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하는 일. 올해의 시작에 우리는 수없는 것들을 더하고자 결심했습니다. 그것을 달력에, 노트에, 스마트폰에 옮겨 적으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허나 그것을 옮기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들인 탓일까요? 목록은 소설처럼 허구로 멈춰버렸고, 열두 달의 끝에선 내게 더해진 것은 많지 않습니다.
다시 그 목록을 들여다봅니다. 뻔한 것들. 세속적인 것들. 황당한 것들, 몽상에 가까운 것들, 어느 정치인의 비어있는 약속같이 허무하고 또 맹랑한 것들. 그런 것들을 들여다봅니다. 이 중 하나라도 이루었다면 좋았을 텐데 후회를 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후회는 걸음이 느린 자를 위한 아차상 같은 것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있지도 않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올해의 일월. 당신의 생에는 어떤 목록이 담겼습니까. 그 목록은 거대했습니까. 지루했습니까. 아니면 소박한 꿈과 같았습니까. 이렇게 물으면 당신은 왜 그걸 이제야 묻냐며, 저를 탓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인간은 해를 거듭할수록 어리석음을 거듭 쌓는 존재인 것을요.
추신이라는 것. 그건 어쩌면 우리의 어리석음. 그것을 감추기 위해 만든 것일지 모릅니다. 이것을 처음 발명한 이는 아마도 게으른 사람이었겠죠. 그래서 후회도, 아쉬움도, 못다 한 말들도 너무 많아 구태여 추신을 달았던 것이겠죠. 저는 그것이 몹시도 좋습니다. 그와 같은 게으른 사람이어서. 그와 같이 뒤늦게 후회하는 사람이어서. 그것이 몹시도 좋습니다. 그래서 십이월이 되면 저는 분주해집니다. 다하지 못한 말을 추신으로 남겨야 하기에. 저는 분주해집니다.
허나 남은 칸이 많지는 않습니다. 십이월 달력의 숫자 하나가 원고지 한 칸. 그렇게 생각하면 추신을 남길 수 있는 자리는 고작 서른한 글자가 전부입니다. 여기에 무엇을 써야 할까요. 무엇을 쓰면 후회를 덮고, 아쉬움을 덮고, 그리움을 덮을 수 있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저 ‘추신’ 두 글자를 남긴 채,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요. 추신이 있기에. 서른한 칸은 아직 비어있기에. 저는 아직 사랑을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그러하듯이 말입니다.
이천이십삼 년 십이 월 일 일.
⟪윤고은의 EBS 북카페⟫ '일간 카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