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돈이 없어서,
공무원이 못 돼서,
전세금을 빼가서 너랑헤어지려는 게 아니야.
그냥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졌어.
그리고 그걸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 같아❞
⟪건너편⟫
미문 | 김애란
김애란 작가와 동년배의 독자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저 작가와 같은 시절을 살아갈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그 마음은 김애란 작가가 표현하는 이야기가 같은 세대의 서사와 감정을 너무나 잘 대변해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죠. 단편 소설 <건녀 편>도 그렇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긴 시간 사귀고 동거를 하며 지내는 연인이 등장 합니다. 두 사람은 함께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다 도화가 먼저 합격을 했고, 이수는 그후로도 여전히 고시에 매달리고 있었죠. 거기에 더해 이수는 함께 마련한 전세금을 도화 모래 빼서 학자금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크리스마스. 두 사람은 어울리지 않는 비싼 회를. 분에 넘치는 양의 회를 먹으며 그 날을 보냈고, 도화는 이수에게 이별을 고합니다. 그리고 그때, 이 말을 남기죠.
❝나는 네가 돈이 없어서, 공무원이 못 돼서, 전세금을 빼가서 너랑헤어지려는 게 아니야. 그냥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졌어. 그리고 그걸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 같아❞
원인과 결과가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 생각하는 기성의 세대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도화의 이 미문은 핑계에 불과할 지 모르죠. 하지만 김애란 작가와, 또 도화와 같은 세대에 같은 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미문은 도화의 핑계가 아닌, 진심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냥."
헤어짐의 이유로 어떤 인과도 아닌, 이런 말을 해야 하는 시절이 있습니다. 김애란 작가의 이 미문은 그런 시절의 사람들을 위로 합니다. 그게 도화든, 이수든. 상관없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