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르소나 Apr 22. 2024

#8. 신문 배달 2

조폭 형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폭 형이 기다리고 있었다.

 "따르릉~ 따르릉~" 새벽 3:30분이다. 이제는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눈이 떠지지 않는다. 형이 나를 흔들어 깨운다. 형도 눈은 뜨지 않고 나를 툭 친다. 겨울 신문 배달은 알람 시계를 듣는 것부터 고역이다. 차가운 새벽 공기를 온몸으로 버텨낸 후 신문사에 도착한다. 오늘은 유난히 신문이 두껍다. 광고지가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날이면 자전거를 운전하기가 더 힘들다. 균형을 잡아야 하는 어려움도 있지만, 빨리 달릴 수 없어서 배달 시간이 더 늦어진다. 배달은 무조건 6:00 전에 끝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침을 먹고 학원 가기에도 빠듯하다. 그런데 오늘은 눈까지 온다.


"어떻게 다 돌리냐?" 벌써 한숨이 나온다.


  비가 오는 날이면 봉지에 신문을 넣어서 휙~하고 던지면 된다. 하지만 겨울에 눈까지 오는 날이면 해야 할 일이 두 배로 늘어난다. 자전거에 신문을 쌓기 전에 적당한 크기의 비닐을 깔고, 넘어지지 않게 신문의 균형을 잡은 후 다시 큰 비닐로 덮는다. 신문을 넣을 작은 비닐도 잊지 않고 챙긴다. 이제는 조심스럽게 페달을 밟으면서 얼지 않은 도로를 찾아서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20분을 달리면 처음으로 신문을 배달할 집에 도착한다. 내가 배달해야 할 곳은 다세대 주택 단지로 지하부터 3층까지 집들이 복잡한 미로처럼 얽혀있다. 보통 배달을 할 때 빨간색 목장갑을 착용하지만,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장갑에 물이 먹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 것이 훨씬 편하다. 문제는 겨울이다. 맨손으로 신문을 꺼내서 비닐에 넣고 배달하다 보면 5분도 되지 않아서 손이 언다. 그때는 핫팩이나 손난로도 없었기 때문에, 입김으로 손을 녹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후~후~오늘은 왜 더 추운 것 같냐. 도로도 꽁꽁 얼었는데, 눈까지 겁나 오네. 오늘은 지각이다."


평소보다 배달 시간이 두 배가 걸리니 마음이 더 조급해진다. 배달을 시작한 지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몸에 땀이 나는 것 같은데 흐르지 않는다.


"어? 이상하다. 땀이 다 말랐나?"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 때 갑자기 차가운 기운이 나를 엄습한다. "내가 옷을 입고 있지 않고 신문을 돌리고 있나?"라는 착각이 든다. 그리고 깨닫는다.


"아, 땀이 얼었구나."


손에 감각이 없어진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최대한 신문을 빨리 돌리는 것만이 추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신문을 돌리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겨울은 유난히 생각이 더 많아진다. 몸이 춥다 보니 비참한 생각도 많아지고 원망과 후회의 생각도 몰려든다.


"내가 공부를 잘했으면, 신문 배달을 하지 않았을까?" "왜 신문은 1층도 보다 3층에서 더 많이 구독하지?" "차라리 신문사 부장이나 될까?" "한 달 배달료 구만 원 너무 적은 것 같은데, 한번 따져볼까?" "이렇게 살다가 인생이 망하는 것이 아닐까?"


  일단 생각이 처음의 의도와 달리 곁길로 더 많이 빠지는 날이면 감사해야 하는 날이다. 잡생각이 길수록 추위를 원망하면서 보내야 할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정말 여러 번 생각하고 생각을 해봤다.


"내가 왜 신문을 돌려야 하지? 이것이 정신교육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아무리 답을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었다. 어떤 날은 원망과 불평으로 아버지를 증오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문 배달을 할 때 내가 챙겨야 할 정신은 '빨리 돌리자"였고, 교육은 "신문 배달료는 너무 싸다"였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하는 놈에게 무슨 신문 배달이 정신교육의 현장이 될 수 있겠는가.


  그날은 더 혹독히 추웠다. 너무 추워서 달려도 땀이 나지 않았다. 손의 감각을 잊은 지는 벌써 오래였다. 늘 그랬던 것처럼 빨리 끝내고 집에 돌아가서 따뜻한 물에 손을 녹여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렇게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손을 녹이는 데 눈물이 났다. 큰 소리를 내면서 한참을 울었다. 손이 따끔거리고, 강한 통증이 몰려오는 것이 동상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런데 눈물을 흘리면 흘릴수록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 어떤 힘든 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도 생겼다. 나도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것이 아버지가 말한 정신교육인가?"


  고등학교 입시를 보기 좋게 떨어지고 신설동역에 위치한 K 학원의 검정고시 K13 반을 등록하면서 시작한 나의 신문 배달은 9개월이 지나서 끝이 났다. 나는 이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이 될 중요한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는 목포에서 올라온 조폭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