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텔라 Jan 17. 2024

35살 여름 내 시계는 멈춰버렸어

흑백 카메라는 색감을 담을 수 없다.

흑백 카메라는 색감을 담을 수 없다.



돌아온 한국은 완연한 여름이었다. 내가 라다크를 떠나고 비로소 라다크에도 여름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한낮에 태양의 열기가 너무 뜨거워 바깥에 외출하기가 곤란하다고 전했다. 여름은 원래 더운 계절이라지만 그해 여름은 어느 해보다도 지독하고 견디기 힘겨울 정도로 덥고 습했다. 작년 여름이 그리울 지경이었다. 이미 저하된 에너지와 기력은 계절의 영향을 받아 한없이 곤두박질쳤다.



라다크에서 돌아온 이튿날 아침, 홀로 거실 소파에 앉아 그때 찍은 사진을 보다가 줄줄 눈물이 흘렀다. 꺽꺽거리는 울음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목 놓아 펑펑 울었다. 라다크에서는 행복했지만, 행복을 많이 채워 돌아왔지만, 그 행복이 정상적으로 내게 스며들거나 간직되지 못한 채 무미건조한 나를 반사하여 흩어져 이내 사라져 버렸다는 걸 체감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광대하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사랑을 준 인연과 사람들을 만났는데도 나는 달라진 게 없었다.


라다크에서 일시적으로 채워진 일말의 사랑과 행복, 기쁨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거대한 공허만이 남았다. 지금 내가 얼마나 허하고, 채도 하나 없이 두터운 흑백 필터로 뒤덮여 있는지 알겠다. 어떤 노력을 해도 어떤 장소로 떠나도 어떤 사람들을 만나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집에만 머물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 슬프고 공허한 게 아니었다. 내 안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아서 나는 그저 커다란 구멍이 뚫린 공허의 존재라서 그 어느 것에도 접속할 수 없다. 그 어떤 기쁨과 사랑을 마주해도 전선이 끊긴 것처럼, 문이 꽉 닫힌 것처럼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거대한 무력감이 나를 감쌌다. 저항하지 않았다. 슬프지 않았다. 절망적이지 않았다. 그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더 이상 바라지 않았다. 시간이 더 지난다고 좋아질지 모르겠다. 이제까지는 그랬는데 그래도 길어야 3개월이었다. 여름의 열기는 내 시계를 완전히 멈춰버렸다. 아니, 나의 시간은 작년 겨울에 멈춰 난 그저 긴 잠에 들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삶을 살아가는 에너지 동력의 공급은 중단된 지 오래고 그걸 다시 작동시키는 방법을 모르겠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허했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계속 먹었다. 입이 계속 심심했다. 과자를 먹고 음료수를 먹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무언가를 먹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자극적인 음식과 불량 식품이 계속 당겼다. 배는 이미 가득 차 있었지만, 뭘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아 멈출 수가 없었다.


잠을 많이 잤다.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났다. 그래도 잠은 계속 왔다. 다음날이 오는 게 절망적이진 않았다. 삶을 살긴 살 거니까. 시간이 멈춰도 삶은 계속 살아야 하니까. 그저 지루했다. 어차피 오늘이 어제이고 내일이 오늘이었다. 할 일이 없었고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거대한 공백과 무의미가 지루해서 인위적으로 도파민을 생성하기 위한 자극을 갈구했다. 무엇이든 가리지 않았다.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고 놓쳤던 드라마와 예능 프로를 섭렵했다. 그 길다는 원피스를 처음부터 최신화까지 애니메이션으로 보고,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아 만화책으로 다시 봤다. 헌터X헌터를 다시 봤다. 예전보다만 애니메이션을 찾아 끝까지 봤다. 온갖 영화를 보고 대부분의 예능을 봤다.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것이라면 뭐든 좋았다. 나를 잊게 해주는 것이라면 뭐든 상관없었다. 매일 5시간 이상 모바일 요리 게임을 했다. 손목이 나갈 것처럼 시큰거렸는데 멈출 수 없었다. 시간이 잘 갔다.


소파에 누워 있는 시간이 길었다. 대부분의 시간 나는 누워있었다. Astin이 오면 귀찮았다. 간혹 엄마의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았고 Ale가 연락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에게 해 줄 말도 들을 말도 없었다. 세상사는 물론 주변 소식에도 아무런 관심이 가질 않았다. 내 주머니 사정이 어떤지도 잊었다. 투자해 둔 돈도 잊었다. 그 모든 건 어차피 내게 의미가 없었다.



