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밤 10시에 고기를 굽는다

아이의 농구생활 1년 이야기

by 초록노동자


아이가 농구선수로 성장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꿈을 돕는 엄마의 기록입니다.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맡아 수행하듯이, 집에서는 본격적으로 프로 선수 만들기 프로젝트를 맡아 수행합니다.






2025년 1월 2일, 아이는 정식으로 00 중학교 농구부원이 되었다. 마냥 좋아서 폴짝폴짝 뛰던 아이의 표정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좋아하는 농구를 하게 되어서 나의 마음도 흐뭇했다.


아이의 시작은 조금 늦었다. 초등학교 6학년 올라갈 때, 농구부가 있는 다른 초등학교에서 오라는 제의가 있었다. 심각하게 고민하던 아이는 결국 가지 않았다. 그때 갔었어야 하는데... 같이 들어온 다른 아이들 세 명은 모두 초등학교 때 농구부로 2~3년 활동했던 친구들이었다. 이제 시작한 아이는 당연히 실력이 많이 뒤처졌다. 다른 친구들은 주전으로 자주 불려 나갔다. 대기석에는 늘 아이가 있었다. 경기하다가 땀 흘리며 뛰어 들어오는 형들과 동료들에게 물과 수건을 챙겨주었다. 옆에 서서 감독님의 지시를 열심히 들었다.


지난 1년 동안, 아이가 주전으로 뛴 시간은 몇 시간도 채 되지 않는다. 2~3학년 형들이 주전으로 뛰면서, 우리 팀이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거나 지고 있을 때, 끝나기 몇 분 전에 겨우 뛸 수 있었다. 그 몇 분 사이에도 실수가 많으니 감독님께 많이도 혼났다. 경험이 부족하니, 당연한 결과였다. 사실 그 정도 뛰는 것도 감사한 일이었지만, 엄마의 마음은 안타까움이 컸다. 자꾸만 조바심이 생겨서, 아이에게 티 내지 않고 자제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 졸이던 시간들이 흘렀다. 주전으로 뛰지 못하던 그 시간들을 견뎌내며 아이는 몸의 근육을 키우고 연습을 했다. 스스로 절실함과 간절함을 자각하기를 바랐는데, 1년 전보다 훨씬 그렇게 되었다. 아이에게 잔소리가 아닌, 시합과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난 후에 실질적 조언을 해줬다. 불평불만과 엄살이 줄었다. 지금은 쉬는 날에도 일어나자마자 학교에 가서 연습할 생각을 한다. 하루 쉬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도, 이제는 하루도 쉬지 않는다. 꿈을 향해 저절로 움직이는 아이가 되었다.


지난 10월, 3학년 형들의 진로가 결정되고 난 후, 2학년 형들과 1학년 아이들만 남았다. 워낙 아이들 수가 적어 이제는 뛰고 싶지 않아도 무조건 뛰어야 한다. 스토브리그에 참가하면, 교체해 줄 선수도 한 명밖에 없어 오전과 오후 경기를 꽉 채워 뛰어야 한다. 어느 누구도 다치면 안 된다. 스스로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는지, 평소에 근력 운동하는 시간도 확 늘렸다. 아이는 그렇게 경험하면서 본인의 실력을 조절하며 키워나가고 있다.


실력이 나아진 만큼 아이의 키도 쑥 자랐다. 아침과 밤마다 고기를 구워 먹이고, 제철 과일을 다양하게 먹이고, 몸에 좋은 한약과 흑염소탕과 영양제를 챙겨 먹였다. 잠은 10시 전에 재우려고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빨라야 11시... 그래도 키가 자라서 다행이다. 아이도 밤 10시에 자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조금은 노력해서 다행이다. 더 나아지지 않을까.


지난달 저녁 훈련하다가 발목을 접찔렀었다. 야간 진료를 보는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와 초음파를 찍었다. 다행히 인대만 늘어났고, 뼈에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휴. 초음파 사진을 보시던 의사 선생님께서, "성장판이 닫히려면 아직 멀었네요. 2년 이상?" 그 순간 아이와 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2년 동안 잘 먹고 일찍 자서 키를 더 키워보자, 고 다짐했지만 아이의 그 다짐은 며칠 가지 않았다. 다시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


1년 후 아이는 또 어떤 모습일까. 실력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키는 얼마나 자랐을까. 미래에 먼저 가서 확인하고 싶다. 프로 농구선수가 되어 코트에서 땀 흘리며 치열하게 시합하는 아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흐뭇하다. 미래의 그 장면을 위해 나는 오늘도 밤 10시에 고기를 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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