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별⟫
❝ 삶과 죽음의 답없는 끝없는 질문에 휩싸인 채 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에 빠져 혼자 괴로울 때 조차
별처럼 저 별처럼
난 별, 넌 별, 먼 별, 빛나는 별 ❞
⟪난 별⟫
작사 | 이소라
1.
D는 어린 시절부터 '착하다'는 말을 자주 듣곤 했다. 그건 D가 정말 착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범용적인 의미로 사용되곤 했다. 사람들은 D가 내성적이어서 말이 없을 때, 그래서 자신의 주장을 잘하지 못할 때, 그래서 상대의 말을 수용하고 상대의 의견에 잘 따라갈 때. 이렇게 말했다.
"D는 참 착해."
D는 자존감이 높은 스타일이 아니었다. 내세울 만한 능력이 없기도 했고, 겉으로 드러나는 어떤 것도 특별하지 않았다. 자기 외모나 스타일은 물론이고 집의 위치나 크기, 인테리어. 혹은 가족까지. 내세울 만큼 특별한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자존감을 드러내고 싶을 때도 그저 겸손하곤 했다. 착하게.
그런 D가 자존감이란 것을 하나씩 주머니에 넣기 시작한 것은 J와 만난 뒤부터였다. 아마도 서른. 그쯤이었다. D의 삶은 영유아검사를 하면 평균 이하로 표시될 5%안쪽에 서있었다. 그때면 평균적으로 마땅히 해야 할 위치에서 마흔 다섯 걸음 정도 뒤에 서있었다. 직장도, 성취도, 집도, 통장도. 그정도에 있었다. 그때쯤 J를 만났다. 다행히 J는 평균의 함정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Overall이라 불리는 전체 능력치의 평균을 보기 보다는, 자신이 선호하는 능력의 수치를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다행히 D는 J가 관심있어하는 능력치가 높은 편이었다.
영화 <머니 볼>은 오클랜드 애슬래틱이라는 가난한 구단을 맡은 단장 빌리 빈이 등장한다. 실존 인물이기도 한 그는 가난한 구단을 거시적으로 바라보고 좌절하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구단이 가진 능력 중, 가장 특출난 능력을 미시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단장이었다. 오클랜드 어슬래틱은 일단 우승권에서 노는 팀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우승을 목표로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과감한 실험을 해볼 수 있는 팀이기도 했다. 빌리 빈은 이 팀에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머니 볼' 시스템을 도입한다.
'머니볼' 시스템은 스타성이 짙은 플레이어. 소위 말하는 스타 플레이어를 사 오지 않는다. '머니볼'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출루율'이었다. 얼마나 많이 베이스에 진출할 수 있느냐. 그것만 판단했다. 안타든, 홈런이든, 볼넷이든. 방법은 상관없다. 어떤 방법이든 출루만 할 수 있다면 좋았다. 심지어 그 능력을 제외한 다른 능력은 떨어져도 좋았다. 그래야 더 저렴한 가격으로 선수를 사 올 수 있으니까.
빌리 빈은 그런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선수를 영입한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오클랜드 애슬레틱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높은 순위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D에게 있어 J는 빌리 빈이었다. 능력의 총합이 아닌, D가 가진 특별한 부분을 발견해 그것을 아껴주는 빌리 빈이었다. 그런 J 덕에 D는 자신이 잘하는 것을 더 잘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D의 방식으로 타석에 서도 되다는 것을 허락받았다.
그리고 D는 출루했다. 안타든 홈런이든 볼넷이든. 가리지 않고 출루했다.
2.
J와 D. 그 사이에 유아차, 그 안에 i가 쌔근쌔근 잠든 밤. 그 밤 놀이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간혹 구름이 있었고, 별은 왜인지 많았다. 그래서 하늘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 하늘은 언젠가, J와 D 사이에 i가 없던 어느 날을 떠올리게 했다. 그날은 블루스퀘어에서 두 사람이 함께 좋아하는 가수 이소라의 공연을 본 날이었다. 공연의 마지막 곡은 <난 별>이었다. 이소라 가수는 공연 내내 그랬듯 공연의 마지막까지 고개를 푹 숙이고 숨을 쉬었고, 가끔 고개를 들어 객석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곡<난 별>을 부르기 전에도 그랬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숨을 쉬었고, 고개를 들어 객석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그곳에 온 모든 이들과 눈을 맞추고 싶다는 듯. 천천히 눈빛을 나누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난 별, 여러분도 별."
그리고 시작된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이런 미문이 있었다.
❝ 삶과 죽음의 답 없는 끝없는 질문에 휩싸인 채 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에 빠져 혼자 괴로울 때조차
별처럼 저 별처럼
난 별, 넌 별, 먼 별, 빛나는 별 ❞
3.
공연이 끝난 뒤, 블루스퀘어를 나선 두 사람은 걸었다. 그날 하늘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특별하지 않았으리라. 먼지도 구름도 잔뜩. 그래서 별은 무심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반짝이고 있었으리라. 그런데도 두 사람은 자주 하늘을 올려보았다. 별이 보여서가 아니라, 별이 된 기분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하늘을 바라보고, 또 i를 바라보았다. D는 가창의 능력이 현저히 낮은 자신이 야속했다. 노래를 잘한다면, <난 별>을 i에게 불러주었을 텐데. i가 괴로울 때마다. i의 자존감이 떨어질 때마다, i가 외로움에 사무칠 때마다. 기억할 수 있도록. <난 별>을 불러주었을 텐데. 그러지 못함에 야속함을 느꼈다.
그래서 담아주기로 한다. i에게 줄 미문을. 나직이 읊조리며 그 시간에 새겨주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