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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Apr 25. 2022

범죄소년에게 사랑을 주어야 하는 이유

선생님들과 나누는 말

범죄와 잘못된 행동을 하는 아이일수록 사랑해주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분개하고 어이없어할  말이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생각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을 더 잘 돌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대부분 굉장히 분노하거나 반대한다. 


나 역시 그랬다. 

처음 이곳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아이들에게 무한정 사랑을 베풀고 끝없는 인내심으로 기다려주고 돌보아주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나는 불공정하다고 생각해 분노를 느꼈다.


처음에 나에게 그것은 아주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나는 지금은 그것을 인정하고 나도 이 아이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실천한다. 물론 나의 마음과 머리가 그것을 매우 힘들어하기는 한다. 지금도 나에게 이 아이들을 교사로서 사랑한다는 것은 굉장히 뼈를 깎는 고통과 인내심과 수고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나는 결국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는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이 와서 자랑스럽게 자신의 범죄를 이야기하는 것을 자주 보곤 했다. 대부분의 그 아이들은 그러한 범죄를 자주 저질렀고 심지어는 그 범죄에서 어떻게 잘 빠져나가고 걸리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다. 나는 그 아이들이 걸리지 않는 법을 더 잘 알수록, 범죄를 계획하고 누군가에게 시키고 뒤집어 씌울 정도의 똑똑한 머리가 있는 아이들일수록 더욱더 유난스럽게 그 아이들을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아이들일수록 나는 더 이를 악물고 잘해주려 한다. 반드시 이 아이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섭고, 징그럽고, 끔찍한 아이일수록 더 이를 악물고 잘해준다.


 이런 아이들이야말로 절대 이대로 어른이 되면 안 되니까. 나는 그 아이들의 그러한 점들 때문에 그 아이들이 다른 좋은 어른들에게 더욱더 혐오받게 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아이들이 살던 세상에서 그 아이들은 너무나 끔찍한 것들을 보았기 때문에 자신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오히려 어른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나의 감정 또한 그런 아이들을 보면 너무나 화가 나고 당장이라도 죗값을 치르게 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정말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역겨움을 참고 그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잘 돌봐주려고 애쓴다.


물론 처음에 그 아이들은 나의 관심과 돌봄을 무시하고 배척하며 심지어는 비웃음거리로 만들고 하찮게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그 아이들에게 끝없이 사랑한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를 믿고 있다고 계속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이 계속되면 정말 믿기지 않지만 그 아이도 나와 친해지고 마음을 열고, 의지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지점이 내가 이기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이 아이들은 '사랑'으로 이겨야 한다.


 나는 오랜 시간을 들여 그 아이들을 사랑하고 돌본다. 이렇게 아이들과 친해지고 그 아이들의 입장에서 믿어주고 그 편이 되어 주는 데는 정말 지겹도록 끔찍하게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나는 2년 동안 이러한 과정을 계속 매진한 적도 많다. 이러한 과정을 보면 많은 사람들은 진절머리를 내며 나에게 욕을 하기도 한다. 왜 저런 아이들을 저렇게 돌보아주고 헌신하냐고, 이거는 호구당하는 일이고, 멍청한 일이라고, 이런다고 저 아이들은 감사해하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고.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결국 그 아이들도 사람인지라 나를 믿게 되고 나를 교사로서 사랑하게 되고 그리고 나에게 의지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이 아이들에게 주는 사랑과 동시에 드디어 이 아이들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처음에 이 아이들은 나의 말을 무시하고 분노하고 심지어 공격도 한다. 선생님이 나처럼 안 살아봐서 그렇다, 나쁘면 어떠냐, 이 방법이 더 빠르고 쉽게 돈을 번다. 착하게 사는 건 멍청한 거다. 수많은 말도 안 되는 자기변명으로.

 

 자신은 여태 이러한 방식으로 살아왔으며 이것은 사회 속에서 이기는 방식이고, 자기는 효율적으로 잘 살고 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좋지 않고, 나는 그런 행동을 네가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너에게 잘해주고 싶지만 너의 그 행동은 내가 너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고.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한다. 


 물론 이러한 말을 듣는다고 아이가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다. 내 말을 들으면서도 아이는 끝없이 사고를 치고 잘못된 행동을 한다. 그러한 행동들은 대부분 습관화가 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이 아이들은 나를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는 만큼, 내가 지적하는 것에 대해 마음의 고통과 상처를 받는다. 


