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감정의 원인을 찾다보면 '무지'를 만나게 됩니다. 알지 못한다는 것. 또, 알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다음 걸음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항상 우리를 주춤거리게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이 미문에서 그 이유를 찾아봅니다.
❝1940년부터 나는 2월이면 항상 이번엔
겨울이 영영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하계의 여왕인 페르세포네는 두꺼비처럼 거의 같은 때만 되면
죽은 것들 가운데서 일어난다. ❞
소설가 조지오웰은 뛰어난 산문을 남긴 작가이기도 합니다. 언제나 사회와 정치적인 글쓰기를 목적으로 글을 쓴 조지오웰이기에 산문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잘 어울리는 장르라 볼 수도 있겠죠.
그가 남긴 산문 중, <두꺼비 단상>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봄이되면 어김없이 깨어나는 두꺼비를 보며 그들에게 남기는 조지오웰의 찬사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글입니다. 이 글을 쓰던 시기, 그리고조금 전의 시기. 오웰이 살던 영국의 환경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다툼과 분쟁은 물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빈번히 일어났고, 그로 인해 부차적으로 취급되는, 예를 들면 빈곤이나 환경, 불평등 같은... 그런 일들은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겨울.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겨울이 이어지는 날들이었죠.
조지오웰은 그런 시기에 이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어둠과 추위, 눈보라의 겨울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특히 자신의 글 한 장으로는 10그램의 눈도 녹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더욱 그의 마음을 차갑게 식혔겠죠.
그런 오웰의 앞에 긴 겨울잠에서 일어난 두꺼비가 찾아 옵니다. 봄과 함께 말이죠. 오웰은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뒤에 찾아오는 그 봄에, 두꺼비에. 경탄합니다. 그리고 생각하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겨울도 두꺼비의 기지개와 함께 끝이 난다."
이 믿음이, 증명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겨울도 결국은 어제의 일이 된다는 것. 오늘은 어느새 봄이라는 것. 그런 믿음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당신의 겨울도 곧,
끝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