거대한 허무주의자처럼 썼지만,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고 판단을 내리지도 않았다. 게으름과 어둠의 늪에 빠진 나를 비난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마음이 초조하지도 않았고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삶에 관해 나에 관해 어떤 해석도 하지 않았고 의미 부여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운명에 답을 달라 기도하지도 요구하지도 질문하지도 않았다. 시간에게 했던 모든 기대를 버렸다. 시간이 지나도 어쩌면 나아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 사실을 떠올리며 나를 괴롭히지도 않았다. 괴롭히는 데 사용할 힘조차 없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날 기쁘게 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저 삶이 무의미했다.




서른다섯이 된 여름, 한국에 돌아온 춘자 님께 연락을 받았다. 함께 생일을 축하할 겸 만나자고 했다. 기쁜 동시에 약간의 걱정이 밀려왔다. 그러나 마음을 열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은 그녀였다.


그녀는 여전했다. 밝고 생동감 넘쳤고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느껴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내 흑백 필터에 균열이 생겼다. 잠시 내가 고장이 났다는 사실을 잊었다. 춘자 님이 생일 선물을 주셨다. 구스타프 융의 ‘Red Book’이라는 두꺼운 책이었다. 최근 알게 된 이 책을 너무 충격적으로 읽었으며 내 생각이 났다고 웃으며 말했다. 자신의 그림자와 어둠에 관해서 그것을 통합할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신기하게도 라다크에 다녀온 직후 우리는 각자 티베트 사자의 서를 읽었다. 나는 요새 이렇게 살다가 다시 똑같고 지루한 인생을 한 번 더 살아야 할 것 같아 조금 걱정이 된다고 이번 생에 삶을 초월해서 지겨운 삶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살짝 놀라면서 자기는 그걸 알게 되었으니 오히려 한 번 더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 인간 생은 너무 재밌으니까, 요괴를 따라갈 거라고.




그녀에게 고해성사하듯이 요즘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털어놓았다. 2년 전 겨울에도 그녀를 붙잡고 모르겠단 말을 했는데 이젠 알고 싶지도 않다는 시니컬한 말투로 인생의 의미도 모르겠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몰라서 시간을 그저 죽이고 살고 있다고 말했다.


-스텔라, 그런 결정을 내린 자신을 너무 미워하지 말아요. 모든 것은 여전히 당신 안에 있어. 가슴속 불씨를 지니고 있어. 그 불을 켜면 여전히 그대로라는 걸 알게 될 거야.


-불씨가 완전히 꺼져 재만 남은 기분이에요. 다시 불씨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이 저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 방법을 모르겠어요. 작은 희망조차 품고 있지 않아요.


-나는 언젠가 스텔라가 운명에 관한 책을 쓸 거라 믿어요!


그녀의 진심 가득한 애정이 감사했지만, 돌아오는 길에도 여전히 쓸쓸하고 공허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녀가 큰 착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운명에 관한 책이라니, 너무 뜬금없이 느껴졌다. 지금 가장 모르겠는 건 운명인데, 이젠 운명에 대해 한마디도 할 수 없고 내가 운명을 배신한 건지 운명이 날 배신한 건지 분간조차 되지 않았다. 나는 이제 운명을 말할 자격이 없었다. 그때 내가 가장 미워했던 건 운명이었다. 그동안 운명론자로 살아오며 나름의 운명적인 선택을 내렸다고 착각해 온 나를 미워했다. 운명을 따르는 결과가 이런 거대한 공허와 무의미라니! 운명을 믿었던 건 바보 같은 일이었어.



춘자 님을 만난 날엔 비가 내렸다. 그 덕에 여름의 기세가 한풀 꺾여 있었다. 그녀도 이번 여름이 지독하게 더웠고 특히 라다크에서 보낸 여름은 견디기 힘들었으며 날씨가 지금만 같아도 살만해질 거라고 즐겁게 말했다. 나는 비록 오늘은 제법 시원하지만, 다시 더위가 시작되고 9월까지 그 기세가 이어지지 않냐고 되물었다. 그녀는 토끼 눈이 되어 아마 아닐 거라고 날 안심시켜 줬다.


그녀가 말했던 대로 지독했던 더위는 끝이 났다.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스물두 번의 여름은 스팀잇에서 연재되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