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긴 터널

by 최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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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터널이 들어간 첫 문장 중 가장 인상적이며,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작품은 역시나 <설국>입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9,702미터에 달하는 시미즈 터널을 지나 유자와마치에 도착해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는데요. 그곳은 작품에서 그려진 설국. 말 그대로 눈의 나라였습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평소 여행을 즐겼고, 자신의 거의 모든 작품을 여행에서 인상을 받거나, 여행지에서 직접 쓴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장소가 바로 유자와마치였는데요. 유자와마치로 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터널이었던 것이죠. 작가는 이 터널을 지나며 불운했던 자신의 과거를 넘어, 꿈만 같은 눈의 나라에서 아름다움의 정수를 담은 문장을 써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터널에 들어서기 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삶은 어땠을까요? 당시 그 의 삶은 죽음과 아주 밀접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은 그의 성장을 기다려주지 않은 채, 하나둘 곁을 떠났습니다. 거기에 더해 믿고 의지하던 스승마저 그의 졸업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버렸죠. 그런 거듭된 죽음을 온몸으로 안아야 했던 소년에게 주위 사람들은 ‘장례식의 명인’이라는 슬픈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슬픔과 우울의 터널. 그것을 벗어나야 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 바로 시미즈 터널이었습니다. 현실의 공간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삶의 우울을 이겨냈던 작가는 그 긴 터널이 완성됐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열차에 몸을 맡겼죠. 그리고 도착한 터널의 끝. 그곳에서 작가는 눈의 나라를 마주했습니다. 그곳에는 지금껏 자신이 마주해야 했던 죽음과 우울. 그것을 새하얗게 덮어주고도 남을 만큼의 눈이 내리고 있었죠. 그 순간, 작가는 믿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라면 새로운 새벽을 마주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한 문장, 한 문장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완성된 한 권의 책. 그것으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긴 터널의 끝. 긴 어둠의 끝. 긴 우울의 끝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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