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문의 에세이】❝우리는 2만원 짜리 스탠드를 켰다❞
❝그렇지만 우주에는 별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또 많다. 지구상의 해변이란 해변 모두에 깔려 있는 모래알들보다 우주에 있는 별들이 훨씬 더 많다.❞
⟪코스모스⟫
글 | 칼 세이건
펴낸 곳 | 사이언스북스
1.
"거대해지고 싶어."
J가 좋아하는 놀이 중에는 "그럼, 이거야." 놀이가 있다. 이 근본 없는 놀이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식사 자리든, 술자리든,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든, 이야기를 나누다 어떤 상황을 떠올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에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은지, i가 커서 외국인과 결혼하겠다고 하면 어떨지(놀랍게도 이 상상을 하면서 D와 J는 놀러 가기 가장 좋은 나라를 찾기 시작했다) 같은 것이다. 보통 이 놀이의 시작은 J다.
"그럼 이거야! 다시 태어나는데 딱 하나를 바꿀 수 있어. 그러면 뭘 바꿀 거야?"
D는 이 놀이의 주최자가 될 능력은 없었지만, 꽤 괜찮은 참가자이긴 했다. 어떤 조건의 상상이든 성실하게 임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거대해지고 싶어."
D의 대답이었다. D는 키가 작은 편이었다. 작다는 건 편리하다는 여느 만화의 부제와 달리 세상은 키 작은 남자에게 조금은 가혹한 편이었다. 물론 그 가혹함의 대부분은 D 혼자 느끼는 자격지심에 불과했다.
"거대? 어느 정도?"
J가 묻는다.
"198cm에 98kg."
지나치게 구체적인 숫자에 J는 얘 뭐 하는 인간이지? 라는 표정을 지었다.
"마이클 조던 현역 때 사이즈야. 그 정도면 딱 좋을 것 같아."
J가 묻는다.
"그렇게 커서 뭐 하려고?"
D는 성실히 고민한다. 그리고 답한다.
"그냥. 크면 좋잖아. 외국에서 영어 못해도 당당할 수 있을 것 같고."
D의 하찮은 대답에 J는 코웃음을 쳤다.
"... 내가 거대하다면 i도 작지 않을 테니까."
J는 웃음을 멈췄다.
2.
작다는 것은 불편한 것이다. D는 그렇게 생각했다. 외모를 바탕으로 한 편견은 옳지 않다는 사회적 합의는 있지만, 우리의 DNA는 거대한 것에 더 예의를 갖추곤 한다. 그것은 크기와 힘이 전부였던 최초의 인간 시절부터 이어져 온 것이며, DNA는 인류가 걸어온 시간 정도로는 바꿀 수 없을 정도로 느긋하다. 문제는 DNA만큼 지독한 것이 유전이라는 것이었다. 한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 그중에 우연으로 발생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유전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할머니... 한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는 추리소설의 범죄 현장처럼 어딘가엔 증거가 남아 있다. D의 키도 부모나 조부모, 혹은 그 윗대가 준 유전자에서 온 것일 테고, i 역시 그 유전자를 이어받을 가능성이 크다. D는 그것이 서글펐다. 자신과 같은 경험을. 키가 작아 겪어야 하는 재수 없는 일들. 그런 것을 i가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서글퍼졌다. 그래서 J의 질문에 거대해지고 싶다는 답이 고민 없이 나왔다. 하지만 알고 D도 J도 알고 있다. "그러면 이거야!" 게임의 맹점은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것은 그저 가정일 뿐이며 상상일 뿐이며, 한순간의 유희에 불과했다. 그래서 또 서글퍼졌다.
3.
D는 i가 그런 유전자 이야기를 하며 서글퍼할 때를 대비해 두 가지 이야기를 생각한다. 하나는 총을 만든 난쟁이의 이야기. 그 이야기의 배경은 아마도 아주 오래전이었다. 무기라고는 칼과 창, 활밖에 없던 시절. 그래서 난쟁이는 아무리 노력해도 커다란 적들을 이기지 못했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난쟁이 중 손재주가 유달리 좋았던 한 난쟁이가 새로운 무기를 만든다. 그 무기는 난쟁이의 손에도 쏙 들어갈 정도로 작았고, 활시위를 당기는 것처럼 힘을 쓸 필요도 없었다. 그저 검지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기면 그만인, 그런 무기였다. 게다가 위력은 화살의 몇백 배는 되었고, 사거리 역시 그동안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멀리서도 적을 이길 수 있는 그런 무기였다. 난쟁이는 그 무기의 이름을 '총'이라 붙였다. 총의 등장. 그것으로 세상은 바뀌었다. 난쟁이든 거인이든, 드워프든 엘프든, 키 큰 인간이든 키 작은 인간이든. 같은 조건에서 싸울 수 있었다. 그래서 더는 누구도 난쟁이를 무시할 수 없었다.
