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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Jan 24. 2024

소울필터가 켜지다

‘모든 것은 영혼과의 연결에 달려 있다.’

나는 매년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꿈들이 있어
-알레




기쁨이 돌아오고 알았다. 그동안 고장이 난 근본적인 원인이 영혼과의 단절에 있다는 것을. 외부 사건이 발생하거나 특정 행동을 취해 상태가 변화한 게 아니었다. 무작위로 변덕스럽게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다른 사람이 된 게 아니었다. 


선택하는 과정에서 내가 사랑해 왔던 자아관념과 가치관을 부정하는 게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그동안 애써 온 영혼과의 교감을 하나씩 놓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영혼의 작은 목소리를 듣기 위해 감정의 근원을 따라가고 꿈을 해석하고 명상하며 나를 바로 보고, 삶 속에서 느낌을 존중하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는 방식에서 순식간에 유리되었다. 


단지 자아관념을 붕괴시킨 게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진짜 잃은 건 영혼의 존재였다. 영혼을 잊고 영혼과 단절된 채 그저 하나의 생물학적 존재로 살고 있었다. 그 세상은 슬픔도 기쁨도 없는 무감각한 잿빛 세계, 죽음을 은유하는 세계였다.


다시 영혼과 연결되니 저절로 사랑과 기쁨의 주파수를 받아들이는 수용기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영혼과의 연결이라는 다리가 이어지자 마치 필터를 갈아 끼운 것처럼, 마치 버튼을 눌러 전등이 켜진 것처럼 기쁨과 사랑을 감지하고 찾아내는 감각기관의 회로에 전원이 켜졌다. 몸 안에서 그 감각기관의 회로가 활동하기 시작했고, 그 안에 역동적인 에너지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 에너지는 나를 기쁘게 만들고 삶을 충만하게 만드는 어떤 행동을 하고자 하는 의지를 생성했다. 그 의지는 어느새 나를 움직이고 활동하게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의도치 않게 거대한 내면 실험을 한차례 끝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변인은 완벽히 통제되었다. 약 10개월간 나는 동일한 사람이었다. 나의 신분이나 위치,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았다. 만나는 사람도 머문 장소도 동일했다. 외부적인 자극과 변화는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도 경험, 생각과 지식, 가지고 있는 내적 자원도 동일했다. 


다만, 멈춰버린 10개월간 영혼을 잊고 살았을 뿐이다. 영혼과의 대화를 그만두고 영혼이 단절된 채 표면적인 층위로만 삶을 바라봤다. 그곳은 무채색이었다. 영혼과 다시 연결된 지금, 온몸과 마음에 사랑과 기쁨이 가득해서 세계가 총천연색으로 빛나고 있다. 


아! 이번 실험을 기념하여 무료하고 건조했던 회색필터와 구분하여 영혼과 연결되어 있어 기쁨과 사랑을 그대로 보고 느낄 수 있는 이 상태를 앞으로 ‘소울필터’라 부르기로 정했다.




나는 경험했다. 소울필터가 켜지면 외부의 현실이 변한다. 모든 게 변한다. 현실이 변한다고 소울필터가 켜지는 건 아니다(자각하지 않은 상태라면 착각할 수 있다. 이미 소울필터가 켜져 있었기 때문에 변한 것뿐이다). 행복 치트키인 라다크 여행마저도 나의 소울필터를 켜진 못했다. 소울필터를 켤 수 있는 사람은 그 자신 하나이다. 그건 외부의 사건과 관련이 없다. 소울필터를 켜거나 끌 수 있는 단 한 사람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다. 오직 그 사람의 사적이고 독립적인 내면 작용에 의해 영혼과 연결될 때 한정해서 소울필터가 켜진다. 


흔히들 ‘마음먹은 대로 된다.’, ‘긍정적으로 사고하라.’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은 반만 맞다. 소울필터가 꺼지고 고장 난 상태였을 때 억지로 무얼 바꾸려 하거나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애쓸수록 괴로운 감정이 더 커졌다. 심할 경우 자책감이 찾아왔다. 진정으로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하려고 애썼다. 감정을 어떻게 살피는지 깨어 있는 게 무엇인지 알고는 있었다. 다만 무슨 일을 해도 기쁨도 사랑도 느낄 수 없었고 어떠한 의욕도 생겨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바꿔 표현하고 싶다. ‘모든 것은 영혼과의 연결에 달려 있다.’ 소울필터를 켜 두어야 한다. 그럼 기쁨과 사랑을 볼 수 있다. 저절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고 자신을 아껴주고 싶다. 타인과 연결되고 싶고 건강하게 살고 싶어 진다. 도처에서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경험하게 된다. 머리가 맑아지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 






원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잊고 있었던 지혜들이 상기되었다. 



