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고 맥주관(道後麦酒館)
밤의 도고 온천 풍경을 보고 싶은 마음 반, 멀리서 온 만큼 도고 온천을 빨리 떠나고 싶지 않다는 마음 반으로 주변 산책을 하고 도고 온천 본관으로 돌아왔다. 저녁 시간이 되어 약간 허기가 질 때 즈음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삼삼오오 향하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는 일본어에서 맥주를 칭하는 일반적인 명사 비-루(ビール)”가 아닌 무기 슈(麦酒, 맥주)라는 이름으로 간판을 올린 것이 예스럽다. 예스러운 간판 밑의
입구는 꽤 세련미가 있고 그 안은 이미 만원이다.
오후 3시 30분경, 왠지 심심하고 출출한 이 시간. 평소라면 꿈도 못 꿀 맥주 딱 한잔이 탐스럽다.
만석인 내부에 가니 묻고 따지지도 않고 맥주 주문부터 받는다. 이곳은 많은 여행자들이 진짜 ‘딱 한잔’씩만 하고 가는 곳이기 때문인지 일본치고 응대가 살갑지 않다. 빈자리가 눈앞에 있는데도 스탠딩 석으로 안내받았다. 일본에서는 점원이 안내해주는 대로 앉는 것이 상도 인지라 말 한마디 못 하고 우물쭈물했다. 그러다 하루 종일 걷던 다리가 앉고 싶다!라고 외치는 바람에 자리가 비었는데 옮겨도 되느냐고 요청하자 그제야 안내를 해준다. 일본에서는 한 번씩 꽉 막힌 원칙으로 답답할 때가 있다.
도고 지역에서 전하는 수제 맥주. 그중 한잔을 적당하게 주문했다. 커피도 즐기다 보면 ’ 신 맛‘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맛이 있는데 맥주도 비슷하다. 신 맛이라고 표현되는 여러 가지 맛 속에 풍부한 어떤 맛이 있다.
주문한 맥주는 금방 서빙되었고 방금의 답답함을 삼키듯이 얇은 플라스틱 컵에 얇은 거품으로 가득 따른 수제 맥주를 기세 좋고 내가 삼국지 중원의 장비요!라는 마음 가짐으로 기세로 한잔 콱 들이켰다. 시원한 목 넘김, 생각보다 적은 탄산감. 쌉싸름한 맥아의 맛이 지금까지 맛본 맥주와는 달랐다. 탄산이 조금 더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에서 취향을 찾았다. 나는 탄산감이 있는 맥주를 좋아하는구나.
가벼운 맥주 안주로 가라아게 만한 것이 없다. 가라아게
전문점처럼 어떤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일단 갓 튀긴 치킨은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다들 한잔만 하고 돌아 가지만 나는 한국인이 아닌가. 내가 술을 배울 때 선배가 항상 술 한잔만 하자고 해놓고는 소주를 두 병을 마셨다. 선배 술 한잔만 한다면서요라고 항상 불맨소리를 하니, ‘술 한잔’ 하자 하고 진짜 ’한 잔‘ 하는 사람이랑은 친하게 지내면 안 된다고. 그때 배웠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서 두 잔을 더 주문했다. 등뒤에 난로를 쬐고 홀짝홀짝 맥주를 한 모금 한 모금씩 마시다 어느새 알딸딸 해진 나는 해가 지고 나서야 그 집을 나올 수 있었다.
날씨는 겨울 한국보다 훨씬 따뜻해도 겨울은 겨울이라 해가 금방 진다. 어둠이 내린 도고 온천 본관에는 이상하리만큼 하루 종일 사람들로 붐볐다. 낮은 낮 대로 고풍스럽고 밤은 밤 대로 따뜻한 조명을 밝혀 고풍스러움이 있다. 도고 온천 본관의 모습을 이렇게 저렇게 사진으로 담아 보다 보니 어느새 해가 기울었다.
도고 온천 본관은 도고 온천역 끝 자락에 있지만 그리 크지 않기에 5분이면 역까지 갈 수 있다. 가는 길이 아쉬워 이곳저곳 카메라로 시선을 돌렸다. 일탈의 기운도 점점 떨어지고 하루도 점점 끝나간다. 발걸음을 돌리기에 참 아쉬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