"음... 이 이야기는 너무 호전적인걸?"
D는 두 번째 이야기를 생각한다.
그 이야기는 이런 미문으로 시작한다.
❝그렇지만 우주에는 별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또 많다.
지구상의 해변이란 해변 모두에 깔린 모래알들보다 우주에 있는 별들이 훨씬 더 많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이런 미문을 남겼다. <코스모스>는 원래 다큐멘터리 제작을 목적으로 한 프로젝트였다. 칼 세이건은 대중들에게 자신이 본 우주. 그 황홀한 아름다움의 세상을 전하고 싶었던 천문학자였다. 게다가 잘생기고 쇼맨십도 뛰어난 인물이었기에 대중들을 위한 다큐멘터리 제작에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인물이었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 다큐멘터리에 직접 출연해 우주의 안내자처럼 우리를 지구 밖 세상. 그 거대한 공간 속으로 안내했다. 그런 장면 중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그가 바다의 해변에서 한 줌 모래를 쥘 때였다. 그는 손으로 모래를 쥐며 말한다. 지구의 모든 모래알보다 우주의 별들이 더 많다고. 그 시각적 충격은 놀라운 것이었다. 아무리 작은 손이라도 그 안에 든 모래알을 세려면 며칠은 걸릴 것만 같은데, 지구의 모든 모래를 모아도 우주의 별보다 적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경악할 정도로 황홀한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칼 세이건은 왜 그런 장면을 다큐멘터리에 넣은 것일까? 왜 <코스모스>에 이런 미문을 남긴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그 작은 존재가 별것도 아닌 것을 쥐겠다며 아등바등하는 것이 얼마나 하찮은 일인지 말해주기 위해서였다.
D는 우주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우주에서 보면 마이클 조던이나 D나 먼지보다 작은 점처럼 보일 것이다. 그것도 지구에서 제일 가까운 우주에서, 그것도 외계인이 만들었을 법한 성능 좋은 망원경으로 봤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여기서 칼 세이건이 참여한 우주탐사선 보이저호의 이야기를 덧붙이면 좋을 것이다. 보이저호는 다행히 완벽한 항해를 통해 우주 탐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칼 세이건은 보이저호의 카메라를 돌려달라 요청한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경악한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하지만 칼 세이건은 뜻을 굽히지 않는다. 설령 카메라를 돌리다 보이저호가 고장이 나서 임무를 종료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카메라를 돌려야 한다고 믿었다. 왜 그랬을까? 그가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 그 모습을 말이다.
지구는 가까이서 보면 물과 구름, 산과 나무 같은 것들로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은하에서 지구를 봤을 때는 어떨까? 그곳에서의 지구는 칼 세이건의 표현에 의하면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했다. 우리가 사는 이 거대한 지구가. 한국에서 유럽에 가려면 12시간을 꼬박 가야 하는 커다란 지구가. 우주에서 바라보면 한 줌 푸른 점에 불과하다는 사실. 칼 세이건은 그 진실을 지구에 사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이들은 하나같이 생각했다. 저 작은 점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인지. 생각했다.
D는 훗날 i에게 창백한 푸른 점의 사진을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가능하다면 i가 좋아하는 모래놀이를 할 수 있는 해변에서. 모래사장 앞으로 수평선보다 높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서 이 사진과 미문을 전하기로 마음먹었다. 관점을 조금만 넓히면 크고 작은 것의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런 부스러기 크기도 되지 않는 생각을 할 바에야 모래성을 쌓고, 파도에 발을 적시고, 또 첨벙 빠지고, 놀라서 웃고, 한 번 더 첨벙 빠지는 편이 좋은 것이라고.
그럼에도 i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래도 작은 건 싫어. 컸으면 좋겠어."
그러면 어쩔 수 없단 표정으로 목말을 태워주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