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들은 죄다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험하고 소란스럽고 야비하고 추악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결국은 똑같은 말들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 스무 개라도 온전한 말이 남아 있을까.❞
⟪사물의 뒷모습⟫
미문 | 안규철
언젠가 '오늘 하루, 단어'라는 모임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모임은 매일 나의 하루에 가장 중요했던 단어를 기록하는 모임이었죠. 예를 들면 생일이라거나 운동이라거나 여행 같은 것들이었죠. 처음 이 모임을 기획할 때는 하루에 딱 한 단어만 남긴다는 것이 너무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정하고 싶은 단어가 너무 많을 것 같아서였죠.
그런데 실제로는 전혀 반대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루를 종일 살았음에도 딱 맞는 단어가 마땅히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어떤 날은 정말 단 하나의 단어도 생각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강 가장 오래 시간을 보낸 소파라든지... 의미없는 단어를 적어놓곤 했습니다.
안규철 작가의 산문집 <사물의 뒷모습>을 보면 단어에 관한 이런 미문이 나옵니다.
❝좋은 말들은 죄다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험하고 소란스럽고 야비하고 추악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결국은 똑같은 말들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 스무 개라도 온전한 말이 남아 있을까.❞
작가가 독일 유학생 시절, 공장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의 이야기 입니다.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하는 곳이었기에 각자의 모국어가 모두 달랐죠. 그러다보니 다들 말을 그리 많이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의사소통이나 심지어 감정을 나누는 것조차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고작 스무 개의 단어도 쓰지 않았음에도 말이죠.
작가는 그런 에피소드를 말하며 좋은 단어는 무엇인지, 우리는 우리의 하루에 몇 번이나 좋은 단어를 쓰고, 또 몇 번이나 나쁜 단어를 사용하는지. 그런 우리의 쓰임 때문에 세상에는 스무 개라도 온전한 말이 남아 있는지... 의문을 품습니다.
그런 작가의 의문을 보며 우리도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겠죠. 나의 하루에 얼마나 질 좋은 단어가 담겼는지. 그리고 내일은 이런 목표를 세워볼 수도 있겠죠. 스무 개의 질 좋은 단어. 그것을 나의 하루에 담아보자. 이런 목표를 말입니다.
그렇게 질 좋은 단어 스무 개로 채우는 하루와 하루와 하루. 그것이 쌓였을 때를 상상해 봅니다. 아무리 상상력 없는 이라 하더라도 그려볼 수 있겠죠.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하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