첫째, 현실 세상은 거울의 반영 같아서 의식은 자기 자신 안에 없는 것을 찾거나 볼 수 없다. 내 안에 사랑이나 기쁨이 없을 때는 흔히 사랑이나 기쁨을 준다고 여겨지는 사건을 체험해도 진정으로 사랑이나 기쁨을 느낄 수 없다. 그 에너지는 그를 통과해 사라진다. 자신 안에서 사랑이나 기쁨의 상태를 찾아 머물 수 있게 되면, 도처에 일어나고 있는 외부 사건 중에서 같은 주파수를 지닌 기쁨과 사랑을 찾아내게 된다. 그 사건들이 내면의 사랑과 기쁨에 동기화되어 강화된다. 내면 상태가 투영되어 현실이 끌려온다. 흔히 사람들은 그 현상을 ‘끌어당김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둘째, 사랑이나 기쁨은 늘 그 자리에 있다. 사랑과 기쁨은 발견되는 것에 가깝다. 그것을 새로 만들어 내거나 없는 걸 찾아 채우는 게 아니었다. 사랑이나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도 그게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 같은 감각은 착각이었다. 전구처럼 불이 밝혀지고 꺼질 뿐이다. 물론 그 불은 사는 동안 끊임없이 ‘꺼지고 켜지다’를 반복한다. 한 번 켜진 불이 영원히 꺼지지 않는다고 안심할 수 없고 마찬가지로 불이 꺼져도 두 번 다시 불을 켤 수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삶은 기쁨과 사랑의 전구를 끊임없이 밝히는 활동이다.



셋째, 사랑의 다른 이름은 두려움이다. 기쁨은 삶이기에 그 반대말은 슬픔이 아니라 죽음이다. 에너지는 멈추지 않고 흐른다. 사라지지 않고 변환된다. 사랑의 전구가 꺼지면 그 자리를 두려움이 대체한다. 두려움이 찾아오면 부정적인 생각과 걱정 근심 불안 등의 감정에 동기화된다. 두려움이 느껴진다면 사랑이 더 필요하다는 말과 같고 더 많은 사랑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기쁘다는 건 감정이 아니라 활력이다. 생명, 살아있는 모든 것은 0.1초도 쉬지 않고 변화한다. 생명은 변화이고, 그 변화를 일으키는 에너지는 기쁨이란 활력이다. 따라서 기쁨의 반대말은 슬픔이 아니라 멈춤이다. 멈추어 있는 건 죽음이다. 육체적으로 물리적으로는 살아있다고 해도 기쁨을 느끼지 못할 때 사람은 죽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죽음을 경험할 때 시간이 멈춰 있다 느낀다.



넷째, 의식 있는 생명체에게 삶의 본질적인 구성 요소는 결국 느낌이다. 어떤 것을 갖거나 어떤 사람을 만나거나 어떤 일을 해냈을 때 우리가 얻게 되는 건 그 순간이 주는 ‘느낌’이다. 행동과 느낌 사이 인과관계는 주관적이다. 예를 들어 여행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어떤 이는 그를 통해 해방되는 느낌을 얻고 어떤 이는 미각이나 후각 등을 충족시키는 느낌에 기뻐한다. 어떤 이는 여행을 통한 자연과의 교감을 원한다. 좋은 사람, 내게 맞는 짝을 만나고 싶다는 말에는 저마다 꿈꾸는 느낌이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안정감을 주는 느낌, 짜릿한 스릴을 주는 상대, 함께 성장하는 느낌, 그저 오래도록 계속 함께 있을 수 있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현실에서 흔히 특정된 그 사람과 헤어지면 세상이 무너진다는 착각이 들지만, 그 느낌을 줄 수 있는 다른 누군가를 드물게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우린 또다시 사랑에 빠지고 만다. 



다섯째, 진정한 느낌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영혼의 동의가 필요하다. 영혼이 순수하게 원하는 느낌이 아니라 조작되고 강요된 느낌이라면 그 느낌에는 저항과 불편감이 따른다. 원하는 것과 반대 극의 두려움이 끌려오게 된다.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진정한 느낌은 영혼이 동의하고 원하는 느낌뿐이다. 영혼에게 묻기 위해서는 영혼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즉 느낌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소울필터가 켜져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나의 꿈은 본질대화클럽을 만드는 것도 훌륭한 작가가 되는 것도, 모험가가 되어 전 세계를 여행하며 사는 것도 아닐지 모른다. 나의 제1의 꿈은 영혼과 연결되어 사랑과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사는 동안 계속 소울필터를 켜는 일이다. 그건 반갑게도 외부의 현실이나 물리적 제약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내가 선택하고 훈련하고 실천하면 되는 일이었다. 온전히 내게 달린 일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번 달성하면 끝나는 일회성 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매일 매 순간 꿈이 이루어지는지 아닌지는 매 순간 내면의 상태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 죽을 때까지 어쩌면 죽고 나서도 계속해야 하는 일이었다. 소울필터를 켰을 때의 그 느낌, 그 자체가 내가 언제나 바라왔고 이루고 싶은 하나의 꿈이었다.





제 궁극적인 꿈은 늙지 않는 거요, 인간임을 초월하는 거요, 영원한 거요, 슬픔의 흔적과 고리에 걸리지 않는 거요, 그게 제 꿈이에요.-스텔라
 




몸의 활동은 어떤 존재상태에 이르고자 시도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어떤 존재상태를 반영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만사가 제대로 질서 잡혀 있다면 사람은 행복해지려고 뭔가를 하는 게 아니다. 누구나 행복하다. 그래서 뭔가를 하는 것이다. 자비로워지려고 무슨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자비롭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행동한다. 의식이 깨어 있는 사람에게는 영혼의 결정이 몸의 행동보다 먼저 이루어진다. 의식 없이 행동하는 사람만이 몸이 하는 일을 매개로 영혼의 상태를 만들어내고자 한다. 

 -신과 나눈 이야기, 닐 도널드 월시 304~305p






스물두 번의 여름은 스팀잇에서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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