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나누는 말
나의 실패가 너의 고통을 줄여주기를
이상 행동을 보이는 아이가 있었다.
이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생존의 위협을 받는 가출 생활 속에서 여리고 어린 청소년들이 제정신을 유지한다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이다.
요즘은 멀쩡한 집에서 나고 자라 열심히 직장 생활하는 어른들도 삶의 고통으로 인해 정신과를 간다.
이 아이들의 상태는 사실 말할 것도 없다.
이 아이는 정신과 진료가 필요해 보였다.
때문에 많은 교사와 주변 사람들이 정신과 진료를 권유했다.
그러나 아이는 완고했다
"저는 제가 병원을 갈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 아이의 의견을 존중할 필요가 있으므로,
우리는 아이를 강제로 데려갈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아이와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있잖아 ㅇㅇ야, 사실 나의 가장 친한 고등학교 때부터 지낸 친구들 모두 정신과를 간 적이 있어."
"정말요?"
"응~ 사실 제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다들 상처받고 힘들게 마련이거든."
"멀쩡한 삶을 살고 가출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삶이 힘들어서 정신과를 가는 게 아무렇지 않은 시대가 되었어."
"그런데 가출을 해서 혼자 살고 있는 열일곱 살인 네가 마음이 힘들고 상처를 받아서 그걸 가지고 진료를 받으러 가는 게 무슨 흠이 되겠어?"
아이는 머뭇거리면서 대답했다.
"사실 예전에 있던 쉼터에서 저를 강제로 정신과에 데려가려고 해서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더 가기가 싫어지고 반감이 생기고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저는 솔직히 전 아무것도 불편하지 않거든요."
"사실 내가 이런 걸로 너랑 별로 비슷하고 싶진 않았었지만.. 농담이야.
그런데 사실 너를 보면 옛날에 나와 굉장히 비슷한 점이 많다고 내가 느꼈거든.
왜냐면 옛날에 나도 나 자신은 별로 불편하지 않았어.
그런데 나랑 친한 친구들이나 가족들이나 내가 만나는 가까운 사람들이 자꾸 나한테 이상하다고 하는 거야.
그래도 나는 사실 그 말들을 별로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거든.
특히 옛날에 내가 대학 때 아주 친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정말 일관적으로 5년 내내 나한테 이런 점이 이상하다, 네가 너무 예민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곤 했어.
그래서 나는 사실 부끄럽지만 가장 친한 친구이지만 동시에 그 아이를 오랫동안 미워했었어.
근데 내가 삶을 살아가다 보니까 이상하게 자꾸 일들이 안 풀리는 거야.
남들은 별 것 아닌 일들 때문에 일을 그만두게 되고, 자꾸만 벽에 부딪히고...
그래서 이건 이상한 일이다, 하고 하다가 이제 드디어 그 사람들이 나한테 이야기했던 걸 떠올린 거지.
그래서 스물다섯 살에 처음으로 나도 정신과를 갔었어. 거기를 가서 상담을 받고 약을 먹었어.
그런데 약을 먹고 나니까, 내가 드디어 깨달은 거야. 그동안 나한테 내 주변 사람들이 했던 이야기들이 다 맞았어.
나는 엄청 매정하고... 나는 몰랐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차가운 사람이었던 거야.
내가 그걸 25년 만에 깨달았을 때 얼마나 내가 지난 시간들이 후회스러웠는지 몰라.
내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함께 즐겁게 지낼 수 있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을 내가 놓치고 있었던 거지.
대부분의 착한 사람들은 서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싸우거나, 그걸 지적하려고 들지 않고 그냥 조용히 멀어지곤 하거든.
그러니까 나는 얼마나 좋은 사람들을 많이 놓쳤던 거겠어? 그리고 사실 나에게 5년 동안 지속적으로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를 계속해줬던 그 친구에게 정말 감사한 거지. 그 친구도 사실 나를 버리고 더 마음 맞는 친구를 찾아 떠날 수 있었어. 하지만 그 친구는 나를 버리지 않고 내 곁에서 끝까지 나한테 이야기를 해준 거야.
