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w I was sitting waiting wishing
지금 난 앉아서 기다리며 바라고 있어요 ❞
⟪Sitting, Waiting, Wishing⟫
미문 | 잭 존슨
1.
기다리는 것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D가 그랬다. D는 전자제품 구입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잘 기다렸다. D는 어린 시절. 약속을 지키지 않은 친구를 두 시간이나 기다린 적도 있다. 스마트폰도 없이. 반면, J는 기다리는 것을 싫어했다. 그 시간을 아까워했다. 이런 차이는 영화관을 갈 때, 확연히 드러났다. 지정 좌석제인 영화관의 경우 기다림이 필요한 경우가 없다. 들어올 시간이 되면 들어가서 정해진 좌석에 앉으면 그만이다. 다만 영화를 보기 위해 언제 출발할지에 대해서 간극이 발생하곤 한다. 여섯 시 시작의 영화라면 D는 다섯 시 반까지 도착하는 것을 좋아한다. 혹여나 발생할 문제 때문에 제 시간에 들어가지 못함을 두려워해서다. J는 5분 전에만 도착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일찍 가서 할 일 없이 기다리는 것이 싫어해서다. 그 간극은 다툼의 이유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다른 방식으로 생각했다. 괜찮은 이유가 늘어난 것으로 말이다. 30분 일찍 가면 D의 이유로 괜찮고, 시작 직전에 도착하면 J의 이유로 괜찮으니까 괜찮음의 범위가 넓어졌다 두 사람은 생각했다.
i를 기다리는 것도 그랬다. J와 D는 여유 있게 생각했다. 30분 먼저 와도 좋고, 시작 직전에 와도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i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i는 누구보다 빠르게 두 사람을 향해 달려왔다. 기다리는 것은 질색이라는 듯. 두 사람을 찾아와 꼭 안겼다. 그래서였을까? J와 D는 아직 영화를 상영할 준비를 완벽히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i를 만나야 했다. 그래서 서툴렀고, 그래서 부족했다. 모든 행동에 의심이 들었고, 사랑에 관한 것을 제외한 모든 말에 의문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책을 펼치기도 하고, 주변의 말을 경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i는 두 사람의 준비보다 언제나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그렇게 빨리 성장해 갔다.
갓난아이의 성장이란 정말이지 눈부시다. 흔히 말하는 빛의 속도를 문과적으로 표현한다면 '아이의 성장 속도'라 말해도 무방하다. i도 그랬다. 배가 작아 한 번에 많은 젖을 먹지 못하던 i. 그래서 가장 작은 젖병을 사두었던 J와 D. 하지만 i는 언제그랬냐는듯 더 큰 젖병에 담긴 우유도 한 번에 먹었다. 심지어 어제까지만 해도 목을 가누지 못하던 i였는데, 어느새 그 무거운 젖병을 스스로 잡고 먹었다. 언제 뒤집나 하는 생각은 곧장 기어다니는 i의 모습에 지워졌고, 안전 펜스까지 올 힘도 없던 i가, 어느새 펜스를 잡고 넘는 모습에 두 사람의 눈은 동그래졌다.
i는 그만큼 기다릴 줄 모르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D와 J는 분주해져야만 했다.
2.
i는 감각이 예민했다. 그래서 모래 위를 맨발로 걷는 것을 싫어했다. 그 까칠하고 간지럽고 오돌토돌한 감각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모래놀이를 좋아하던 i를 위해 D와 J는 자주 바다에 갔다. 기다림을 잘 견디지 못하는 i는 항상 바다에 도착하기 전 눈을 떴고, 차창 밖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바다가 나오면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또 신나 했다. D는 급히 주차하고, 트렁크를 연다. 트렁크에는 모래놀이를 위한 준비물들이 한 짐 실려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돗자리와 양말이다. 모래를 밟지 않는 i는 꼭 양말을 신고 신발을 신고서야 그 위를 걸었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모래가 들어오면 멈춰서 신발을 털어냈다. 두 걸음에 한 번은 그러기를 반복했다. 이대로면 오늘 안에 모래놀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짐과 함께 i를 안고 바다 가까이 걸어가 자리를 잡았다. 모래가 잘 묻지 않는 돗자리를 펼 때까지 i는 떨어지지 않는다. 바람을 이기며 돗자리를 펴면 그제야 i는 땅에 발을 딛는다. 그리고 누구보다 열심히 모래놀이를 시작한다.
