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라서 피곤한❞ 너에게 줄 미문

by 최동민



인생의 계획은 물론이고 여행을 할때도 분 단위로 계획을 세우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타임 테이블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불안해하고, 우연이라든지 즉흥이라든지 하는 것이 주는 즐거움은 애써 외면합니다. 그것에 발목이 잡혔다간 애써 세운 계획이 엉망이 될 것을 알기 때문이죠. 하지만 때로는 그런 강박이, 완벽을 향한 강요에 스스로 지쳐버릴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이런 미문을 펼쳐보면 어떨까요.



❝2년 뒤 저녁 식사 메뉴를 지금 고르지 않듯,

미리 연주 프로그램을 정해두는 일은 자연스럽지 않다.

놀라움도 공연의 한 요소로 관객에게는 새로움을,

나에게는 자유로움을 선사한다.❞


헝가리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 그의 공연 프로그램 북에는 그날 공연의 레퍼토리가 적혀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위의 미문에서 봤듯이 거장 스스로가 새로움과 자유로움이 주는 즐거움에 매료되었기 때문입니다.


안드라스 쉬프는 자신의 말처럼 그날의 공연장, 날씨, 찾아온 관객들을 보며 즉흥적으로 연주곡을 정합니다. 그래서 같은 투어라 할지라도 곡과 순서는 모두 다르죠. 그가 이런 스타일의 공연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분명 그의 실력에 있을 것입니다. 어떤 곡이든 훌륭한 연주가 가능하다는 것, 그만큼 연습을 해왔고 그만큼 무대 위에서 시간을 보냈다는 것. 그렇게 완벽에 가까워지려는 노력, 그것이 안드라스 쉬프에게 이런 자유로움을 선물한 것입니다.


안드라스 쉬프는 그렇게 준비한 자신의 실력이 주는 즐거움. 그것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것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실력으로 보여줄 수 있는 무대, 거기에 곁들일 수 있는 흥겨운 디저트를 더하는데요. 그것이 바로 즉흥에의 선택입니다. 물론 이런 즉흥적인 선택이 모두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지나고보면 다른 곡을 연주하는 게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수도 있고, 순서 역시 다른 방식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즉흥과 완벽은 한 테이블에 놓이기엔 너무 어울리지 않는 법입니다. 그래서 거장은 즉흥의 접시를 테이블에 놓는 것이죠.


그런 거장의 선택에 관객들은 완벽한 연주가 주는 즐거움에 더해 그의 말처럼 놀라움을 선물받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더 완벽한 음식에 미련을 갖지 않습니다. 그럴 시간에 거장의 즉흥이 주는 달콤함을 즐길 뿐이죠.


완벽에의 강요, 타임 테이블에 놓인 집착을 조금 벗어나면 이런 달콤한 맛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길 잃은 골목에서 인생 가게를 만난다거나, 늦어버린 버스 때문에 들른 성당에서 세상에 없는 벅차오름을 느끼는 것 같은. 그런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가끔은, 타임 테이블에 '즉흥'이라는 환상곡을 적어놓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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