그래서 내가 약을 먹고 나서 처음으로 그 아이한테 이야기를 했어.
'ㅇㅇ야, 정말 미안해. 난 그동안 네가 하는 말이 농담인 줄 알았어. 그런데 알고 보니까 다 네 말이 맞았어. 정말 난 그것도 모르고 널 많이 미워했었어. 그런데도 10년 동안 내 친구가 되어줘서 너무 고마워.'
그랬더니 그 애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어떻게 했는데요?"
"그 애는 그냥 막 하하 웃으면서, 그래 맞아. 너 되게 이상했었어. 근데 네가 왜 내 말을 못 알아듣는지 알 수가 없었어.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고. 정말 속 깊고 좋은 친구야. 그 애는 지금 서른 살이 된 지금까지도 나랑 여전히 친구야. 그 애는 정말 좋은 애였던 거지.
나는 그렇게 25년을 허비했지만, 너는 다행히 운이 좋아서 누군가가 주변에서 이야기를 해주고, 그 덕분에 17년 만에 나도 모르게 이상하게 행동하는 삶을 끝낼 수 있다면 그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야?
너는 나보다 8년을 더 앞서 나가는 거고, 후회할 시간을 8년을 더 절약하는 거잖아.
물론 네가 정신과를 가지 않을 수도 있어. 안 가도 살 수는 있어. 네가 정신과를 가지 않은 채로 그냥 30년, 40년, 50년, 평생을 살 수도 있어. 실제로 그런 사람들 많아.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할 수도 있고.
그런데 만약에, 네가 40, 50이 되어서 그걸 깨닫게 되면, 그동안 그렇게 허비하고 낭비했던, 그렇게 살 수밖에 없던, 나 자신의 벽 속에 갇혀 살던 너의 지나간 삶들이 얼마나 아쉽겠어?
사람은 진흙탕 속에서 한평생을 살면 맨바닥이 어색해. 발바닥이 아프고 딱딱해.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평생 맨바닥에서 살았으니까 진흙에서 살았던 사람들을 보고 그건 지저분하고 너무 물컹하다고 지적을 하는 거지. 하지만 나는 진흙이 너무 익숙하고 편한 거야. 사실은 너와 나도 그런 상황일 수도 있어. 나도 계속해서 어떤 힘들고 이상한 상황 속에 있었던 거고 너도 가출이라는 상황과 너를 가출하게 만든, 너를 고통스럽고 상처 입히던 그런 가족 속에서 16년을 살아왔던 거잖아. 그래서 사실 우리는 못 느끼고 있는데 자기 자신도 모르게 고통받고 있을 수 있어. 저번에 이야기를 했듯이 너는 너 스스로를 공격하는 사고방식을 가진 것 같다고 전에도 내가 이야기를 했잖아. 사실 나도 그런 면이 있거든. 나 스스로를 계속해서 자책하고, 매사에 부정적이고, 나를 힘들게 하는 거야. 그런 사고방식의 피해자는 결론적으로 남이 아니야. 나 자신이지.
나는 약을 먹기 전엔 내가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약을 먹고 치료를 받고 나서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머리가 아프지 않고 어깨가 무겁지 않다는 걸 깨달은 거야. 그리고 그때 가서 깨달았어. 나는 25년 동안 어깨가 아프고, 목 뒤가 아프고, 머리가 아팠어. 그런데 거기에 너무 익숙해서 난 그게 아픈지도 몰랐던 거야. 남들도 그런 상태로 살아갈 거라고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지.
사람은 끔찍한 고통에도 적응해.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거든. 하지만 우리는 굳이 그런 고통에 적응하면서 나의 삶을 갉아먹을 필요가 없어. 우리한테 인생은 한번뿐이고, 우리는 나름의 자신의 삶을 가치 있고 아름답게 만드려고 이 세상에 온 거잖아?
내가 나쁘고 고통스러운 상황에 있다면, 그것을 벗어나거나, 발전하기 위해 노력해서 더 좋은 삶으로 나아가야지. 하지만 나 포함 꽤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나쁜 상황과 고통스러운 나 자신에 젖어들어가. 그리고 결국 나는 이런 삶을 살 뿐이다 하고 생각하고 절망하지.