i가 그렇게 모래놀이를 시작하면 J와 D도 한숨을 돌린다. 준비한 간식을 먹으며, 아직 모래 삽을 사용하는 것이 서툰 i를 도우며, 세 사람은 바다에서의 시간을 보낸다. 세 사람 앞으로 펼쳐진 넓은 바다. 그 위로 서핑을 하는 이들이 줄지어 있다. 대부분 초보인지 제대로 파도를 타는 이들은 거의 없고, 대부분 보드 위에 눕거나 앉아 있었다. 언젠가 뮤지션 잭 존슨도 저런 모습으로 앉아 있었겠지. 두 사람은 생각한다.
3.
하와이 출신의 음악가 잭 존슨은 서핑의 진심인 사람이다. 하와이에서 나고 자랐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래서 그의 음악 중에는 바다와 서핑을 노래한 것이 많은데 ⟪Sitting, Waiting, Wishing⟫도 그런 음악 중 하나다. 물론 이 노래의 가사를 보면 사랑하는 연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하지만 서퍼들은 이를 다르게 해석한다. 바로 서핑에 대입해서 말이다.
서퍼들의 일. 서핑하지 않는 이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파도를 타는 일."
하지만 서퍼들은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파도를 기다리는 일."
바다에서 서퍼들을 오랫동안 바라본 일이 있다면 이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서퍼들이 파도를 타는 시간은 순간이다. 아무리 실력이 좋은 서퍼라 하더라도 다르지 않다. 그들은 자신이 탈 수 있는 파도, 그것을 넘어 자신이 타고 싶은 파도를 간절히 기다린다. 보드 위에 앉은 채 말이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다시 ⟪Sitting, Waiting, Wishing⟫의 가사를 보면 잭 존슨이 앉은 곳이 보드 위라는 사실을, 그가 기다리고 바라는 것이 자신에게 완벽한 파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파도는 언제 올지 알 수가 없다. 파도는 대부분 느긋하지만, 가끔은 기다리기 싫어하는 성격이라도 된다는 듯 갑자기 찾아오곤 한다. 그렇기에 서퍼들은 눈을 뗄 수가 없다. 한눈을 파는 사이 그렇게 기다리던 파도가 지나쳐 버리면 안 되기에 그들은 하염없이 앉아서 파도를 기다린다.
4.
방금 막 한 서퍼가 기다리던 파도가 왔는지 보드에 선다. 하지만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내 쓰러져 버린다. 그사이 야속한 파도는 지나가 버린다. 서퍼는 또다시 보드에 올라타 앉는다. 보이진 않지만 웃고 있는 것 같았다.
고개를 돌린다. i를 본다. i는 한참 모래를 파다가 앞을 바라본다. i가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서퍼일까, 파도일까. 아니면 그 너머의 수평선일까. 그건 평생을 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이런 상상을 해볼 수는 있다. i 역시 기다리고 있다고. 양껏 우유를 먹을 수 있을 만큼 배가 커지길. 어디든 갈 수 있게 다리에 힘이 생기길. 수평선 너머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 죽겠는데 키가 잔뜩 커져서 그곳을 바라볼 수 있길. 말하고 글을 읽을 줄 알길. 그래서 이 답답한 아빠와 엄마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길.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J와 D가 편 돗자리에 앉아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i의 양말에 오돌토돌.
모래가 묻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