바꾸어 정답고 신비롭게. 돌아오는 퇴근길, 매일 만들어지는 이야기와 인연이 신기해서 메모장에 글을 적었다. 너무 행복해서 찔끔 눈물이 나왔다.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었다.


어느 날은 운명을 지나온 끝에 드디어 내 자리를 찾은 느낌이 들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마음의 고향에 닿은 기분이었다, 안심. 그동안의 방황과 슬픔, 외로움조차도 모두 수용할 만큼의 행복으로 물드는 시간들이었다. 체력이 고갈되어도 다음 날 번쩍 눈이 뜨였다. 설레는 아침을 맞이했다. 앞으로의 인생은 계속 이럴 것만 같았다. 계속 이들과 재미나고 행복한 낭만 일기를 써 내려갈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독립을 당했다.


몇 차례 불안한 지점은 있었다. 즐거운 나날 속에도 유독 미래 나의 모습과 이들과의 관계를 묻는 말에 나의 타로는 ‘Blade Queen’ 카드를 내밀었다. 비슷한 질문에 세 번이나 같은 카드가 나오자, 그저 우연이라 치부하고 무시하기 어려웠다. 카드의 의미는 ‘독립’.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충동에 따라 행동할 것을 삼가고 지나치게 과장된 자의식을 내려 두기, 이성과 논리의 힘으로 냉정히 차갑게 사고하고 주변을 면밀히 관찰할 것을 충고하는 카드였다. 부드럽지만 차갑고 냉정하게. 지금의 내 모습과 상당히 괴리가 큰 카드였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여기, 소속의 기쁨과 행복을 누릴래.’


 ‘꼭 독립이 커뮤니티를 떠나는 독립은 아닐지도 몰라. 겁쟁이 과거 자의식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닐까?’


내 타로는 듣기 싫어도 언제나 솔직하게 필요한 조언을 해줬다.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독립은 말 그대로 ‘독립’이었다. 그 누구도 나의 성장을 위한 숙제를 대신해주거나 덜어줄 수 없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독립당했다.




보통 독립은 철저히 주체적이고 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나의 독립은 나도 모르는 사이 이미 이루어져 버렸고, 되돌릴 수 없는 고약한 형태로 나와 모두에게 상처를 남겼다. 독립하지 않고는 별수 없는 상황으로 무의식은 나 자신을 몰아갔다. 정신을 차린 후 독립을 선언한 적 없다고 항변해 보고 애원도 해 보았지만 이미 발생한 일이 없던 일이 될 수는 없었다. 잠시 멈춰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을 차분하게 되짚어 보니 그들의 말이 옳았다. 그래, 그건 누가 봐도 독립의 선언이다.


결과적으로 외부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분명 스스로 독립을 선언한 꼴이었다. 내부 의도나 기분, 감정과는 관계없이 물리적으로 구현된 현실 세계에서 내 독립은 실체화되었다. 부정해도 소용없다. 독립은 기정사실화다. 독립을 했든 독립을 당했든 중요한 건 내가 독립을 해버린 상태라는 것이었다. 운명론자인 나로서는 운명에 수긍할 차례이다. 그래, 독립할 운명이었어.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으로 만들어진 가치관, 성향, 사소하고 일상적인 모든 선택의 합은 지금 여기 내가 운명이라고 믿었던 커뮤니티로부터 다시 굳건히 의연하게 독립하라며 나를 독립시켰다. 나는 운명에 의해서 독립당했다. (2021.07.20)







“한번 길을 선택하면 돌아갈 수 없는 건가요?
다음 갈림길이 나올 때까지 계속 그 길로만 가야 하는 건지요?”

 “네. 그것이 운명의 법칙이에요. 다음 선택의 시기가 올 때까지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죠.”

 -더 해빙, 이서윤, 홍주연




당시 많은 고민을 끝으로 도출한 답은 ‘받아들임’이었다. 그 커뮤니티와 작별하고 어떤 방식이 되었든 나만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게 그 사건이 주는 메시지였다. 상징적인 단어는 독립이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그게 무얼 뜻하는지 조금도 이해가 되지 않아 가을 내내 부질없는 질문들을 안고 살았다.



‘여름 동안 내가 느낀 이 운명적 사랑은 거짓이야? 착각이야? 내가 틀린 거야?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긴 거야?’

 

나는 그들을 사랑했다. 아주 많이. 그건 너무나 진심이었다. 운명과 아무 상관없었다. 나는 그 여름 그들을 사랑했고 그들을 사랑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 사랑이 갈 곳을 잃어 다시 내 안에 봉인해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 없이 마음이 아팠다. 



주저앉아 울고 싶은 날 나와 대화를 하며 내가 붙들고 있던 마지막 주문이 있었다. 내가 삶을 통해 알게 된 건 그냥 일어나는 일은 없다는 것, 이것 또한 무언가를 배우라는 숙제이고, 그것을 배우면 나는 성장할 거라는 것, 딱지가 붙어 흉터가 되고 의미가 깊어지면 이건 비로소 상처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으로 완결된다는 것, 그 모든 걸 이해하게 되는 날이 언젠가 꼭 올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그러니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스물두 번의 여름은 스팀잇에서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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