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랑 있으면 자꾸 신경질을 부린다. 그의 어떤 부분들이 너무 싫은데 그게 고스란히 내게 있어서. 내가 손쉽게 아빠로 늙을 것 같아서. 유난히 내가 그를 닮아버려서.
언제나 그랬다. 아빠는 식구들에게 잘못하고 나서 제대로 된 사과 없이 선물을 사오곤 했는데 그것들이 늘 지나치게 내 마음에 들어서 남몰래 분했다. 아저씨인 주제에 아빠가 사온 귀걸이는 신기하게 취향껏 예뻤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귀신같이 사와서 내 책장엔 똑같은 책이 두 권씩 꽂힐 때가 많았다. 평양냉면이니 마카롱이니 하는 것들은 유행하기도 전에 아빠 덕에 맛을 알았다.
얼마 전부터 아빠는 CD와 LP를 모으는 데 꽂혀 있다. 별로 대화가 없는 부녀인데 짠 것처럼 비슷한 시기에 각자의 집에 오디오를 새로 들였다. 진짜 짜증나... 아빠는 얼마 전 단골 중고 레코드 가게에서 이소라 2집을 샀다며 내게 줬다. 1집도 아니고 2집, 다른 가수도 아닌 이소라인 이유를 분명 설명해줬는데 흘려 들어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런데 또 좋다. 참나. 그는 이게 중요한 거라며 '96년 초판' 스티커가 붙은 비닐봉투를 버리지 않고 챙겨줬다.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하지만 실은 나는 나무나 이런 게 중요한 인간이지.
유전자 단계의 문제인지 둘이서 인사동 화랑과 대한극장, 고궁과 왕릉을 다니던 시간들 탓인지 모르겠다. 나는 어쩜 이렇게 쓸모 없는 것들만 좋아하는, 철딱서니 없는 어른으로 자라버렸다. 아빠는 왜 유치원생을 데리고 그런 곳을 갔을까. 전적으로 본인 취향에 맞춘 행보라는 의심을 피할 길이 없지만. 남들 보기엔 그냥 주책 맞고 시끄러운 배불뚝이 아저씨일 그의 낭만을 나는 안다.