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의 네 가지 스틸컷
군산에 온 지 11년이 되었어요. 처음에 봤던 회색빛의 흐릿했던 도시는 도수에 딱 맞는 안경을 낀 듯 선명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선명해진 군산의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군산.
#지난 수요일 이른 아침의 출근길
저는 지방 소도시의 바닷가 옆에 살아요.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려면 바닷가를 끼고 있는 도로를 달려야 하고, 회사에 출근하려면 동백대교를 건너야 합니다. 아이 덕분에 강제 새벽기상을 한 지 이틀째. 6시 40분에 집에서 출발하면서 7시 10분에 출근하기까지, 제가 본 영화의 스틸컷 같은 네 가지 풍경을 얘기해보려 합니다.
첫 번째 풍경. 아파트 단지에서 나와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했습니다. 그 순간 숨이 멎는 듯했어요. 어젯밤 월식으로 보름달의 끄트머리만 봤었는데 밤 사이에 달은 꽉 차올랐어요. 밀물로 바닷물이 완전히 빠져버린 드넓은 갯벌 위에 덩그러니 깨끗한 보름달이 떠 있었습니다. 운전하며 곁눈질로 달을 흘끗 보면서 조금 달리다가 좌회전을 했어요. 왼쪽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해는 아직 보이지 않고 그 빛만이 은은하게 번져 동쪽 하늘을 파스텔톤의 주황색으로 물들이고 있었어요. 왼쪽에서는 해가 떠오르고, 오른쪽에서는 달이 지고 있었어요. 마음 같아서는 차를 갓길에 세우고 한참을 보고 싶었지만...
두 번째 풍경. 바닷가 옆으로 난 큰 도로로 나왔어요. 왼쪽에서 비추던 해의 빛은 어느덧 뒤로 남겨지고, 제 앞에는 도로 위의 큰 보름달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째보선창 앞으로 난 작은 다리 위를 올라갈 때, 달을 보며 연신 감탄하다가 옆에 앉은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00아, 엄마가 보름달에게 힘껏 달려가는 것 같아." 사춘기인 아이의 무덤덤한 말이 돌아왔어요. "아니야." 흥칫뿡. "너무 아름답지 않니?" "그러네." 사춘기 아이도 인정한 크고 깨끗한 보름달의 아름다움.
세 번째 풍경. 아이를 학교에 내려주고 조금 더 달려 동백대교로 올라가는 길. 오늘 봤던 네 가지 풍경 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그 풍경을 보는 순간 제가 소설가이길 바랐어요. 제가 가진 이 납작하고 빈약한 단어들로는 묘사할 수 없는 풍경이었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눈앞의 풍경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드넓은 검은 갯벌과 그 위에 앉아 있는 수백 마리의 흰 괭이갈매기들, 갯벌 사이에 조금 남아 있는 검푸른 바닷물과 검은 갯벌 위의 고깃배들, 그리고 그 풍경을 비추며 저 멀리서 은근히 번져오는 아침 햇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풍경. 오늘 하루는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네 번째 풍경. 오늘 봤던 풍경들을 떠올리며 회사를 향해 가는 길. 오늘은 그게 다인 줄 알았던 풍경이 한 가지 더 남아 있었어요. 제가 다니는 연구원의 정문을 지나 조금만 직진하면 "나저어못"이라고 하는 작은 연못이 나오는데요. 나저어못은 생태적으로 복원한 지 12년이 지났고 지금은 아주 자연스러운 습지생태계가 되었어요. 습지 주변으로 수변식물이 가득 자라는데, 지금은 작년에 살았던 식물들의 흔적이 가득합니다. 습지 한가운데의 수면 위로 자욱한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어요. 물안개 사이를 유유히 가로지르는 청둥오리 네 쌍. 차를 갓길에 세우고 사진 찍으러 다가갔습니다. 놀란 청둥오리 무리가 급하게 날아오르고, 힘찬 날갯짓과 함께 물안개도 아스라이 피어올랐습니다. 눈앞에서 생생하게 봤던 풍경은 사진으로 반도 담아낼 수 없었어요. 아쉽지만 눈에 가득 담고 사무실로 갔습니다.
오늘처럼 풍경이 다채로운 날, 제가 예민한 기질인 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해가 뜨는 시간과 보는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아차리고 감탄할 줄 아는 사람이어서요. 평범한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글로 표현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제가 본 풍경을 모두 글로 담아낼 수는 없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주변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풍경의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있지만, 알아보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