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바람꽃을 보러 갔다가 실패한 이야기
생태 가치를 전하는 초록노동자입니다. 20년 차 식물연구원이 보는 환경, 자연, 식물에 대한 시선과 경험을 공유합니다.
꽃을 선물한다고 하면 대부분 꽃집에서 사는 꽃을 생각하지요. 지난주 목요일에 참여했던 글쓰기 수업의 마지막에, 작가님께서 이번 주의 과제는 '스스로에게 꽃 선물하기'라고 말씀하셨을 때 저도 그랬어요. 나에게 무슨 꽃을 선물하면 좋을까. 그때 지난주 주말에 보러 가려다가 비가 와서 못 본 꽃이 생각났어요. 변산에서 처음 발견되어 이름이 ‘변산바람꽃’인 식물. 2월 중하순부터 3월 초까지 꽃이 핍니다. 몇 해 전, 변산반도국립공원의 직소폭포 위쪽으로 올라갔을 때 우연히 마주쳤던 식물이에요. "그래, 나에게 변산바람꽃을 선물하자!"
산행을 일주일 미룬 사이에 경칩이 지났어요. 일요일 아침, 더 자고 싶은 게으름을 물리치고 변산반도국립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아직은 쌀쌀하지만, 햇살은 따뜻했어요. 직소폭포를 지나 약 300m 높이에 있는 재백이 삼거리까지만 가기로 했어요. 직소폭포의 위쪽으로 조금만 가면 변산바람꽃의 자생지가 나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숲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국립공원의 입구를 통과했을 때, 오른쪽으로 작은 연못이 보였어요. 경칩이 지났으니 올챙이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역시, 연못 안에서는 벌써 알에서 깨어난 수백 마리의 까만 올챙이들이 힘차게 꼬리를 움직이고 있었어요. 조금 더 숲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산의 남향에는 얼음이 모두 녹아 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북향의 바위 위에는 아직 차가운 얼음이 남아 있었어요. 봄은 고르지 않게 옵니다.
숲 안으로 들어가니 땅에서는 막 싹을 틔운 여러 종류의 식물들이 보였어요. 부지런한 식물들은 벌써 잎을 땅 위로 밀어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두껍게 쌓인 흙을 뚫고 빛을 향해 잎을 세상에 내미느라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썼을까요. 붉노랑상사화는 손가락 크기만큼 자랐고, 햇빛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는 현호색, 쑥, 갈퀴덩굴, 별꽃, 양지꽃의 어린잎이 자라고 있었어요. 풀들은 나무들의 잎이 나오기 전에 먼저 꽃 피고 열매 맺는 생활사를 마쳐야 합니다. 숲에 빛이 가장 많이 들어올 때 광합성을 해서 종자를 생산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봄은 숲의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직소폭포를 지났습니다. 힘차게 뿜어내던 폭포 소리가 저 멀리 아득해지고, 고요한 숲이 시작됩니다. 흐르는 물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작은 계곡 옆의 완만한 지대, 여기가 변산바람꽃이 사는 곳이에요. 등산로를 살짝 벗어나 계곡 쪽으로 들어가 한참을 찾았습니다. '이상하다.' 한 개체도 보이지 않았어요. 재백이 삼거리까지 올라갔지만, 결국 한 개체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지난주에 비가 와서 산행을 미뤘더니, 그 사이에 시기를 놓쳐버린 걸까요. 아니면 기후변화 때문에 꽃 피는 시기가 빨라진 걸까요. 지난주에 비가 와도 올걸 그랬나 봅니다. 다시 만나려면 일 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내려오는 길에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혹시 뒤늦게 핀 딱 한 개체라도 있을까 하여, 바위와 나무 사이의 구석구석을 꼼꼼히 훑으며 천천히 걸었습니다. 결국 보지 못했습니다. 한참을 서서 변산바람꽃이 꽃피웠을 것 같은 지점을 응시했어요. 나는 나에게 꽃을 선물할 수 없었습니다. 변산바람꽃은 다른 식물의 잎이 나오기 전, 햇빛이 숲 바닥까지 닿는 짧은 시기에 제일 먼저 꽃을 피워요. 꽃이 진 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변산바람꽃의 시간을 저는 조금 늦게 따라온 셈이에요. 변산바람꽃을 보려면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아쉽지만, 내년에는 조금 서둘러 변산바람꽃의 시간에 맞춰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