그런데 내가 약을 먹고 상담을 받고 치료를 받은 뒤에 내가 그런 게 싹 사라졌어. 그런 나쁜 생각들을 뭐 판단하고 그건 아니다 옳다 그거를 판단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니고, 그냥 그런 생각 자체가 나지 않아. 그냥 삶에 대해 낙관적이고 긍정적이고 훨씬 더 많은 일을, 더 좋고 선하고 내가 원하던 일들을 향해 갈 힘을 갖게 돼. 누가 뭐라 해도 결국 긍정적인 힘은 사람을 살게 하니까.
그래서 나는 너도 나와 같은 이런 경험을 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가능한 한, 더 어린 시절에 깨달을 수 있다면, 덜 인생을 낭비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나는 멍청해서 그걸 스물다섯 살에 깨달았지만, 너는 열일곱 살에 그걸 깨달을 수 있다면 그건 얼마나 다행스러운 삶이야. 어린 시절에 덜 인생을 낭비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여기서 낭비한다는 건, 돈이나 시간을 낭비한다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친구를 만들고, 나 자신에게 솔직하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놓친다는 거야. 결국 너와 나 모든 사람은 결국 죽고, 모든 건 사라질 텐데 우리의 삶을 이루는 건 그런 거거든. 성공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야. 어려운 상황에서도 힘을 내서 살아가는 것, 혼자 네가 방에 있을 때 이유 없이 너를 자책하거나, 너 자신을 미워하거나, 과거의 상처를 씹으면서 슬픔에 빠지는 걸 줄일 수 있는 것, 그냥 그런 소박한 거야.
물론 정신과가 다 한 번에 모든 걸 해결해 준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여기의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너를 걱정하고 관심 갖고, 도와주기 위한 방법들 중의 하나인 거지. 우리는 너를 좋아하고 돕고 싶고, 가능하다면 네가 우리의 도움들 중의 하나를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는 것뿐이지. 아마 넌 강압적이라 싫다고 했겠지만, 이전에 있던 쉼터 선생님들의 마음도 사실 우리와 다르지 않았을 거야."
"맞아요. 거긴 너무 강압적이고 기분 나쁘고 사무적이었어요."
"하지만 그 쉼터 선생님들도 널 걱정했고 사랑했어. 거기는 아이들이 여기보다 많지 않니?"
"그렇죠. 한 번에 12명"
"거봐. 나는 지금 너와 1:1로 한 시간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선생님은 8시간을 일해도 한 명에게 1시간을 쓰기도 모자라잖아. 그건 그 선생님들의 탓이 아니야. 사람이 너무 바쁘고 일이 많으면 급해지고 사무적이 되거든. 나도 서류 많을 때 그러지 않던"
"맞아요"
하고 아이는 웃었다.
"나는 오히려 그 선생님들 대단하다고 생각해. 그런 바쁜 상황 속에서도 너 한 명을 챙기려고 검사를 받으러 가자고 했잖아. 사실 바쁘고 귀찮으면 너한테 그런 말을 하면서 챙기지도 않아. 너 하나 안 챙기고 일해도 월급은 받잖아. 그런데 그 선생님들은 너를 챙겨주려 하신 거지. 네가 돌아다닌 수많은 쉼터들 중 거기만 검사를 권유했다며."
"그랬죠"
"거봐. 난 오히려 그 선생님들이야말로 진심으로 널 신경 쓰고 사랑하려 애썼다고 생각해. 나에게서 그냥 멀어지지 않고 5년간 이야기해준 친구처럼."
"아, 그런 거군요"
"그런 거지. 물론 그래도 넌 싫을 수 있어. 그러면, 우리는 그냥 기다릴 거야. 네가 우리의 도움을 받고 싶어질 때까지. 그때가 되면 말해줘. 우리는 네가 20살이 될 때까지 아직 3년은 더 볼 사이니까."
아이는 다행히 이후 마음을 다잡고 우리와 함께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많이 호전되었다. 아이는 약 대신 상담 치료를 받았고 다행히 생각을 많이 바꾸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