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도 작고 단단한 씨앗이 존재했다!
네가 겪는 모든 일이 너에게 도움이 돼. 불안해하지말고 사건들의 흐름에 너 자신을 맡겨. 잘 믿기지 않을지 모르지만 더 없이 혹독한 시련조차도 너에게 도움이 돼. 만약 이 모든 일이 어떤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거라면, 그 시나리오 작가는 우리가 성공하기를 바랄 거야. 나는 그렇게 믿어
-신 5, 베르나르 베르베르, 250
“네 삶에는 직업이 없어.”
위빳사나 명상 중 영험한 점쟁이를 만나는 꿈을 꾼 적 있다. 꿈에서도 직업이 궁금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궁금했다. 언제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을 동경하고 시샘했다. 꿈에서마저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대학 졸업 이후 일을 했던 시간을 합쳐보면 약 5년, 여행을 길게 했던 1년의 세월을 제외하면 4년 정도 일하지 않는 삶, 일이 없는 사람으로 살아봤다.
일을 그만두기로 한 건 잘한 결정이었다. 내가 다닌 마지막 정규직 직장이 두려움으로 점철된 선택으로 비롯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여행을 다녀온 이후 나의 선택을 부정했다. 취직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생각했다. 애매한 경력과 전공, 보잘것없는 나의 능력으로는 취직이 될 리 없다고 생각했다. 어디라도 들어가 돈을 벌고 싶었다. 많은 걸 내려 두고 눈을 감고 우연히 보게 된 면접에 붙자 감사한 마음으로 회사에 다니게 되었다.
그 감사했던 마음은 변덕스럽게 바뀌었다. 회사에 불만이 쌓였고 일이 가기 너무 싫었다. 그런 일밖에 할 수 없게 만든 나 자신이 밉고 원망스러웠다. 그땐 그저 마음이 변덕스럽게 변했다고 자신을 탓했다.
그러나 그저 변덕과 충동만은 아니었다. 나를 구해주기 위한 구조 신호였다. 한 번 세상의 협박을 무시해 버리기로 했다. 일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쓸모없고 게으른 패배자로 낙인찍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벗어던지기로 했다. 더 이상 그런 파괴적인 마음으로 일하고 싶지 않았다.
‘놀자, 놀아버리자. 일 없어도 안 죽는다는 걸 확인하자.’
내 존재가치가 일이나 직업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걸 느껴봐야 했다. 세상이나 타인의 시선이나 의견과는 상관없이 스스로 일하지 않아도 진짜로 괜찮아지고 싶었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괜찮은 것 같다 가도 그 집 딸은 뭐 하냐는 별 뜻 없는 질문에 와르르 무너지며 자책하던 날들도 많았다.
일하기 싫다는 말은 일을 그만두고 놀고 싶다는 말이 아니었다. 억지로 강요당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었다. 일의 속성에 내 존재 가치를 결부하고 입증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었다. 내가 세상의 하찮은 부품에 불과하며 주체적인 어떤 의견을 낼 수 없이 종속적이고 수동적인 존재라는 느낌을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만두었다. 그만두기 위해 모든 용기를 냈다. 나를 알고 지키기 위한 사랑의 선택이었다.
맘껏 일하지 않으니 알겠다. 일하지 않으면서도 충만하고 즐거운 하루를 만드는 방법을 알고 나서 더 확실하다. 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는 일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나는 베짱이가 아닌 일개미였다. 경제적인 이유를 제외하고도 남들에게 멋지게 보이고 싶은 명함이 아니더라도 생산적인 일을 했다는 결과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상관없었다.
맘껏 일하고 싶었다. 에너지를 쏟아내고 뿌듯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드는 느낌이 좋았다. 무언가 몰입하고 집중해서 시간이 달아난 것 같은 그 느낌이 참 좋았다.
하고 싶은 일이 딱히 없는데도 이렇게 일을 하고 싶고 하고 일이 좋을 수 있을까? 내 안에 꿈의 씨앗이 없는데도 그 꿈을 향해 가고 있는 사람들이 부럽고 마음의 동요로 어지러울 수가 있을까?
쫓기듯이 마지못해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한 의무적인 그런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나를 갈아내거나 소진하는 게 아니라 하면 할수록 나와 분리가 되지 않는 그 과정만으로도 행복한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나의 전부를 쏟아 내도 아깝지 않은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니 나의 일을 해야 했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아깝지 않은 의미 있고 보람찬 일을 해야 했다. 마음을 쏟을 수 없고 그 마음을 조금도 받아주지 않는 그런 일 들은 할 수가 없었다.
그건 세상이 공인해 주는 일이 아니다. 보기에 그럴듯하고, 좋아 보이는 그런 일이 아니었다. 그런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다. 해야 해서 하는 일이 아니고 할 수 있어서 하는 일이 아니고 내가 그저 좋아서 하고 싶어서 푹 빠져서 할 수 있는 일의 준거는 나 자신에서 찾을 수 있다. 나 자신의 경험과 능력, 이성적 사고는 부차적인 요소이다.
