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성 에세이 #108. 파두를 듣습니다

by 최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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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오릅니다. 이 계단은 백 년 전 리스본의 시인 페소아가 살았을 때도, 그 이전, 사제복을 입은 시인 안토니우가 살았을 때도, 리스본이 지진으로 무너졌을 때도, 왕이 브라질로 도망을 갔을 때도, 콜레라가 돌고 급히 공동묘지가 필요해 프라제르스 묘지가 만들어졌을 때도, 그곳을 종점 삼아 길이 나고, 그 길 가운데 페소아의 박물관이 생기고, 그 길 끝에 노란 트램이 멈추고 다시 계단을 오를 때까지 이곳에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너무나 오래된 계단. 그곳을 오릅니다. 목적은 없습니다. 누군가는 성당을, 누군가는 전망대를 보기 위해 오르지만, 그런 목적지가 적힌 쪽지의 무게도 감당키 어려운 지금은 그저 오르고 또 오를 뿐입니다.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이 길이 오래된 것이. 그래서 너무나 복잡하고 너무나 헷갈리는 것이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아직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우리에게. 아직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한 우리에게. 이 길의 오래됨과 복잡함은 어쩌면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바다에 끝이 없고, 지구는 둥글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래서 배를 몰고 호카 곶에서 끝없는 수평선을 향했을 때. 이는 바람에 의지해 돛을 펼쳤을 때, 한 번은 돛과 함께 선원이, 또 한 번은 돛만 쓸쓸히 돌아왔을 때. 오지 않는 선원의 가족들은 이 길을 올랐을 것입니다.


알파마. 이 오래된 골목을 오르며 언덕 너머로 보이는 잔인한 바다에 한숨인지 한탄인지. 신음인지 노래인지 모를 한을 던졌을 것입니다. 그 한을 리스본 사람들은 사우다드라 불렀고,

사우다드가 담긴 노랫소리를 파두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는 그 한의 노래를 기도라 부르려 합니다. 큰 바다의 바람을 넘어선 경험이 있는 그 오래된 노래를 기도라 부르려 합니다. 그래야 겨우 넘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그래야 겨우 닿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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