 예를 들어, 길을 걷다가 어떤 지나가는 사람이 나에게 욕을 한다. '너 그렇게 살지 마!'라고 이야기를 한다고 치자. 우리는 처음에는 충격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일주일 정도 지난다면 친구에게 '나 저번에 길을 걷다가 이상한 정신병자를 만났잖아. 어우 정말 그때 너무 이상했어'라고 이야기를 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지나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어떤 잘못된 행동을 해서 나를 사랑하고 나를 수십 년간 믿어주었던 나의 부모님이 나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아마 그 일은 일주일이 지나도, 심지어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에도 나의 머릿속에 남아 있을 수 있다. 사랑은 가장 위대하고 아름답지만 동시에 사랑만큼 잔인하고 끔찍한 것도 없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은 한 사람의 일생동안의 정신을 지배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가질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잘 대해주려고 노력한다. 나는 그 아이의 인생에서 가장 나를 사랑해주고, 가장 믿을만하고, 가장 의지할 만한 나에게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그 아이에게 하는 말들이 그 아이의 인생에 중요성과 무게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 지나가는 이틀 본 선생님이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하는 말은 아이들에게 아무런 타격이 없다. 하지만 3년 동안 나에게 밥을 주고 나의 말을 들어주고 내가 힘들 때 내 곁에 있어 주었던 선생님이 '나는 그렇게 행동하는 너를 보고 싶지 않다'라고 말할 때에 그 아이가 받는 마음의 충격과 타격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나는 6개월간 잘해준 선생님이 아이의 잘못에 화를 내자 손목을 열두 번쯤 긋고 오는 아이도 본 적이 있다. 다행히 그 아이는 멀쩡했고 '너의 존재가 싫은 것이 아니라 너의 잘못된 행동이 싫다'는 교사의 말로 아이는 바르게 행동하기 시작했지만, 그때 나는 이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일'이 자신들 입장에서는 목숨을 걸만한 일임을 알았다.


 이렇듯 내가 그 아이에게 사랑을 준 만큼, 그리고 그 아이가 사랑을 받은 만큼, 그 아이의 행동에 대해서 지적하는 나의 말은 그만큼의 무게와 타격감과 충격을 주게 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처음에는 이 과정을 매우 고통스러워한다. 이 아이들에게 범죄는 습관화되어 있고 문제가 생기면 심사원이나 소년원 정도 갔다 오는 것이 일상적이고 아무렇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에게는 벌금이나, 낯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지적질이나, 아니면 믿을 만하지 못한 부모들이 하는 잔소리, 나가라는 협박, 몇 달간의 여러 번 다닌 소년원 생활 등등 은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다. 심지어 소년원이나 가서 밥이나 먹고 쉬다가 오겠다고 말하던 어이없는 아이들도 봤었다. 폭력도 이 아이들은 너무나 일상화되어 있어서 아무것도 타격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나를 이 행동 때문에 더 이상 사랑하지 않고, 나를 미워하고 심지어 나를 버릴 수도 있다고 믿게 만드는 말은 이 아이들에게는 엄청난 공포감으로 다가온다.  내가 사랑을 많이 준 만큼 이 아이들이 받는 마음의 상처는 커지는 것이다. 물론 여기까지 오는데 교사가 들이는 노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감정노동이다. 아름답지 않은 것, 사랑스럽지 않은 것을 사랑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무섭고, 싫고, 징그럽게 느껴지지만, 나는 사랑을 쏟아서 이 아이를 사랑스럽게 만들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 그게 정말 힘들다.


그래서 이 아이들은 나쁜 행동을 하는 동안 나에게 계속 지적을 받게 되고 나쁜 행동을 하는 동안에 계속 자신의 마음이 불편하고 자신이 상처받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의 상처가 괴로워지면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자신의 생각을 더해서 더 이상은 이런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판단하게 된다. 물론 이 과정은 매우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기본 3년은 걸리는 것 같다. 내가 많은 사랑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고쳐지지 않는 아이들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나는 수많은 벌금과 수 없이 보내지는 수많은 시설과 그리고 주변 어른들의 협박과 위협 그런 것들로 아이들이 바뀌는 것은 5년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매우 사랑하는 부모와 교사들의 지적과 헌신으로는 아이들이 변화하는 것은 분명히 보았다. 그래서 아이러니해 보이고, 겉보기에는 한심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이고, 느리고 힘들지만, 아이들을 선도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도덕적인 어른이 올바른 사랑을 지속적으로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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