오로지 그 일을 하기로 했을 때의 느낌, 그 일을 하고 있을 때의 느낌으로 알 수 있다.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반응하고 기력이 돋는다. 가만있을 수 없어 몸이 근질거리고 아이디어와 영감이 쏟아지듯이 떠오른다. 영혼의 씨앗을 싹 틔울 수 있는 무엇이든지 몸이 느낌으로 신호를 보내준다. 영혼은 그것을 가질 수 없다고 재단하거나 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영혼은 언제나 그 일을 발견하길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어울리지 않고 자격 없는 일이었다면 애초에 그 일에 심장이 반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살면서 언제나 그런 일을 찾고 있었고 그런 일을 발견할 때마다 그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이미 하고 있다는 걸 잘 몰랐다. 그저 취미활동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사소하고 중요치 않은 일이라고 의미를 두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일에 관한 고정관념이 있었다. 직업으로 공인받을 수 있거나 확실한 경제적 보상이 따라오는 일만이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람과 세상이 일이라고 불러주는 이미 실현된 일만을 일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은 결국 내 영혼이 눈을 빛내면서 한번 해보라고 던져주는 모든 열의로부터 시작한 모든 일이다. 그 일은 여행이기도 하고 산책이나 운동이기도 하고 책을 쓰는 것이기도 하고 영화를 보거나 그림을 보는 것일 때도 있다. 누굴 만나거나 가족의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기도 했다. 무언가를 배우거나 도전하는 것일 때도 있었다.
소울 필터가 켜지고 알았다. 나의 일은 소울 필터를 켜는 모든 것이라는 것. 내가 하고 싶고 열의를 다하고 싶은 일이자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이 그것이라는 것을. 소울 필터가 꺼진다면 다시 그걸 키는 게 일이자 꿈이다. 소울 필터가 켜진 채, 하고 싶다고 느끼는 어떤 일이 있다면 뭐가 되었든 그것을 하는 게 나의 일이자 꿈이라고.
다만 한 단어로 정리되지 못하고 세상에 그런 직업이 없어서 내가 일이라고 직업이라고 여기지 못했던 것뿐이다. 정말 그것보다 내게 만족감을 주고 큰 의미를 주는 건 없다. 내가 즐거워서 기꺼이 온 힘을 다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이었다.
팔다리가 길쭉길쭉 늘씬하지 않아 모델이 될 수 없어 슬프거나 노래를 못해 서러운 적 없었다. 나는 단 한 번도 모델이 되거나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 적이 없었다. 내 씨앗에 그런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멋진 모델을 보거나 노래 잘하고 매력적인 가수를 보아도 그들은 나의 기쁨과 즐거움에만 불을 켜지 시샘을 자극하거나 자격지심을 느끼게 하지 않았다.
나는 자주 예술가와 창조적인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시샘했다. 베스트셀러 작가보다도 시대 불멸 고전을 써낸 작가들을 동경했다. 이제 알았다. 내가 부러워했던 건 그들의 필력이 아니었다. 그들의 유명세도 아니고 그들의 재능이 아니었다. 그들의 영혼이 일치되어 만들어 낸 삶이 농축된 그 창조물이 부러웠다. 그들 자신의 고유한 영혼이 표현되어 내 영혼에 닿아 울리는 그 아름다움과 기쁨이 전파되는 경험, 그 경험을 가능하게 만드는 매개체를 만드는 일을 나도 하고 싶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동시대에 살아있는 사람 중 내가 존경하고 동경하는 이들은 모두 하나 같이 자기 자신 그대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다. 세상의 목소리에 휘둘리지 않고 지금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다. 그들 중 일부는 이미 성공했다고 불려 많은 이의 존경을 받고 있고 몇몇은 그리 유명하거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알 수 있다. 자신만의 씨앗을 찾아 그 씨앗을 발아하는 기쁨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의 확신과 역동적인 에너지를 말이다. 내게 그들은 모두 같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자신을 실현하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닮았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 척이 아니라 진짜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일을 매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 안에도 작고 단단한 씨앗이 존재했다! 태어날 때부터 쭉 그 자리에 심겨 있었는데 자꾸 밖으로 씨앗을 찾으러 다녔다. 내가 씨앗을 모르는데도 아주 서서히 씨앗이 자랐다. 씨앗이 발아했다. 운명처럼 씨앗을 만났다.
내가 너무 내면에 몰입하고 나밖에 모르는 개인적인 성향의, 아니 이기적인 사람인 것만 같아서 걱정했다. 조금 더 외부에 시선을 돌리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경험을 해야 했다고, 현실 감각을 키우는 균형감을 키우는 게 맞지 않느냐고 고민하는 밤도 많았다. 그러나 괴로워서 현실을 부정하고 탈출하기 위해 내면에 몰입한 게 아니었어. 나를 만나고 사랑하기 위해 잠들어 있는 시행착오의 시간이었어. 더 명료하게 깨어나서 현실과 마주하고 풍성하고 기쁜 경험을 더 많이 창조하고 싶어 겪어내야 했던 인고의 시간이었어.
서른다섯 가을 그렇게 꿈이 없어 자주 길을 잃고 방황하던 나는 매일 좋아하는 일을 찾고 꿈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일을 한다. 그 일을 하는 게 좋고 그게 날 행복하게 만드니까.
나의 일은 매일 아침 소울 필터를 켜는 것이다.
직장에 다니는 어떤 이는 자아를 실현하고 있다.
직장에 다니지 않는 어떤 이는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직업이 있고말고의 여부는 수치를 제외한 어떤 것도 말해주지 못한다.
그가 하루하루 만족하며 성취감에 가슴이 벅차오르는지 행복한 미래로 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는지 그건 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일과 직업의 종류는 중요치 않다.
일을 하고 있든 하고 있지 않든 이것이 맞다는 느낌, 기쁜 느낌, 충만한 느낌으로 자신을 꽉 채우고 있다면 그는 옳은 길을 가고 있다.
그의 운명을 따라 걷고 있다.
지금까지 스물두 번의 여름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브런치북 연재 편수가 제한되어 몇몇 글을 싣지 못했습니다.
스물두 번의 여름에 관한 새로운 소식이 생기면 브런치에 알려드릴게요.
앞으로도 살면서 선물하고픈 메시지가 생길 때마다 만나요.
오늘도 기쁨과 사랑으로 좋은 하루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